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이 달라졌다" K리그2 선두질주 FC안양 이야기

김성호 2024. 6. 2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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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761] 제12회 무주산골영화제 '판' <수카바티: 극락축구단>

[김성호 기자]

▲ 수카바티: 극락축구단 포스터
ⓒ 나바루
 
놀랍게도 이뤄질 수 있겠다. <수카바티: 극락축구단>, 그 영화가 담고 있는 FC안양의 꿈이 현실이 될 수 있겠다는 말이다. 또 내가 오랫동안 응원해 온 FC서울이 그와 만나는 한국프로축구 역사상 기록할 만한 조우가 바로 내년 실현될 수 있겠다.

<수카바티>와 내가 처음 만난 건 지난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였다. 나는 이 영화를 본 뒤 '고백하자면 나는 FC서울의 팬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평을 씨네만세 548번째 기사로써 내었다. 축구팬 커뮤니티에서 꽤 많이 읽힌 이 기사는 안양을 연고로 했던 프로축구팀이 어떻게 제 팬들을 저버렸는지를, 그로부터 오늘의 FC서울에 이르게 되는 결코 아름답지 못한 역사를 적어내렸다. 영화평론가를 넘어 벌써 십수 년째 이 팀을 마음 다해 응원해온 한 명의 팬으로서 나는 그를 사과하는 마음으로 기록하였다.

보라돌이들, 그러니까 저 FC안양의 팬들을 향하여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그들이 언젠가 반드시 K리그1으로 승격하여 FC서울 앞에서 저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해내기를 바란다"고. 그러나 그 시간이 이토록 빨리 다가올 줄은 몰랐다. 아직 채 반도 오지 않았다곤 하지만 FC안양은 현재까지 K리그2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들의 역사적 승격이 마침내 이뤄지리라 믿는 이가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내 심장이 그를 기다리며 뛰고 있다.

<수카바티>는 스스로를 레드라 부르는 보라돌이들의 이야기다. 다른 많은 것들처럼 검붉음을 상징으로 한 저들의 팀마저 서울에 빼앗긴 안양의 보라돌이들은 그저 무너지지 않았다. 이들은 무너져 제 신세를 처량히 여기는 대신, 거리로 나가 피켓을 들고 시의회를 찾아 의원들을 압박하여 마침내 새로운 팀을 건설하였다. 이 팀의 상징색은 보라색, 포도가 많이 났던 안양의 지역색을 살렸다고 했다.

팀 잃은 서포터의 지난 시간들
 
▲ 수카바티 스틸컷
ⓒ 무주산골영화제
 
그러나 이들은 저들의 한때를 잊지 않았다. 안양 LG 치타스가 있던 그 시절의 붉음을 서울에 내주었으나 진짜배기 붉음이 여적 제 안에 남아 있다고 우겨대는 것이다. 어디선가 홍득발자(紅得發紫), 네 글자 말을 주워온 건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이들은 이 출처 모를 문구를 "아주 붉은 것은 이미 보라색이다"라는 잔뜩 뽕 들어찬 문장으로 바꾸어 내걸었다. 이 얼마나 축구팬, 서포터즈다운 해석인가. 나는 또 한 번 아연하여 눈을 씻고서 보라돌이를 다시 보았다. 그 안의 붉음이 보일 때까지.

뜨거운 영화니 저를 알아주는 이를 만나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지난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그러했고, 얼마 전 막 내린 제12회 무주산골영화제가 또한 그러하다. <수카바티>는 이번 무주산골영화제 '판' 섹션으로 초청돼 한 차례 상영기회를 가졌다. 영화제는 이 다큐에 대하여 '압도적인 박력과 축구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선호빈, 나바루 감독의 신작'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소개했다. '압도적인 박력, 축구에 대한 사랑'이라. 그렇다. 이보다 이 영화를 잘 표현하는 말을 떠올리지 못하여서 나는 이 글을 이리도 주저리주저리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더 잘할 수 없다면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선호빈과 나바루, 두 감독에게 직접 영화와 관련한 이야기를 물은 건 바로 그래서다. 마침 독립 다큐멘터리로선 쉽지 않게도 다음 달 극장 개봉기회를 얻었다고 하니 이 인터뷰가 시의적절하기도 하다.

무주의 선택, 잊을 수 없는 시간
 
▲ 수카바티 무주산골영화제서 GV를 진행한 김성훈 <씨네21> 기자(가운데)와 기념사진을 찍은 <수카바티> 두 감독(양쪽)
ⓒ 나바루
 
어찌 보면 철지난 이야기다. 올해 질주하는 뜨거운 FC안양이 아닌, 고전하고 거듭 미끄러지던 몇 시즌 전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오늘의 관객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나바루가 답한다.

"무주산골영화제에서 GV를 하는 동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어떤 영화제에서보다 관객 분들의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느껴졌다. 제 영화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영화는 관객을 만났을 때 완성된다. 그런 이유로 관객에게 어떤 의미를 강요할 수는 없겠다. 동문서답 같지만 영화를 만들고 관객들과 만나며 저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가 생겼단 걸 느낀다. 누군가 오늘 우리의 작품을 보고 어떤 뜨거운 열정이나 감정을 느끼고, 그 기운을 이어받아서 즐거운 인생을 살아보기를 바란다."

강요할 수 없다고? 그러나 영화는 분명한 온도를, 열망을 담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뜨거운 것이 관객을 어딘가로 데려가려 하고 있지 않는가. 문득 이 영화가 누구에게 다가서려 하는지가 궁금했다. 이번엔 선호빈이 답한다.

