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항구에 29조 투입한 인도…"中 일대일로에 반격" [세계한잔]
인도가 최근 이란으로부터 차바하르항의 개발·운영권을 따냈다. 20년 묵은 숙원 사업에 본격 착수하면서 인도는 숙적인 파키스탄을 우회해 아프가니스탄으로 연결되는 직통 교역로를 확보하게 됐다. 특히 인도양 제해권 확보를 위해 파키스탄 과다르항에 집중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인도의 '반격 카드' 역할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인도 매체 "印, 항구 개발에 29조 투입"
인디아투데이와 디플로맷·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사르바난다 소노왈 인도 해운항만부 장관은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메르다드 바즈르파시 이란 도로도시개발부 장관을 만나 이란 남동부에 위치한 차바하르항의 개발·운영 계약을 체결했다. 차바하르항은 크게 ‘샤히드 칼란타리’와 ‘샤히드 베헤쉬티’라는 두 개의 항구로 나뉘는데, 인도가 개발·운영을 도맡게 된 곳은 샤히드 베헤쉬티다.
양국 간의 계약에 따라, 항만 관련 인도 국영기업 IPGL은 향후 10년간 차바하르항 샤히드 베헤쉬티의 개발에 1억2000만 달러(약 1640억원)를 투자한다. 또 항구 인근에 특별경제구역(SEZ) 설정 등 항만 개발 사업을 위해 2억5000만 달러(약 3418억원)의 소프트 대출을 연장하기로 했다.
이밖에도 인도는 물류 시스템 구축을 위해 차바하르항에서 아프가니스탄 국경 근처의 자헤단까지 630㎞에 달하는 철도 구축, 아프가니스탄의 무역과 교통의 요지인 자란즈 근처까지의 도로 건설에도 참여하고 있다. 인도 매체 ETV바라트는 “인도가 차바하라항의 개발, SEZ 설정 및 물류를 위해 투자한 총액은 약 210억 달러(약 29조원)”라고 전했다.
"중국 일대일로에 강력한 반격"
인도 정부가 이처럼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은 차바하르는 인도에게 단순한 기항지 이상의 의미를 갖는 곳이다. 인디아투데이는 차바하르를 "상업적·전략적인 잠재력을 모두 갖춘 곳"라고 보도했다. 디플로맷 역시 차바하르에 대해 “항구 그 이상”이라며 “파키스탄 과다르를 교두보 삼아 인도양에 진출한 중국에 인도가 제대로 반격했다”고 전했다.
차바하르의 가장 큰 의미는 러시아가 주도한 국제남북수송회랑(INSTC)을 완성하는 연결고리 역할이다. INSTC는 러시아~중앙아시아~이란~인도를 직접 연결하는 거대한 복합운송망이다. 모스크바에서 인도 뭄바이까지 연결할 때, 기존에는 북해와 지중해를 거쳐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해양 운송망을 통해 1만6000㎞를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인도와 차바하르항이 연결되면 내륙을 관통해 뭄바이(인도)~모스크바(러시아)의 이동 거리가 절반 이하(7200㎞)로 줄어든다.
특히 거대한 시장이자 미래 제조업 강국을 꿈꾸는 인도 입장에선, 차바하르항은 자원이 풍부한 중동·중앙아시아와의 교역로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INSTC 프로젝트를 애초 러시아가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도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차바하르항이 인도의 무역 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려주는 '골든 게이트'가 될 것이라면서, “이 기념비적 계약이 결국 더 큰 지역 통합을 촉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차바하르항의 위치는 군사 전략적으로도 절묘하다. 인도 서부의 구자라트주(州)에 위치한 칸들라항에서 불과 885㎞, 뭄바이항에서는 1265㎞ 거리다. 인도의 뉴델리~뭄바이(1400㎞) 거리보다 짧다. 또 중국이 공들이고 있는 파키스탄 과다르항과는 불과 149㎞ 떨어졌다.
그래서 인도가 차바하르항을 관리하면, 아라비아해에서 중국의 활동을 한눈에 모니터링할 수 있는 동시에 차바하르~아프가니스탄 노선을 통해 인도 공군이 주둔 중인 타지키스탄 파코르 공군 기지까지 최단 접근로까지 확보하게 된다. 인도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과 파키스탄 입장에선 적지 않은 타격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중국은 인도양 주변국에 막대한 물량공세를 퍼부으면서, 거점 항구의 운영권을 따내는 방식으로 해양루트를 개척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이에 대해 인도 매체들은 “인도를 포위하고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군사 및 상업 전략”(인디안익스프레스)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파키스탄의 과다르항은 해양 루트를 연결하는 거점 항구 중 하나이자, 파키스탄부터 중국 신장웨이우얼(위구르)자치구의 카스까지 육로로 3000㎞ 거리를 잇는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출발지이기도 하다. 중국의 육·해상 수송로가 교차하는 핵심 허브인 셈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파키스탄에 막대한 차관을 제공해 과다르항의 운영권을 40년간 확보하며 개발에 공을 들였지만 사업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현지에서 일대일로에 대한 반감이 높아져 반대 시위가 이어지는 데다 심각한 전력 부족 상황이 해결되지 않아서다. 닛케이아시아는 “중국은 과다르항 사업이 계획대로 되지 않아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차바하르항 개발이 속도를 내면 과다르항의 잠재력은 박탈될 것”이라고 짚었다.
美의 對이란 제재가 변수
인도 입장에서 변수는 미국의 제재다. 인도는 약 21년 전인 2003년부터 차바하르항 개발·운영 논의를 시작했지만, 미국의 대(對) 이란 제재로 인해 더딘 진척을 보여왔다. 그러다 2015년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 따라 미국이 이란 제재를 해제하기로 하면서, 인도의 항구 개발 논의도 급물살을 탔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2016년 이란을 방문해 당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을 만나 차바하르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5억 달러(약 6900억원)의 투자를 약속한 바 있다. 운영 협약은 매년 갱신하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핵 합의를 일방적으로 폐기하고 이란 관련 제재를 복원한 상태다. 이번 인도와 이란의 차바하르항 계약 직후, 베단트 파텔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미국의 이란 제재는 여전히 유효하며 이란과의 사업 거래를 고려하는 모든 단체는 제재 위험을 인지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미국이 인도의 행보를 완전히 가로막진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국제관계학 교수인 하시 판트는 “만약 인도가 차바하르항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중국이 빠르게 접근할 것이라는 걸 미국도 알고 있을 것”이라며 “인도의 대담한 조치가 미국의 심기를 건드린 건 사실이겠지만, 미국 역시 전략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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