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잡으려다 빌라 시장 무너진다 [취재수첩]
“아무리 전세사기가 문제라지만 빌라 주인이 모두 죄인은 아니잖아요. 정부가 제멋대로 전세보증보험 가입 기준을 강화해 빌라 임대 시장이 고사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서울의 빌라 임대사업자 A씨 토로다.
서민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온 빌라 시장이 빠른 속도로 붕괴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1~4월 전국 빌라 인허가 물량은 3463가구에 그쳤다. 같은 기간 기준 2022년 1만5951가구, 2023년 6435가구에 이어 매년 급감하는 중이다. 지방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광주, 울산은 이 기간 빌라 인허가 물량이 아예 ‘제로(0)’다.
빌라가 공급 절벽에 처한 것은 전세사기 여파가 크지만 정부 대책도 한몫했다. 전세금 미반환 사고가 늘자 정부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 반환보증보험 가입 요건을 강화했다. 당초 ‘공시가격의 150%’였던 보증보험 가입 요건을 ‘공시가격의 126%’로 바꿨다. 일례로 공시가격이 1억5000만원이면 전세금 1억8900만원까지만 보증보험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임대인들은 정부가 빌라 전세 가격에 직접 개입하면서 시장을 왜곡시켰다고 날을 세운다. 불안한 세입자들이 보증보험부터 받으려다 보니 집주인은 수천만원씩 전세금을 돌려줘야 한다. 서울 중랑구의 한 빌라는 ‘126% 룰’을 맞추다 보니 2년 전 2억3000만원 안팎이던 전세금이 최근 5000만~6000만원씩 떨어졌다. 그럼에도 실수요자들이 빌라 전세를 외면하면서 ‘아파트 쏠림’ 현상이 심화돼 아파트 전셋값 상승에 불을 지피는 꼴이 됐다.
정부의 전세사기 대책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임대인 희생만 강요하면 빌라 시장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보증보험 가입 기준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한편 빌라 수요를 회복시키기 위한 세금, 대출 규제 완화가 병행돼야 한다. 빌라 밀집 지역이 슬럼가로 전락하거나, 소형 아파트 전세조차 못 구해 떠돌이 신세가 되는 세입자가 넘쳐나지 않기를 바란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4호 (2024.06.19~2024.06.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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