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영국 어업은 어쩌다 나락으로? [조홍석의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 이야기’]

2024. 6. 2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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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 가격이 금값이라고 합니다. 한국 김의 해외 수출이 급증하면서 가격이 치솟았죠. 김을 수출하는 대신 한국은 외국 수산물 수입이 많은데요. 고등어는 노르웨이에서, 홍어는 칠레에서, 특히 술안주로 인기를 끄는 골뱅이 대부분은 영국에서 수입합니다. 영국 어부들은 자기네가 먹지 않는 골뱅이를 우리가 사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라고 하죠.

오늘은 이 영국 수산물 역사 중 하나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영국 어업은 과거 아주 잘나갔는데요. 그러다 크게 타격을 입은 역사가 있습니다. 1950년대부터 3차례 이어진 ‘대구 전쟁’이 발단이었습니다. 영국과 대구 전쟁을 벌인 상대는 아이슬란드입니다. 아이슬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침공을 기회로 독립한 뒤 영국과 외교적 마찰을 빚습니다. 당시 영국 어부들이 아이슬란드 영해까지 들어와 대구를 잡아갔기 때문인데요. 영국과 아이슬란드는 1958년과 1972년, 1976년 세 차례에 걸쳐 해상 전투까지 벌이는 소위 ‘대구 전쟁’을 치릅니다. 영국 입장에서는 아쉽게도 아이슬란드의 완승으로 끝이 났고요.

국력이 영국에 열세인 아이슬란드는 어떻게 바다를 수호했을까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영국인이 즐겨 먹는 ‘피시앤칩스’에 사용되던 대구는 주로 북해에서 잡히는데 영국 어선들이 아이슬란드 영해에 들어가 남획하는 경우가 빈번했다고 합니다. 이에 1958년 아이슬란드 해안 경비정이 불법 조업 중인 영국 어선에 발포하자 발끈한 영국이 국제사법재판소로 이 이슈를 가져가지만 관례적으로 인정받던 ‘12해리 영해 침범’이어서 패소하게 됩니다.

이후 1971년 아이슬란드 정권이 바뀌면서 영해를 50해리로 일방적으로 늘립니다. 하지만 영국 어부들이 계속 영해를 침범하자 1972년에 아이슬란드 해군 함정이 포격합니다. 이에 영국 함정도 발포해 상호 포격전이 벌어지는 2차 전쟁이 터집니다. 당시 전력에서 크게 불리한 아이슬란드는 “NATO를 탈퇴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합니다. 냉전 시절인지라 소련의 해양 진출을 한사코 막아야 할 미국과 NATO가 화들짝 놀라 영국을 물러서게 하면서 겨우 중단됩니다.

하지만 오일 쇼크가 터져 아이슬란드 경제가 휘청이자 어업이라도 살리고자 1975년에는 200해리로 영해 범위를 확장 선언하면서 한 번 더 영해를 침범하면 영국 어선을 공격하겠다고 강경하게 나옵니다. 당시 영국 노동당 정권으로선 지지층인 어부들 눈치를 안 볼 수 없어 불법 어업을 눈감아줬다고 합니다. 결국 1976년 2월 포격전이 다시 벌어집니다. 그러자 아이슬란드는 영국과의 외교 단절 선언과 함께 “소련 호위함을 사겠다. NATO 대신 바르샤바 조약에 가입할 테니 말리지 말라”며 대놓고 압박하고 나섭니다.

처음에는 홧김에 한 소리인 줄로만 알았는데 실제로 아이슬란드 정부가 소련에 무기를 지원해주면 항구를 빌려주겠다고 제안한 사실이 알려집니다. 결국 문제가 심각해지자 미국과 NATO 연합국들이 영국에 “대구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자꾸 분란을 일으키냐”며 책망했고, 결국 영국이 영해 200해리를 인정하면서 물러서니 이 사태 이후 각국 영해가 200해리로 크게 늘어나게 됐다고 합니다.

결국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줄다리기 외교로 아이슬란드가 승리를 거두자 영국은 어업이 크게 위축되고 수많은 피시앤칩스 가게가 파산했다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하지만 이미 영국 어부들의 남획으로 대구 씨가 말라 아이슬란드 역시 큰 손해를 입었고 지금은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돼 1992년 대구 조업 중단 결정까지 내린 상황이죠.

이처럼 평화로워 보이는 유럽 각국 간에도 어마어마한 갈등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조홍석 삼성서울병원 커뮤니케이션수석]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4호 (2024.06.19~2024.06.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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