늘어나는 노인 학대,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인천 부성교회(홍승수 목사)에 다니는 정희남(53) 장로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노인 학대 문제 전문가다. 정부는 2017년 ‘노인 학대 예방의 날’(6월 15일)을 지정하면서 노인 보호 공적이 있는 이들에게 포상을 했는데 당시 최고 훈격(勳格)인 국민포장의 수상자가 정 장로였다.
정 장로는 2004년 인천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에 부임했다. 경찰에 노인 학대 신고가 접수되면 학대 여부를 판단하고, 격리가 필요하다면 쉼터 입소를 안내하는 게 그의 일이다. 정 장로는 23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한국교회가 노인 학대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거듭 당부했다.
“누군가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중요하긴 하죠. 하지만 그런 목표보다 앞서는 것이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일, 그 자체잖아요? 그게 하나님의 명령 아닌가요?”
정 장로는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교회를 향한 조언과 당부를 쏟아냈다. 핵심은 노인 학대 문제 개선을 위한 인프라 확충에 교회가 나서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교회가 할 수 있는 일로 피해 노인을 위한 쉼터 설치, 노인들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한 정서적인 지원, 지역 기관과 협력해 피해 사실을 드러내길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을 찾아내는 작업 등을 거론했다.
정 장로의 이 같은 주문들을 허투루 여기기 힘든 것은 노인 학대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어서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2023 노인 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 학대 신고 건수는 2만1936건에 달했다. 이 중 학대 판정을 받은 것은 32%인 7025건이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노인 학대 신고·판정 건수가 최근 5년간 꾸준히 증가했다는 점이다. 학대 판정을 받은 건수는 5243건(2019년)→6259건(2020년)→6774건(2021년)→6807건(2022년)→7025건(2023) 순으로 늘었다.
노인 학대 문제의 배경을 살피면 달라진 한국 사회의 변화상도 엿볼 수 있다. 가령 학대 행위자는 2020년까지는 아들이 가장 많았으나 이듬해부터는 배우자인 경우가 더 많아졌는데, 이것은 가구 형태와 부양 의식의 변화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노인 부부 둘이 사는 가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지난 3월 발표한 ‘2023 한국의 사회지표’를 보면 2022년 기준 노인 가구 가운데 주로 부부만 사는 ‘1세대 가구’ 비율은 36.0%로 자녀와 함께 사는 ‘2세대 가구’(22.7%)보다 훨씬 많았다.
한국공공정책개발연구원 원장인 장헌일 목사는 “학대당한 노인들의 사례를 보면 피해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치매와 우울증으로 고생한 경우가 많다”며 “교회가 먼저 이런 고충을 겪는 지역의 어르신에게 다가가야 한다. 교회 유휴 공간을 활용해 노래 교실이나 노인 대학을 운영하는 식으로 노인들과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노인 학대 문제의 해법으로 자주 거론되는 것은 관련 법령을 정비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인 학대 문제의 경우 법적 해결이 쉽지 않을 때가 많다. 피해 노인 상당수가 가족이 법적 처벌을 받는 것은 원치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내놨던 ‘2022 노인 학대 현황 보고서’에서 노인보호전문기관을 통해 피해 노인들이 전년도(2021년)에 제공 받은 프로그램들을 보면, ‘법률 상담 연결’ 횟수는 전체 6만2586건 중 323건에 불과했다. ‘소송 지원’ ‘학대 행위자 고소‧고발’도 각각 73건, 52건에 그쳤다.
이런 상황 탓에 사회의 윤리적 버팀목 역할을 하는 종교에서 노인 학대 문제의 해법을 찾으려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최근 학술지 ‘신학과 사회’에 게재된 전명수 고려대 공공정책대학 교수의 논문 ‘고령화 시대 노인 학대의 특성과 종교의 역할’이 그런 경우다.
논문에는 효의 윤리가 기독교 교리와 무관하지 않음을 강조하기 위한 성경 말씀이 곳곳에 등장한다.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32),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엡 6:1~2)….
논문엔 목회자를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이 설교나 강론에서 노인 학대 이슈를 다루면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시킬 것, 쉼터를 만들어 피해 노인에게 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할 것 등 다양한 주문도 적혀 있다. 전 교수는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기독교를 포함한 한국 종교계의 가장 큰 문제는 종교와 ‘생활’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종교인이라면 노인 학대 문제처럼 사람들이 겪는 일상 속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게 곧 사랑을 실현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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