"여러 영화제 가운데 제게 가장 인상적인 관객은 장모님이었다. 난 축구라고는 평생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이 영화 최적의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수카바티>는 인간과 공동체, 상실과 연대의 드라마이며, 축구 서브컬처 입문서가 될 것이라고 자부한다. 실제로도 이런 관객을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우연히 담긴 킬링샷... 이것이 축구, 이것이 인생 
 
▲ 수카바티 제12회 무주산골영화제에서 관객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 나바루
 
축구라곤 본 적 없는 사람이라. 예상치 못한 답변이다. 정통 축구팬, 골수 서포터에게, 특히 FC안양이 아닌 다른 팀의 팬들에게 이 영화가 과연 승부할 지점이 있을까. 문외한을 염두에 둔 안이한 태도로는 결코 쉽지 않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할 즈음 나바루가 말한다.

"2019년 안양 대 안산의 경기는 두 감독 모두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안양의 버저비터 역전골이 담긴 쇼트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다. 한 번, 두 번, 세 번 슈팅을 시도하고, 결국에는 골대가 출렁이며 관중들이 파도처럼 물결친다. 상대팀 선수들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FC안양 선수들이 김형열 감독에게 뛰어간다. 이 한 장면에 스포츠에서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있다.

이 장면을 자세히 뜯어보자면 서포터석 촬영을 담당한 내가 본분을 잊고 함께 환호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만큼 극적인 승리였다. 선호빈은 경기가 동점으로 무기력하게 끝날 걸 예상하고 실망하는 팬들을 찍기 위해서 반대편 골대에서 카메라를 켰다. 그런데 녹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역전골이 들어간 것이다. 축구장에 왔지만 축구는 절대 찍지 않는 선호빈이 못마땅했던 나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가장 축구적인 킬링샷을 만들었는지 지금까지도 헛웃음이 나온다."

<수카바티>를 좋게 보았지만, 못내 실망한 부분도 없지 않다. 명색이 평론가가 되어 좋은 얘기만 하고 돌아설 수는 없다. 그런 건 FC서울 팬으로서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리하여 묻는다. 이 영화엔 조광래를 비롯해 최용수나 이영표 같이 안양 LG 치타스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여전히 한국 축구의 중심에 선 이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다가가 카메라를 들이대고 질문을 던질 패기 정도는 보였어야 하는 게 아닌가. 선호빈이 답한다.

"제작진도 이 부분이 무척 아쉽다. 최용수, 이영표 뿐이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안양의 연고이전과 창단 스토리는 축구계에서 약간 민감하게 생각하는 이슈라고 알고 있다. 한국축구를 이끌어가는 대기업과 협회를 비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우리 영화가 규모가 작은 비주류 영화인 것도 큰 이유일 거다. 나바루와 한 잔 하며 '우리가 MBC가 아니라 그런 거야'라고 자조하기도 했다.

그래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영화에 출연해 준 제용삼 선수, 김현회 기자, 문성환, 박찬하 해설위원, 이연주 교수 등에게 큰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 와선 비주류들이 똘똘 뭉쳐 만들어낸 이 영화의 질감이 더 매력적이지 않은가."

내 인생을 달라지게 한 FC안양 이야기 
 
▲ 수카바티 스틸컷
ⓒ 무주산골영화제
 
선비는 저를 알아준 이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는다 했다. 선비는 아니래도 제 진가를 알아준 무주산골영화제를 어찌 생각하는지 한 번 물어보았다. 이번에도 선호빈이 답한다.

"그냥 어떤 지역에서 한다 뿐이지 별다른 의미를 생성하지 못하는 뻔한 영화제도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무주는 달랐다. 무주산골영화제엔 통일성 속에서도 다양성이 있었다. 괜히 인싸들의 영화제라고 불리는 게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별명을 붙인다면 '초록색 우드스탁(1960년대 록음악과 문화의 정점에 있던 페스티벌)'이랄까."

이제 때가 되었다. 겨우 2부리그 팀을 그린 다큐치고 너무 많은 지면을, 온라인이긴 하지만, 할애하였다. 자, 마지막 질문이다. 아무 거나 하고픈 말을 해보라고 했다. 나바루가 말한다.

"안양을 촬영하기 전과 후의 인생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작품을 하기 전에 다큐를 그만두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던 상태였다. 꿈과 열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절망적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기든 지든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팀을 응원하는 서포터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패배자 같이 살았던 내 자신이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그런 이유로 이 작품을 만드는 동안 정말 최선을 다했다. 좋은 작품을 만들어서 내가 받은 위로를 반대로 안양 서포터에게 되돌려주고 싶었다.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보라돌이들이 이대로 순항하여 K리그1까지 입성할 수 있을까.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던데, 저를 버리고 서울로 이전한 기업구단의 후신에다가 오래 묵은 한 방을 갈길 수가 있을까. 나로선 모를 일이다. 그러나 어딘지 그를 생각하면 두근거리는 마음이 된다. 나도 모르게 그 도전을 응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적어도 그 마음의 삼할 쯤은 <수카바티>가 이룬 것이란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바로 그런 까닭으로 나는 이 글을 썼다.

<수카바티: 극락축구단>은 내달 개봉한다.
 
▲ 무주산골영화제 포스터
ⓒ 무주산골영화제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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