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 토크쇼' 눈물바다 만들었다…멋진 어른의 음악, 정미조
‘멋진 어른의 음악’ 추구하는 가수 정미조
72년 데뷔해 79년 은퇴, 8년 전부터 재개
아이돌이 점령한 음악시장에 어른을 위한 노래가 참 없다. LP 바에 가서 피곤해진 귀를 씻어내곤 하지만, 대체로 흘러간 옛노래들이다. 7월 초 나오는 정미조의 새 앨범이 귀한 이유다. 미대를 나와 1972년 데뷔하자마자 톱 스타로 뜬 그는 79년 돌연 은퇴하고 37년간 음악 아닌 미술을 했지만, 8년 전 컴백해 꾸준히 신보를 내고 있다. 지금 나이의 현재적 기록이라는 의미와, 전성기였던 1975년을 가리키는 ‘75’라는 타이틀을 단 이번 앨범은 이효리·존박·유채훈·손태진·멜로망스·하림 등 후배들과의 콜라보가 절반인 특별한 작업이다. 이효리와 함께 부른 ‘엄마의 봄’은 이효리가 진행하던 토크쇼에서 선공개해 현장을 눈물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정미조를 만난 건 녹음실이 아닌 화실에서다. 22년간 수원대 미대 교수로 일했던 그는 지난해 모교인 이화여대에 자신의 그림과 앙드레김 디자인 의상 수십 점을 기증하고 전시를 열기도 했다. 시력 저하 탓에 이제 채색화를 그리긴 어렵지만, 드로잉은 지금도 앉은자리에서 수십 장씩 그릴 수 있다고 했다. 과연 화실엔 1980년대부터 그린 자화상 드로잉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Q : 요즘도 화실에 자주 오시나요.
A : “색이 정확히 안 보여서 붓은 거의 놨는데, 드로잉은 크리넥스 뽑듯이 해요. 얼마 전 제자가 내 물건을 정리하다가 드로잉이 쌓여 있는 걸 발견하고 도록을 따로 만들었죠. 거기 선정한 것만 5000장이고, 전부 1만 점이 넘어요. 너무 많이 그려놔서 이걸 다 어떻게 하나 고민이죠.”
Q : 이효리와 부른 ‘엄마의 봄’을 들으며 눈물이 났어요.
A : “나도 연습하면서 많이 울었어요. 우리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늘 그리움이 있는데, 이주엽 프로듀서가 쓰신 가사가 마치 내가 쓴 것 같아요. 손성제 작곡가가 효리씨와 듀엣을 제안했는데, 마침 엄마와 함께 여행 가는 예능을 찍는다면서 바로 오케이 하더군요. 딸이 엄마를 생각하고, 엄마는 또 자기 엄마를 생각하는 컨셉트의 노래예요. 모든 사람에게 엄마는 각자의 우주잖아요.”
Q : 후배들과 콜라보는 즐거우셨나요.
A : “음악성 있는 후배들과 대화하듯이 기록을 남기는 기획인데, 몇 분은 내 노래를 자기 콘서트에서 불렀었다더군요. 덕분에 즐겁게 작업했죠. 그런데 이번에 느낀 건, 후배들의 젊은 기운을 받아서 그런지 내 목소리가 더 젊어진 거예요. 존박과 부른 ‘너의 눈망울’을 지인에게 들려줬더니 어떻게 이런 목소리가 나오냐며 놀라더군요. 이제부터 시작인가 싶습니다.(웃음)”
정미조의 목소리에는 바람이 분다. 기계로 깎아낸 게 아니라 사람의 숨결이 고스란한 목소리로, 눈 감고 들으면 어떤 풍경이 펼쳐지는 ‘근사한 어른의 음악’. 정미조의 노래다. 4~5곡 짜리 미니앨범이 대세인 요즘, 정미조는 늘 13~14곡을 꾹꾹 눌러담은 정규앨범을 고집한다. “한국에도 멋진 어른의 음악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정미조의 음반을 낸다. 75세에 옛날 노래가 아니라 현재적인 음악을 하는 것 자체가 가요사의 중요한 유산이 될 거라 생각해 충분하게 기록을 남기려고 한다”는 게 컴백부터 줄곧 함께한 이주엽 프로듀서의 말이다.
Q : 무대를 떠났던 건 화실을 더 사랑해서일까요.
A : “무대 자체는 행복했어요. 어려서부터 무용을 해서 무대가 삶의 일부였죠. 노래는 배운 적 없지만 그냥 라디오에서 듣고 흥얼거리면 사람들이 좋아하더군요. 대학 행사 때 패티김 선생 눈에 띄어 알려지게 됐죠. 앙드레김 드레스에 풀오케스트라 반주로 몇 년간 신나게 활동했는데, 요즘은 가수가 대단한 스타인지 몰라도 당시엔 그다지 영광스럽지 않았어요. 음악은 달콤한 외도라 생각했기에 전공인 미술로 돌아가는 게 당연했죠. 갑자기 떠난 것도 아니고 2년간 어학공부 하면서 차곡차곡 준비해서 파리 유학을 간 거예요.”
