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노쉬 '이혼 20년' 전남편과 주연…"침 흘리며 보다 울게 될 영화"

나원정 2024. 6. 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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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개봉 영화 '프렌치 수프'
농익은 미식 로맨스…칸 감독상
"절대 공복에 보지 말 것"
비노쉬, 전 남편 배우와 재회
"20년만의 재회? 해방감 줬다"
영화' 프렌치 수프'는 20년간 한 집에 살며 요리를 만들어온 천재 요리사 외제니(줄리엣 비노쉬)와 미식 연구가 도댕(브누아 마지멜)의 미식 로맨스를 담은 시대극이다. 데뷔작 '그린 파파야 향기'(1993)로 제46회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베트남계 프랑스 감독 트란 안 훙이 이번 영화로 칸 감독상을 차지하며 금의환향했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첫 장면부터 40분간 프랑스식 풀코스 만찬을 차려낸다. 베트남계 프랑스 거장 트란 안 훙(61) 감독의 영화 ‘프렌치 수프’(19일 개봉)다.
때는 19세기, 프랑스 샤토의 시골마을. 주인공 외제니(줄리엣 비노쉬)가 새벽 밭에서 싱싱한 채소를 수확한다. 녹음이 내다보이는 그림 같은 부엌에서 두툼한 생선을 소스에 버무려 뭉근히 익히고, 선홍빛 고깃덩이, 채소를 끓여 헝겊으로 맑은 수프(‘콩소메’)를 걸러낸다. 페이스트리 가운데 갖은 재료를 소스와 채워 뚜껑을 덮은 ‘볼로방’,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머랭으로 덮어 오븐에 구워낸 과학적인 디저트 ‘오믈레트 노르베지엔’ 등. 이 집의 주인이자 미식 연구가 도댕(브누아 마지멜)과 20년간 손 맞춰온 천재 요리사 외제니, 어린 조수들이 무쇠솥, 구리 프라이팬 사이에서 맛의 오케스트라를 물 흐르듯 연주한다.


美글로브 "침 흘리며 보다 울게 될 영화"


정성을 듬뿍 담은 요리가 위층에서 기다리던 점잖은 미식가들의 입에서 사르르 녹는 순간 관객도 군침이 흐른다. “공복에 보지 말라”는 미국 매체 NPR의 경고대로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선 “올해 경쟁작 중 가장 급진적인 영화”(버라이어티)란 평가와 함께 감독상을 받았다. 스토리가 스크린을 장악한 시대에, 풍성한 자연풍광 속 농익은 요리의 맛, 중년의 사랑을 오감에 스며들 듯 그려내서다. 이런 외신 리뷰도 나왔다. “식욕을 돋우는 아트하우스 미식 포르노”(할리우드 리포터), “처음 3분의 2는 침을 흘리며 보고, 마지막 3분의 1은 눈물을 흘리며 보게 될 것이다”(보스턴 글로브)….

‘프렌치 수프’는 ‘인생의 가을’에 여물어간 사랑 이야기다. 도댕과 외제니는 미식가로도 유명했던 프랑스 작가 마르셀 루프의 1920년대 소설 『도댕 부팡의 삶과 열정』이 원작. “직업이자 예술로서 요리에 관한 주제를 찾고 있던” 트란 안 훙 감독은 원작에선 일찌감치 퇴장하는 도댕의 옛사랑이자, 전속 요리사 외제니와의 관계를 새롭게 상상해 시나리오를 썼다.

영화' 프렌치 수프'에는 19세기 실존했던 다채로운 요리들이 나온다. 도댕이 미식클럽 친구들과 먹는 '오르톨랑'은 멧새 일종인 오르톨랑을 오븐에 구운 요리로, 머리에 냅킨을 쓰고 먹는 모습을 가리는 게 특징. "너무 맛있어서 신 몰래 먹었다"는 요리로, 요리법이 잔인해 현재는 금지됐다고 한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그는 이미 데뷔작 ‘그린 파파야 향기’(1993)에서 어느 베트남 마을의 식모 소녀 무이의 음식과 삶과 사랑을 시적으로 그려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신인 감독상)을 수상,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이 영화로 만난 주연배우 트란 누 엔 케가 지금 그의 아내(배우 이병헌이 주연한 이 감독의 연출작 ‘나는 비와 함께 간다’(2009)에도 아내가 출연했다)다. ‘그린 파파야 향기’에서 아궁이 장작불에 달군 무쇠솥에 푸른 채소, 고기를 볶고, 소담하게 지은 쌀밥, 정갈한 완탕국을 차려낸 베트남식 상차림엔 무이의 가슴에 싹튼 풋사랑이 서려 있었다. 유명 평론가 로저 에버트(‘시카고 선타임스’)는 “보는 것만으로 마치 잔잔한 음악을 듣는 것 같은 영화”라 극찬했다.


사랑한다 대신 "식사하는 모습 봐도 될까요?"


