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외와 교육혁신]에듀테크, 격차 해소할 수 있을까…"만능 키 아냐"
정보 접근 어려운 비수도권 학부모, 학생들
'에듀테크' 정부 정책, 사교육 시장 활성화
전문가들 "섬세한 접근 없이 과도한 투자"
"지방은 서울만큼의 인프라가 부족해 주요 학원가 이외에는 정보를 접하기가 쉽지 않다."
부산의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23일 '의과대학 정원 증원으로 인한 학원가의 변화를 체감하는가'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최근 의대 증원, 지역인재비율 인상, 글로컬 대학 지원 사업 등 정부가 수도권-비수도권 간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당장 교육현장의 변화를 끌어내긴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정부는 디지털 교육 혁신 사업인 '에듀테크(기술과 교육의 합성어)'를 교육 격차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 디지털 기반 교육 혁신에만 5000억원대의 예산을 투입하는 등 관련 사업 준비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는 여전히 에듀테크가 지방 소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심화하는 '서울 집중'과 교육 격차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사설학원 8만8738개 중 서울과 인천·경기 등 수도권 일대에만 4만3675개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서울에만 1만4832개의 학원이 있다. 전국 수강인원 592만5710명 중 61.9%인 366만6281명이 수도권 수강생이다. 비수도권 중에서도 학원들은 경남(6279개), 부산(5400개), 대구(4354개) 등 대도시 인근에 집중돼 있다.
지난해 지역 간 초중고 사교육비 양극화 현상도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3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 전체 학생의 평균 사교육비는 62만8000원으로 읍면 지역의 28만2000원에 비해 2배 이상 많았다. 시도별 전체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도 서울, 경기, 세종, 대구, 부산이 전국 평균(43만4000원)보다 높았지만 전남(27만9000원), 전북(30만2000원), 충남(30만80000원) 등은 평균에 크게 미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수도권에 집중된 인구 비중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수도권 집중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지난해 기준 수도권과 비수도권 인구 격차는 70만명대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최근 비수도권 의대 정원 증원과 지역인재 비율의 상승으로 비수도권 학부모들의 관심도 늘어나고 있지만, 인프라가 몰려 있는 서울과 먼 지역에선 막상 정보를 접하거나 입시를 대비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의 의대 입시 설명회에 참석한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는 "의대 입시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인천에서 넘어왔다"며 "대부분의 유명 입시학원이 강남, 목동에 몰려 있어 결국 서울로 향하게 된다"고 말했다.
공교육도, 사교육도 '에듀테크 붐'
정부는 지방소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대안을 내놓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지방시대 종합계획'의 5대 전략 중 하나로 교육발전특구를 강조하며 지역 주도의 공교육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또 지난해부터 비수도권 대학 30곳을 '글로컬 대학'으로 지정해 총 3조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교육부는 올해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에만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다. 총 5333억원 규모다. 일찍이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 '지역균형발전의 핵심은 지방 교육'이라며 지방과 수도권의 교육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에듀테크'를 강조한 바 있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발표한 디지털 교육 혁신 관련 방안에 따르면 교육부는 올해부터 3년간 교사 32만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연수를 실시한다. 이를 통해 2025년까지 'AI(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를 각 과목에 우선 도입하는 등 수업 현장에 적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사교육 시장에서도 에듀테크가 지방 격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에듀테크산업협회에 따르면 2021년 국내 에듀테크 시장 매출액은 약 7조3250억원으로, 2025년 9조9833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설탭'은 비대면 과외 솔루션 플랫폼으로, 학원가와 멀리 떨어진 비수도권 지역에서도 맞춤형 과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또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자기 주도형 수학 학습을 제공하는 '수학대왕', '콴다' 등의 플랫폼이 있다.
일부 기업들은 지방소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기도 한다. 초·중등 인강 콘텐츠 업체인 '아이스크림에듀'는 지난 1월 학습 격차 해소를 위해 나주, 부산, 세종, 양산 등 7곳과 학습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교원그룹'도 천안, 태백, 광주(경기), 구미, 고창 등 IT 인프라 및 교육환경이 열악한 지역의 학교를 선정해 교실 리모델링과 에듀테크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전문가들 "에듀테크는 만능 키가 아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에듀테크를 비롯한 디지털 교육 혁신이 지방 소외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데 회의적이다. 공교육에 발전된 기술을 활용하는 것을 필요하지만, 지역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본부 대표는 "디지털 교육 혁신이 우리 교육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만능키'처럼 여겨선 안 된다"며 "지방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별도의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경계했다. 한 대표는 "소외된 지역이나 기초학력이 부족한 지역의 경우 디지털 교과서를 빨리 도입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한 명의 교사라도 먼저 보내주는 것이 더 필요한 일일 수 있다"며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되더라도 아이들을 책상 앞에 앉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교육에 대한 섣부른 접근이 교육격차를 더 심화시킬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육정책학과 교수는 "디지털 기기를 통해 엄청난 학습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학생도 있고, 매체 자체를 활용 못하고 있는 학생도 있다"며 "환경의 차이가 문화의 차이를 만들어내고 결과적으로 학습 격차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현재까지 발표된 정책에 따르면 투입 대비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1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참교육실천대회 교육정책마당'에서 박미자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AI 디지털 교육만 있고, 교육의 목적과 가치, 방향이 없다"고 비판한 바 있다. 김 교수도 "현재 정부는 지나치게 자원만 투입하고 있다"며 "자원 투입 대비 효과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 정교하게 설계되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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