그런데 낭만의 도시 파리를 즐길 수 없었단다. “와인의 본고장에서 와인 한잔 마실 체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요리도 못하고 돈도 없어서 삼층밥에 쓴 김치를 담아 먹었어요. 어느 날은 너무 외롭고 힘들어서 포도주스에 럼주를 타 먹었다가 아주 혼이 났죠. 아티스트랍시고 담배를 피워볼까 했지만 연기 냄새를 도저히 못 맡겠고. 힘들어서 적당히 귀국하려고 했더니 은사께서 연예인이라 대충 했다는 소리 듣기 싫으면 제대로 박사학위를 따고 오라더군요. 그 바람에 13년이나 파리에서 외로움을 견뎠네요.”
Q : 근사한 창법은 유학 시절 샹송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요.
A : “어쩌다 TV에 나나 무스쿠리가 나오면 보긴 했지만 일부러 찾아 듣진 않았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바브라 스트라이젠드고, 70년대 가장 즐겨 부르던 노래가 ‘더 웨이 위 워(The Way We Were)’였죠. 그녀가 부른 헨델의 ‘울게 하소서’ 만큼은 다른 일 하다가도 멈추고 들어요. 그런 세미클래식 가수를 좋아하긴 하는데, 창법은 저절로 터득한 거예요. 내 노래를 작곡하는 손성제 교수도 클래식과 재즈를 공부한 데다 약간 가요 느낌도 있어서, 세미클래식을 좋아하는 나와 궁합이 잘 맞는 거죠.”
Q : 그림과 노래를 오갔는데, 첫 번째 정체성은 뭘까요.
A : “똑같아요. 주어진 감각을 물감으로, 율동으로, 소리로 표현하느냐의 차이일 뿐이죠. 난 무용 공연도 곧잘 보러 갔는데, 움직이는 그림이라 생각해서죠. 무대라는 게 종합예술이거든요. 내가 무대에 서서 흔들흔들 제스추어 하는 건 적당히 흥에 겨워 그러는 게 아니에요. 카메라 앵글과 사람들 시선을 고려해서 모든 동작과 동선을 연출하는 거죠. 그게 다 미술과 관계 있고, 결국 종합예술을 하고 있다 생각해요.”
이런 생각은 백남준의 영향이 크다. 음악을 공부하다 현대미술 거장이 됐지만, 작업실에 피아노를 두고 늘 음악에서 영감을 찾았던 게 백남준이다. 그런데 2016년 컴백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 준 건 1979년 고별 공연에 게스트로 나왔던 최백호다. “백남준 선생이야말로 독일에 현대음악 배우러 갔다가 플럭서스 멤버가 돼서 미술을 하게 됐잖아요. 전시 오프닝 때 가면 항상 피아노 연주를 하시더군요. 그걸 보고 나도 노래와 그림을 같이 해야겠다 싶어서 2010년 윤석화씨가 하시던 복합문화공간 정미소에서 개인전과 공연을 같이 했었죠. 그때 최백호씨가 와서 목소리가 아깝다며 컴백을 권했고, 자기 음반 제작자까지 적극 소개한 덕에 여기까지 왔네요.”
Q : 덕분에 노래로 위로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A :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를 뿐인데, 나같은 사람을 일부러 찾아와 주고 눈물 흘리고 감동받는 모습을 보면 돌아오길 잘했다 싶어요. 전에 대학로 콘서트 때는 40대 남자 5명이 내 젊었을 때 사진을 프린트한 티셔츠를 맞춰 입고 왔더라구요. 컴백 이후 생긴 팬들이라 더 감사하죠.”
“60대에 다시 태어났으니 아직 몇살 안돼”
Q : 동년배인 나훈아씨는 은퇴선언을 했는데요.
A : “나는 소리가 안 나오면 은퇴라는 말도 없이 돌아서서 갈 생각이에요. 근데 요즘에 소리가 더 좋아졌다는 얘길 듣네요. 파리에 있을 때부터 감기를 달고 살았고, 40대부터 학교 일로 과로한 탓에 60대 초반까지는 몸이 많이 약해져 있었거든요. 그러다 주말마다 산을 오르면서 조금씩 회복됐고, 60대 후반에 노래를 다시 시작하고 새 삶을 펼치게 된 거죠. 그런데 희한하게 노래를 하면 할수록 몸이 점점 좋아지네요. 전에는 그림 그리다 힘들어 드러눕곤 했는데, 노래하다 드러눕는 일은 없어요.(웃음)”
실제로 그는 시력 저하를 빼곤 매우 건강해 보였다. 군살 없는 체형에 매끈한 피부는 75세로 보이지 않았는데, 매일 아침 토마토·사과·당근·양배추·바나나·브로콜리로 직접 만든 해독주스를 먹어서일까. “60대에 다시 태어났으니 아직 몇 살 안됐잖아요.(웃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내 몸은 40대 말 50대 초 같아요. 처음엔 기운도 없이 시작했는데, 지금은 고단하고 힘든 게 하나 없어요. 음악 덕분인 것 같아요. 음악이 이끌어주는 대로 가다 보니 이렇게 다시 태어난거죠.(웃음)”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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