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100% 하자”는 대학생, 경제학 대가의 일침[송승섭의 금융라이트]

세종=송승섭 2024. 6.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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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상속세율, OECD 국가 2위
경영 왜곡, 중산층 부담 비판 목소리
상속세 인하는 ‘부자 감세’ 지적도
유산세→유산취득세 논의도 활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왼쪽)이 1978년 미국 시카고 대학교에서 '미국이란 무엇인가?(What is America?)'를 주제로 강의한 후 한 청년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모습. 사진=Free To Choose Network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영리활동 전에 부를 강제로 재분배해야 하지 않나요? 수익을 추구하는 인센티브에 영향을 주지 않고 부를 재분배하는 방법은 100%의 상속세를 부과하는 것이잖아요.”

1978년 미국 시카고 대학교에서 한 경제학 대가의 강의가 열렸습니다. 1시간 남짓한 강의가 끝나자 한 청년이 질문을 던졌죠.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불평등한 출발점이 생기니, 높은 상속세율을 통해 부의 재분배를 이뤄야 비로소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겠냐는 주장이었습니다. 강의를 진행했던 교수는 “상속세를 100% 부과하면 사람들은 사치를 누리는데 자신의 부를 허비하게 된다”고 맞받아쳤습니다. 이 교수가 바로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틀을 한층 높이고, 노벨경제학상까지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이었죠.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 한국에서는 ‘상속세’ 논쟁에 불이 붙었습니다. 상속세를 내는 사람부터, 세율, 과세 방식까지 도마 위에 올랐죠. 대통령실뿐 아니라 세제당국인 기획재정부와 입법부인 국회에서도 관련 논의가 뜨겁습니다. 상속세는 왜 대한민국 세금 제도의 뜨거운 감자가 됐을까요?

한국은 상속금액에 따라 세율이 달라집니다. 상속금액은 총 5구간으로 구분하는데, 과세표준이 1억원 이하라면 가장 낮은 세율인 10%가 적용됩니다. 구간마다 10%포인트씩 세율이 오르고, 30억원을 초과하게 되면 50%의 세율이 붙죠. 대기업의 최대 주주라면 물려받는 주식의 20%가 할증되는데 그러면 최고세율이 60%까지 오를 수도 있습니다.

상속세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높은 상속세율에 주목합니다. 한국의 최고상속세율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높은 편에 속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최고세율 평균은 26% 정도입니다. 상속세 자체가 없는 나라들도 많고요. 반면 한국의 상속세율은 55%인 일본 다음으로 높죠. 프랑스도 45%고 미국과 영국은 40%, 독일의 경우 30%입니다.

상속세율 높은 게 왜 문제인가요

그런데 높은 상속세가 왜 문제일까요? 돈을 많이 물려받은 사람이 많은 세금을 내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이런 주장에 대해 기업들은 높은 상속세율 탓에 경영이 왜곡된다고 비판합니다. 경영권과 가업을 자식에게 물려줄 때 막대한 상속세를 내다보니 기업의 지분구조가 흔들리는 일이 생긴다는 거죠. 상속세 부담 때문에 기업주가 상장사 주가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주가가 오르면 추후 많은 상속세를 내야 하니, 본인 기업의 주가를 굳이 올리려 하지 않는다는 거죠. 최근 정부가 ‘기업 밸류업(가치제고) 프로그램’을 추진할 때도 한국 주식시장의 저평가 원인으로 상속세가 거론된 바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한국의 기업들이 상속과정에서 진땀을 흘렸습니다. 삼성전자가 대표적이죠.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상속을 받은 유족들은 상속세만 12조원을 내야 했습니다. 삼성 일가는 미술품을 대납하고 주식을 담보로 돈을 끌어 모았는데요. 그래도 돈이 부족해 지배력 약화를 감수하고 삼성전자 일부 지분을 매각해야 했죠. 고(故) 김정주 넥슨 창업주 유족들도 6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낼 길이 없어 넥슨 지주사 NXC 지분을 대납했고, 한미그룹에서는 상속세 때문에 모녀와 형제 간에 경영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상속세율 개편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중산층의 부담이 커졌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상속세 제도는 1990년대만 해도 일부 부자들만 내는 세금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제가 발전하면서 소득수준과 물가가 오르자 상속세를 내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24년째 과세표준을 바꾸지 않았고, 28년째 공제 한도를 10억원으로 묶어두는 등 세법을 바꾸지 못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상속세는 돈이 많은 자산가들에게 부의 재분배를 위해 물리는 세금으로 출발했지만 이제 중산층들이 내기 시작한 거죠.

