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홀린 한마디 “우린 도라지 아닙니다” [장수 브랜드의 비밀]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한약 상품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브랜드를 아는가. 대부분 우황청심환과 쌍화탕을 떠올릴 것이다. 둘 다 정답이 아니다. 답은 광동제약의 ‘경옥고’다. 광동제약 창업주인 최수부 회장이 3년간 고려인삼사업사에서 외판원으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1963년 광동제약을 창업할 때 내놓은 상품이다. 첫 등장 이후 61년간 한약 시장에서 존재감을 뽐내왔다. 높은 명성답게 매출은 상당하다. 2023년 기준 누적 매출은 1100억원에 달한다. 올해 1분기에도 68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한약 강자’로서의 저력을 증명했다.
60년 세월 버티며 압도적인 강자 등극
경옥고는 본래 한약의 일종이다. 생지황, 인삼, 백복령, 백밀 등 한약재를 넣어서 달여 만든다. 동의보감과 조선왕조실록에도 언급될 정도로 유명하고 역사도 오래됐다. 다만, 제조법이 구체적으로 기록된 약은 아니었다. 동의보감에도 처방 기록만 있을 뿐, 구체적인 제조 방식에 대해서는 적히지 않았다. 민간에서 구전돼오던 경옥고 제조법을 광동제약이 현대에 맞게 개조해 내놓은 게 바로 ‘광동 경옥고’다. 광동제약은 1963년 일반의약품으로 인증받은 경옥고 판매를 시작했다.
1960년대 당시 경옥고 시장은 ‘레드오션’이었다. 이미 유명한 한약이었던 만큼, 상당수 업체가 경옥고 제품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치열했던 경쟁은 1966년 ‘가짜 경옥고’ 사태와 함께 변화를 맞이한다. 당시 일부 업체가 인삼이 아닌 도라지를 사용한 가짜 경옥고를 판매하다 적발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는 곧 ‘경옥고’라는 제품 전체의 신뢰도 하락으로 번졌다. 시장이 순식간에 흔들렸다. 광동제약은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자체 연구를 통해 증명한 경옥고의 효능을 알리는 데 집중했다. 도라지가 아닌, 인삼을 쓰는 ‘정직한 업체’라는 점도 확실히 홍보했다. 적극적인 홍보 전략은 제대로 적중했다. 경쟁자들이 하나씩 사라질 때, 광동 경옥고는 오히려 소비자 선택을 받았다. 판매량이 치솟기 시작했다. ‘가짜 경옥고
사태’가 끝났을 땐, 광동 경옥고만이 시장에서 살아남았다. 이때부터 독주가 시작됐다. 경옥고의 대표 주자로서 이미지를 굳히며 시장점유율을 높여나가기 시작했다.
2010년대 들어서는 포장에 변화를 줬다. 경옥고는 처음 등장부터 꾸준히 ‘단지형’으로 판매됐다. 단지형 포장 용기에 경옥고를 대량으로 넣은 형태였다. 복용하기 불편하다는 소비자 불만이 제기되자 광동제약은 2016년 ‘스틱포’ 형태로 포장 방식을 개선했다. 1회 복용량만 포장해 먹기 편하도록 만들었다.
끊임없는 개선과 품질 향상 덕분에 ‘광동 경옥고’의 독주 체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광동 경옥고의 경옥고 시장점유율은 70%에 달한다. 2022년 국내 경옥고 시장 전체 매출은 176억원이었다. 이 중 135억원이 광동 경옥고의 매출이었다. 제약업계는 2024년 경옥고 시장 규모를 220억원 수준으로 전망한다. 이 중 150억원은 광동 경옥고의 매출이라는 게 업계 추산이다.
자료 이용한 회상 효과의 적절한 활용
광동 경옥고는 ‘이용 가능성 휴리스틱’을 가장 적절히 활용한 브랜드로 꼽힌다. 휴리스틱은 행동경제학에서 쓰이는 용어로, 제한된 정보만으로 즉흥적·직관적으로 판단하는 심리 행태를 일컫는다. 사람들이 별다른 고민 없이, 물건을 바로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제품을 ‘휴리스틱’ 유도가 뛰어난 제품이라고 말한다. 이 중 이용 가능성 휴리스틱은 브랜드 광고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소비자가 별다른 고민 없이 광고에 나온 제품을 사도록 유도하는 개념이다.
이용 가능성 휴리스틱을 활용하려면 브랜드의 ‘회상 용이성’을 높여야 한다. 방법은 다양하다. 브랜드 자체 디자인을 직관적으로 만들거나, 브랜드 광고를 계속 내보내 눈에 익게 만들어야 한다. 브랜드 신뢰도를 높이는 객관적인 자료를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는 방법도 ‘회상 용이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꼽힌다. 광동 경옥고는 객관적인 자료를 꾸준히 공개하며 호감도를 쌓았다. 광동제약은 초창기부터 광동 경옥고의 효능을 입증하는 연구자료를 꾸준히 공개해왔다. 경옥고의 항피로 효능(2016년, 생약학회지), 면역 증강 효과(2019년, 대한본초학회지), 갱년기 증후군(2020년, 생약학회지), 미세먼지가 유발하는 염증 반응에 대한 경옥고 억제 효과(2019년, 국제환경보건연구저널) 등 연구를 지속했다. 연구 결과가 나오면 그때마다 즉각 발표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해당 브랜드에 관련된 객관적 자료에 노출된 소비자는, 자료를 보지 않은 소비자보다 브랜드에 대한 신뢰와 호감도가 높다고 설명한다. 소비자에게 신뢰를 줄 만한 자료와 데이터는 광동 경옥고를 향한 소비자 신뢰와 호감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광동 경옥고는 소비자 신뢰와 충성도가 높다. 2022년 한국갤럽이 ‘광동 경옥고 평판·구매 의사’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복용 경험이 있는 소비자의 재구매 의사가 96%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옥고 시장 잡겠다…도전자 등장
경쟁자들 뿌리치고 독주 체제 유지할까
광동 경옥고의 고민은 ‘경쟁자 범람’이다. 광동제약은 사실상 ‘적수’가 없는 브랜드였다. 지난 1963년 광동 경옥고가 식약처 허가를 받은 이후 2017년 경방신약의 ‘경방경옥고’가 허가되기까지 약 50년 동안 시장을 독차지했다. 1964년 원광제약의 ‘보화경옥고’가 허가됐지만, 경옥고를 광동제약 제품의 고유명사로 인식하는 소비자도 적지 않았다. 때문에 광동제약 독점 체제가 장기간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광동제약 아성이 워낙 탄탄했던 탓에 다른 제약사도 경옥고 시장에 섣불리 참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건강에 관심을 쏟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경옥고 시장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던 제약사들이 경옥고 시장에 뛰어들었다. 2018년 경남제약을 필두로 일양약품, 제일헬스사이언스, 조아제약, 일동제약, 부광약품, 한풍제약 등 주요 중견 제약사들이 경옥고 제품을 앞다퉈 공개했다. 2023년에는 GC녹십자와 동아제약 등 대형 제약사까지 가세했다. 광동 경옥고를 비롯한 이들 경옥고 제품군은 주성분과 효능이 대부분 비슷하다. 광동제약이 후발 주자와의 차별점을 찾지 못한다면 독주 체제가 위협받을 가능성이 크다. 광동제약 관계자는 “앞으로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브랜드 가치를 성장시키는 방법으로 시장의 변화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4호 (2024.06.19~2024.06.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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