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하루를 견디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양윤미 기자]
지난 10일, 김윤삼 시인과 대구의 한 행사장으로 향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시를 대하는 마음, 삶을 대하는 태도, 살아온 삶 이야기와 우리가 함께 혹은 따로 겪은 문학계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작년부터 부쩍 가까워진 김윤삼 시인은 나에게 인생의 선배님이자, 시를 위해 정진하는 도반이자, 지칠 때마다 힘이 되어주시는 든든한 선생님이다.
시인이신 김윤삼 선생님의 작품 사진도 종종 보게 된다. 노동 시를 쓰는 것으로부터 한 발 더 나아가 노동자들의 피와 땀과 숨결이 묻은 현장을 기록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이상일 사진작가에게 사진을 배우고 있다고 하셨다.
김윤삼 시인은 말한다. "대지에서 천 걸음이 하늘에서는 한 걸음입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비계공들이 쌓아올린 계단 없이는 공사 진행이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안다고 한다. 비계공들은 하늘길을 걷는 노동자들이다. 바람이 불어와도 거친 손끝으로 더듬고 투박한 발걸음으로 나아가는 일이 바로 그들의 숙명이다.
▲ 노동 현장의 모습 |
ⓒ 김윤삼 시인 |
김윤삼 시인은 비계공들을 보면 36년 전 기억이 떠오른다고 한다. 그가 조선소 하청 일을 하고 있던 당시, 안전 줄에 매달려 그네를 타던 동료를 온 힘 다해 당겨야만 했던 기억. 그 기억은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다. 그의 눈에 비계공들은 하늘길을 걸어 가족들의 밥을 짓는 사람들이자 직장 동료이며, 친구이며, 한 솥 밥 먹는 식구들이다. 그 생생한 기억은 "하루"라는 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공사장 발판이 쓰러진 날/ 비계공 김 씨는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처럼 / 안전줄에 매달린 채 그네를 탑니다 / (중략) 어둠을 끌어다 옆에 앉히고 / 병원 보낸 비계공 김 씨를 안주 삼아 / 푸념으로 한 잔 들이켭니다 // 비탈길을 내려다보는 가로등, / 나 아닌 내가 하루를 견뎠습니다. (하루 중에서)"
그는 몇 해 전, 문화예술 단체 '함께 만드는 정책 연구소'를 세웠다. 모시기 어려운 시인들을 울산으로 초청하여 북토크를 열기도 하고, 전국 각지에서 인문학 강연자를 섭외하여 울산 시민들의 의식 고취에도 힘쓴다. 뿐만 아니라 환경 단체 '초록별지구수비대' 소속 활동가로서, 울산의 바닷가 일대 및 산자락의 쓰레기를 주워 지구 환경 지키기에도 앞장서고 있다.
현재 울산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과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하고 있는 시인이 누구냐 묻는다면 나는 바로 김윤삼 시인이라고 답할 것 같다. 이 모든 활동들의 기반이자 밑천은 꾸준히 습관적으로 시집을 탐독하여 올리는 리뷰에 있을 것이다. 수많은 시인들과 소설가들, 서평가들의 글을 연구하고 탐구하고 감상하는 그. 그러니 인생을 관조하는 안목과 사람을 이해하는 감각이 뛰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새벽밥 먹고 출근하지 마라는 아내의 말, / 당긴 그물이 빈 바다라고 /뱃머리를 뭍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 야위어가는 등을 먹고 쑥쑥 자라는 아이와 /익어가는 아내의 아름다운 삶을 위해 / 도시락 뚜껑을 여니 붉은 강낭콩으로 하트를 그려 넣었습니다 /(꽃무릇 핀 날, 중에서)"
누구에게나 빈 바다같은 시절, 텅 빈 그물같은 순간이 있다. 그러나 빈 바다에서 텅 빈 그물을 낚는다고 하여, 그저 가만히 누워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물을 기워, 바다를 향해 또 다시 출항하는 것이 삶이다.
▲ 붉은 색 옷을 입고 간다 김윤삼 시집 |
ⓒ 삶창시선 |
그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고기장사 하는 어머님께 소풍을 같이 가자고 내내 조르던 날이 있었다고 한다. 먹고 사는 일은 언제나 중한 법이어서, 결국 어머님은 고기 장사를 하러 가셨고, 누나 셋 중 중간 누나 분이 김윤삼 시인의 소풍길에 함께 따라갔었다고 한다. 놀기 좋아했던 중간 누나는 어머님께서 주신 용돈으로 사진사를 불러 같이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 또한 그리움이고 추억이고 웃음이 되었다고 한다.
""빌어먹을"이라고 / 엄마는 울고 세수하고 / 아빠는 세수하면서 운다 // 나는 일기장에 두 움큼 담긴 슬픔을 / 빌어먹을, / 의미도 모르고 쓴다 / (울기 위해 세수하는 아버지 중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연민하며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시집 전체를 은은하게 달구고 있다. 때로는 형형하게 날선 빛으로, 때로는 아랫목에 숨겨놓은 군고구마 향기처럼 선득선득 눈물이 차올랐다 쓸려갔다 하는 것이다. 그가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은 맹자가 말했던 남과 나를 구분하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 싶어진다.
"밥 먹어야 산다고 기름밥, 눈칫밥, 쇳밥 다 심었습니다 / 마음이 이겨내지 못할까 봐 /노동이 이겨내지 못할까 봐 // 중요한 건 씨를 뿌린 것입니다 / 자라지 않아도 / 싹이 트지 않아도 / 뿌렸으니 언젠가는 틔웁니다 (밭, 중에서)"
우리를 먹여살리는 노동
늦은 밤에 퇴근한 남편이 간혹 저녁을 못 먹었다고 하는 날이면 나는 무진장 속상해진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밥도 안 먹고 다니면 어떡해. 오는 길에 전화라도 해줬으면 뭐라도 차려놨을텐데!" 하며 급히 냉장고를 뒤적거린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모두 노동을 통해 밥벌이를 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기름밥이든 눈칫밥이든 쇳밥이든, 우리는 모두 밥을 먹고 살기 위해 쉽지 않은 노동의 일터를 향해 나아간다.
▲ 노동의 현장 |
ⓒ 김윤삼 시인 |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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