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흑염소 그리고 몸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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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기자]
우리 부부는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로 터를 옮겨 8년째 살고 있다. 이웃사촌인 강희 아저씨는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 올 때 이미 허허벌판에 개를 십여 마리 정도 키우고 있었다. 벌판에서 키우던 개들의 개체수는 불규칙적으로 늘었다 줄었다 했다. 단 복날 무렵이 되면 규칙적으로 그 수가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복날이 가까워지면 우리 집 마당에서 키우던 중, 대형견 누렁이와 향숙이도 마을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몸보신'이란 단어와 함께 자연스레 떠오르는 '보신탕'. 인간의 몸보신을 위한 개의 희생은 개를 키우는 내겐 꽤 불편했다. 시내를 나갈 때마다 보는 벌판의 개들이 귀여운 동시에 가여웠다. 녀석들과 이별할 게 뻔하니 눈길조차 주기 미안했다.
▲ 우리 마을 강희 아저씨가 키우던 염소. |
ⓒ 이지혜 |
키워서 팔면 마리당 20만~30만 원 정도 받는다고 했다. 차를 타고 마을길을 지나가면 개 짖는 소리보다 염소 우는 소리가 더 많이 들렸다. 우스갯소리로 남편과 "우리도 '염(소)테크'나 해볼까" 할 정도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 마을은 물론 산 너머의 동네에서도 한창이던 흑염소 키우기가 시들해졌다. 한두 집을 제외하곤 흑염소가 싹 사라졌다. 내가 봐도 키우기 힘들 것 같긴 했다. 개와 달리 흑염소는 쉴 새 없이 계속 먹는다. 흑염소 뱃속을 채우려면 풀을 얼마나 대줘야 할지 상상만으로도 힘들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졌던 흑염소 떼가 2024년 올해 들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흑염소를 키우는 사람의 수는 적지만, 어미부터 새끼까지 적어도 7~8마리의 규모로 키우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 동물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동물, 개. |
ⓒ pixabay |
개식용종식법이 제정된 지난 2월부터 개 식용 목적의 운영 시설 설치 등 신규 운영이 금지되었고, 기존에 운영 중인 개식용 업계는 운영현황을 신고하고 2027년 2월까지 전업 혹은 폐업을 이행해야 한다.
'몸보신' 하면 '개고기'를 떠올리는 한국에서 개식용종식법이 제정될 정도로 개에 대한 인식과 관점이 달라졌다. 가족구성원이 되어 쇼핑이나 여행 등 많은 것을 사람과 함께 하는 요즘의 반려견 문화도 개식용종식법도 어찌 보면 개와 함께 사는 인간 세계에서 당연히 생겨날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동시에 한편에서는 개식용종식법을 피하기 위해서 많은 보신탕집이 염소탕집으로 바뀌고 있다. 가령 내가 사는 지역의 보신탕집으로 유명했던 OO식당은 얼마 전부터 보신탕이 메뉴판에서 사라지고, 염소탕을 판매하고 있다. 몸보신을 위한 식용 개가 사라진 자리를 염소가 채우는 게 아닌가 싶다. 개에서 염소로 식재료만 바뀐 것뿐이다.
그렇다면 흑염소는 불편함 없이 먹어도 될까. 굳이 인간의 몸보신을 위해 다른 생명을 꼭 희생시켜야만 할까. 피를 봐야만 뜨거운 더위를 이겨낼 수 있는 걸까. 올해 복날에는 어떤 음식으로 몸보신을 할지 고민해 보시라. 어쩌면 영양과잉의 시대에 진정한 몸보신은 덜 먹는 것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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