지난 20일에 국세청이 발표한 상속·증여세 통계를 보면 2023년 상속세 과세 사망자는 1만9944명으로 집계됐습니다. 1년 전 1만5760명에서 4184명(26.5%) 늘었습니다. 2000년 초반만 하더라도 상속세를 내야 하는 사람은 1000명대였는데, 2011년 5000명대를 돌파하고 2020년 1만명을 넘어섰죠. 통상 상속재산이 10억원을 넘기면 상속세를 낼 가능성이 큰데, 서울 집값이 빠르게 오르다 보니 집 한 채만 상속받아도 세금을 내게 된 겁니다.

이러한 부작용을 없애려면 상속세율을 낮춰야 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입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16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상속세 최고세율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며 “OECD 평균이 26% 내외로 추산되기 때문에 일단 30% 내외까지 인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여당에서도 상속세 인하론에 힘을 보탰습니다. 지난 20일 국민의힘은 재정·세제개편특위를 열었는데 위원장인 송언석 의원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우리나라 세제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상속세”라고 꼬집었습니다.

다만 상속세 인하는 쉽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상속세율 인하에 대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거든요. 우선 상속세율은 OECD 평균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나라별로 과세표준이 제각각인데다 각종 공제제도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죠. 특히 한국에서는 기초공제(2억원), 자녀인적공제(1인당 5000만원), 일괄공제(5억원) 등 상속세에 다양한 공제가 이뤄집니다. 상속세를 내야 하는 과표가 1억원이어도 실제 물려받는 자산은 훨씬 많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를 근거로 상속세 인하가 중산층이 아닌 고액 자산가들을 위한 ‘부자 감세’ 정책이라는 비판도 있죠.

유산세→유산취득세, 차이와 장단점은

상속세는 세율과 함께 과세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논의도 이뤄지는 중입니다. 한국에서 상속세는 ‘유산세’ 규칙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유산세는 물려주는 재산 전체에 세금을 매기는 방식입니다. 만약 각종 공제를 모두 제외한 뒤 100억원의 유산이 생겼다면 몇 사람이 나눠 가지든 내야 하는 세금에는 변동이 없습니다. 현재 세법을 그대로 따른다면 아마 최고세율이 책정되겠죠.

이를 ‘유산취득세’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유산취득세는 전체 재산이 아니라 상속인이 물려받은 재산을 기준으로 과세합니다. 가령 100억원을 10명이 똑같이 10억원씩 상속했다고 생각해봅시다. 유산세 제도에서는 100억원에 세금을 한 번 매깁니다. 반면 유산취득세에서는 10억원을 가진 10명에게 각각 세금을 매깁니다. 과세 금액이 줄어드니 당연히 세율도 낮아집니다. 굳이 과표구간이나 세율을 조정하지 않아도 세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가 생기죠.

단 유산취득세도 장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유산취득세는 각 상속인이 취득한 재산을 일일이 따져봐야 합니다. 세무행정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각종 꼼수가 횡행할 우려도 있죠. 세금을 줄이기 위해 허위로 유산을 쪼개는 식으로요. 국가가 걷는 세금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기 때문에 세수가 부족해지고, 부의 재분배 기능이 약화한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상속세를 둘러싼 설왕설래가 많지만 분명한 사실은 수십년 전 만들어놓은 상속세 제도가 우리 사회·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겁니다. 밀턴 프리드먼 교수는 당시 상속세를 올리자고 주장한 청년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내 가족에게 무언가를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에 가까우니, 지나친 상속세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요.

“우리는 가족사회입니다. 개인사회가 아니에요. 사람들에게 진짜 큰 동기를 부여하는 건 내 가정을 이루고 확립하겠다는 인센티브입니다. (중략) 정말 희한한 현상입니다. 자신의 수익보다 자식의 수익이 훨씬 클 것이라 확신하면서도 허리를 졸라매고 아껴서 자식에게 물려주려 합니다. (중략) 상속세 100%는 사회의 영속성을 파괴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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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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