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이닝 25실점' 이마나가에게 닥친 첫 위기
[양형석 기자]
▲ 2024년 6월 15일 시카고 컵스의 이마나가 쇼타(18번)가 일리노이주 시카고 리글리 필드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경기를 하고 있는 모습. |
ⓒ AFP / 연합뉴스 |
지난 2020 시즌이 끝나고 현역생활을 마감한 일본인 투수 이와쿠마 히사시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107승, 메이저리그에서 63승을 기록하며 화려한 현역시절을 보냈다. 다만 라이벌로 불리던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빅리그 진출 당시 텍사스 레인저스와 6년 6000만 달러 계약을 맺은 것과 달리 이와쿠마는 시애틀 매리너스와 1년 150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 빅리그 진출 직전 시즌 부상으로 17경기 등판에 그친 것이 치명적이었다.
빅리그 진출 첫해 30경기에서 125.1이닝을 던지며 9승 5패 2세이브를 기록한 이와쿠마는 시즌이 끝난 후 시애틀과 2년 14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당시만 해도 부상경력이 있는 30대 투수에게 다소 후한 계약을 해줬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와쿠마는 2013년 33경기에서 219.2이닝을 던지며 14승 6패 185탈삼진 평균자책점 2.66으로 올스타 선정과 함께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투표 3위를 기록하는 놀라운 반전을 보여줬다.
2023년 센트럴리그 탈삼진왕에 오른 후 시카고 컵스에 입단한 좌완 이마나가 쇼타는 빅리그 데뷔 후 9경기 동안 5승 무패 58탈삼진 0.84로 돌풍을 일으켰다.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던 투수였음을 고려하면 엄청난 초반 활약이었다. 하지만 이마나가는 22일 뉴욕 메츠전 3이닝 10실점을 포함해 최근 5번의 등판에서 25.1이닝 동안 35개의 피안타와 함께 25실점(21자책)으로 평균자책점이 2.96으로 치솟으면서 빅리그 데뷔 후 첫 위기를 맞고 있다.
오타니-야마모토 등 일본인 빅리거들의 맹활약
2023년 시즌이 끝난 후 메이저리그의 스토브리그는 매우 뜨거웠다. 2012년과 2023년 아메리칸리그 MVP에 빛나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가 FA자격을 얻었기 때문이다. 아직 20대에 불과하고 투타겸업이 가능한 오타니를 잡기 위해 메이저리그의 모든 구단이 달려 들었고 오타니는 메이저리그 최초로 '7억 달러 시대'를 열면서 북미 스포츠 역사상 최고액 계약기록을 세우고 LA다저스에 입단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슈퍼팀이 되기 위한 다저스의 행보는 오타니 영입에서 그치지 않았다. 다저스는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2년 연속 투수 5관왕과 3년 연속 퍼시픽리그 MVP, 사와무라상을 휩쓸었던 일본 최고의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를 12년 3억 2500만 달러에 영입했다. 일본 프로야구를 평정한 올해도 여전히 만 25세에 불과한 야마모토가 다르빗슈처럼 빅리그에서 롱런한다면 결코 아깝지 않은 투자라고 판단한 것이다.
2023년 시즌 종료 직전 팔꿈치 수술을 받으며 올해는 풀타임 지명타자로 나서고 있는 오타니는 75경기에 출전해 타율 .322 22홈런 55타점 60득점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내셔널리그 홈런과 득점, OPS(출루율+장타율, 1.026) 1위에 타점 3위를 달리고 있는 오타니는 팀의 또 다른 슈퍼스타 무키 베츠가 전력에서 이탈한 다저스에서 간판타자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물론 유니폼 판매 등의 부가수익으로 얻는 '오타니 효과'는 더욱 크다.
야마모토도 좋은 활약을 해주다가 최근 부상으로 팀을 이탈했다. 시즌 초반부터 다저스의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 야마모토는 14경기에서 6승 2패 84탈삼진 2.92의 좋은 투구를 보여줬다. 하지만 지난 16일 캔자스시티 로얄스전에서 2이닝 밖에 소화하지 못하고 강판된 야마모토는 어깨 회전근개 부상으로 당분간 로테이션에서 제외될 전망이다. 클레이튼 커쇼와 워커 뷸러가 빠져 있는 다저스로선 야마모토의 부상이 대단히 아쉽다.
이 밖에도 류현진(한화 이글스)의 옛 동료였던 키쿠치 유세이가 15경기에서 4승 6패 3.65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최하위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선발진을 잘 지탱하고 있다. 로바트 수아레스와의 마무리 경쟁에서 패하고 좌완셋업맨으로 활약하고 있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마쓰이 유키는 3승 2패 8홀드 3.94를 기록 중이고 컵스의 중견수로 활약 중인 스즈키 세이야는 50경기에서 타율 .264 8홈런 27타점 26득점 6도루의 성적을 올리고 있다.
초반 9경기 0.84 이후 최근 5경기 7.46
사실 이마나가는 2023년 센트럴리그 탈삼진왕과 2017년 단일 일본시리즈 최다 탈삼진 타이기록(21개) 정도를 제외하면 오타니나 야마모토에 비해 내세울 게 많지 않은 선수다. 게다가 나이도 30대로 접어들면서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과감한 투자를 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지난 겨울 일본인 선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이마나가 역시 내심 1억 달러 내외의 계약을 기대했지만 4년 5300만 달러라는 비교적 평범(?)한 금액에 컵스와 계약했다.
하지만 이마나가는 시즌 초반 그야말로 메이저리그를 '폭격'하면서 일본 프로야구 탈삼진왕의 위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빅리그 데뷔전에서 6이닝 2피안타 9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승리를 따낸 이마나가는 데뷔 후 첫 6경기에서 5승 무패 0.78의 성적을 기록하며 세계 야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혹자는 이마나가의 돌풍을 지난 1995년 노모 히데오가 일으켰던 '토네이도 열풍'에 비교하기도 했다.
일부 언론들은 이마나가가 지난 5월 8일 샌디에이고와의 홈경기에서 7이닝 2실점을 기록하자 "0점대 평균자책점이 깨졌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마나가는 이후 2경기에서 다시 12이닝 무실점 투구를 선보이면서 평균자책점을 0.84로 낮췄다. 시즌 개막 후 9번째 등판까지 0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한 투수는 메이저리그에서 이마나가가 유일했다. 하지만 이마나가의 무서운 돌풍은 5월의 마지막 등판부터 급격하게 약해지기 시작했다.
5월 30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원정경기에서 4.1이닝 8피안타 7실점으로 빅리그 데뷔 첫 패배를 기록한 이마나가는 5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홈경기에서도 4.1이닝 5실점(1자책)으로 2경기 연속 5이닝을 넘기지 못했다. 이후 다시 2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안정을 찾는 듯했던 이마나가는 22일 메츠와의 홈경기에서 3이닝 11피안타(3피홈런) 1볼넷 3탈삼진 10실점을 기록하며 빅리그 데뷔 후 최악의 투구를 기록했다.
2019년 빅리그 전체 평균자책점 1위(2.32)를 기록했던 류현진도 4.1이닝 7실점, 4.2이닝 7실점으로 2경기 연속 뭇매를 맞았던 적이 있다. 최근 5경기에서 25.1이닝 25실점(21자책)으로 7.4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는 이마나가도 지금의 슬럼프를 잘 극복하면 더 좋은 투수로 빅리그에서 인정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내지 못한다면 이마나가의 첫 9경기 활약은 '봄날의 달콤했던 꿈'으로 끝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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