영화' 프렌치 수프'의 주연 배우 줄리엣 비노쉬(오른쪽)와 브누아 마지멜은 2003년 이혼 후 이 영화로 20년만에 만났다. 1999년 결혼해 외동딸을 둔 사이로, 비노쉬는 전 남편과 연기가 오히려 "해방감을 줬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그린 파파야 향기’가 베트남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자란 감독의 뿌리를 되살린 영화라면, ‘프렌치 수프’는 그가 “고전적인 프랑스인들이 지녔을 법한 삶에 대한 열망”을 뭉근하게 끓여냈다. 이 영화의 프랑스 원제인 프랑스 솥 요리 ‘포토푀’처럼 말이다. “프랑스 예술과 정신에선 차분함과 절제를 높이 평가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외제니와 도댕의 관계는 매우 프랑스적”이라고 그는 영화사를 통해 전했다.
사실 도댕은 외제니에게 20년째 청혼 중이다. 여름의 빛나는 푸르름을 사랑하는 외제니는 단 한 번도 도댕이 자신을 온전히 소유하게 허락지 않는다. 외제니의 몸이 쇠약해져 가자, 도댕은 다시 한 번 청혼한다. ‘사랑한다’는 고백을 그는 이렇게 한다. “외제니, 식사하는 모습 좀 지켜봐도 될까요?” 외제니는 조심스레 수락한다. 이어 그는 찬찬히 음미하기 시작한다. 도댕이 오직 외제니를 위해 몇 시간이고 공들여 직접 만든 아름다운 코스 요리를 말이다.
트란 안 훙 감독의 출세작 '그린 파파야 향기'의 한장면. 주연 배우 트란 누 엔 케(왼쪽)는 이후 감독과 결혼한 부부 사이다. [중앙포토]
이 영화가 ‘바베트의 만찬’(1987) ‘탐뽀뽀’(1985),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한 ‘초콜릿’(2000) 등 걸작 미식 영화에 비견되는 건 이처럼, 음식 맛을 통해 관능과 충동, 매혹 등의 인간적인 감정을 만져질 듯 그려내서다. ‘프렌치 수프’ 속 배(Pear)를 와인에 졸인 부드러운 디저트(푸아르 포셰)는 청춘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에서 17살 소년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의 달콤씁쓸한 첫사랑을 상징했던 복숭아와도 자주 비견된다.

이 영화의 음식 총괄은 서울에도 레스토랑을 낸 프랑스 미슐랭 스타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가 맡았다. 올해 일흔넷인 그는 영화 속 요리를 사전에 모두 손수 실험하고 완성해냈다. 그의 오랜 제자들이 촬영 중 만든 요리들은 모두 실제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배우들이 나날이 살이 쪘단다(극 중 ‘포토푀’ 요리 장면에는 무려 40㎏의 고기가 사용됐고, 현장에 있던 배우‧감독‧스태프들이 모두 먹어치웠다). 가니에르는 이 영화에 유라시아 왕자의 요리사 역할로 카메오 출연도 겸했다.


비노쉬 20년만에 재회 전남편 "그녀 눈에 빠져" NG


영화 '프렌치 수프'에선 사랑한다는 말 대신 "식사하는 모습을 봐도 될까요?"라고 말한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미식, 사랑의 열병과 함께 영화의 프랑스적 정취를 끌어올린 존재는 프랑스 대표 배우 줄리엣 비노쉬(60)다. 또 다른 주연 브누아 마지멜과 그는 1999년 10년 연상연하 커플로 결혼해 외동딸을 뒀지만, 2003년 짧은 부부 관계를 끝냈다. 이후 20년만에 ‘프렌치 수프’에서 재회했다.

촬영 중 이런 NG가 났단다. 유지니가 도댕에게 자신이 그의 요리사인지, 아내인지 물었을 때다. 유지니의 독립적 정체성을 인정하는 의미에서 “나의 요리사입니다”라고 대사대로 말한 마지멜이 “그리고 내 아내”라 덧붙인 것이다. 원래 대본과 정반대 의미가 됐다.

트란 안 훙 감독은 뉴욕타임스에 당시 재촬영을 요청한 자신에게 마지멜이 다가와 “그녀의 눈에 빠져버렸다”고 비노쉬 몰래 사과했다고 전했다. 비노쉬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전 남편과 재회 소감이 고민됐냐고 묻자 “다들 전남친과 한번쯤 영화를 찍어봐야 한다”고 추천했다. “오히려 해방감을 느꼈다”면서 “막힌 부분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졌다. 이 영화 이후 얘기를 더 나누진 않았고 그(마지멜)의 의견은 모르지만, 저는 괜찮았다”고 말했다.
‘프렌치 수프’는 올초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에 프랑스 대표작으로 출품됐다. 상영시간 135분, 12세 관람가.

영화' 프렌치 수프'는 19세기 프랑스 시골 주방에서 마치 무용극처럼 유려한 몸짓으로 그려낸 미식 로맨스다.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 주방 장면들은 카메라 1대로 화면에 담길 이미지를 정확히 계산해 무용 안무를 짜듯 촬영했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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