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알았다...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김성호 기자]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열에 다섯은 이 책이라 답한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위대하다 해도 부족하지 않은 재능과 업적에도 동반자이자 남편이던 사르트르와의 관계로 더 많이 언급되는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작품이다. 중세 이탈리아 어느 도시국가부터 현대에 이르는 오랜 역사를 가로질러 인간 존재 본연의 가치를 탐색하는 소설로써 이 작품은 수많은 후대 문학이며 영화와 드라마에 영향을 미쳤다.
▲ 리빙: 어떤 인생 포스터 |
ⓒ 무주산골영화제 |
불완전함이 주는 특별함에 대하여
흥미로운 건 영원성이 주는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이다. 영원한 시간이 주어지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시간을 가치 있게 느낄 수 없으니까. 제가 가장 빛나는 시절 십년의 시간을 들여 필생의 과업을 이루려는 이의 도전을 생각해보라. 무한한 시간을 가진 이가 제게 가장 중한 것을 들어 다른 무엇을 이루려는 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한 각도에서 보자면 무한한 자원이 주는 권태는 저주이기도 하다.
"비밀을 하나 말해줄까? 신들은 사실 인간을 부러워해. 우리는 언젠가 죽을 운영이니까. 우리의 매 순간은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사라질 운명을 지닌 자들에겐 모든 것이 더 아름다운 법이지."
기독교의 전승 일화엔 이른바 '방황하는 유대인' 이야기가 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던 예수를 조롱하고 때린 구두장이로, 참다 못한 예수로부터 "내가 올 것을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그는 죽지 못하는 몸이 되어 예수가 부활한다는 이 종교의 약속의 날까지 온 세상을 떠돌게 되었다고. 영원한 생명이 세상 흔한 생각처럼 즐거운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저주에 가까운 것이란 인식이 이처럼 곳곳에서 발견된다.
▲ 리빙: 어떤 인생 스틸컷 |
ⓒ 무주산골영화제 |
평생보다 무거운 몇 주의 이야기
죽음, 즉 끝이 있는 삶은 어떤 시각에선 인간에게 축복과도 같은 것이다.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죽음의 역설을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가 있다. <리빙: 어떤 인생>이 바로 그와 같은 작품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일본 출신으로 일찍 영국으로 이민을 가 작가로 대성한 가즈오 이시구로가 직접 각본을 쓰고 제작에까지 참여한 것으로 유명한 영화이기도 하다. <어바웃 타임>과 <러브 액츄얼리> 등을 통해 한국에도 얼굴을 알린 빌 나이가 주연을 맡았다.
영화는 제가 죽는다는 사실을 안 어느 공무원의 이야기다. 2차대전 종전 후로 보이는 런던, 시청 공공사업부 수석 윌리엄스(빌 나이 분)는 좋게 말하면 성실하고 나쁘게 말하면 재미없는 사람이다. 지나가는 모습만 봐도 시간을 알 수 있었다던 임마누엘 칸트의 일화처럼, 매일 틀에 박힌 생활을 하는 그다. 정해진 시간에 틀에 박힌 차림으로 출근열차를 타고 직장에 간다. 같은 자리에 앉아 어제가 오늘처럼, 오늘이 내일인 듯, 똑같은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게 뒤바뀐다. 제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단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단 인식이 그의 삶을 막바지로 몰아간다.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늘 열심히 살았는데! 사형대에 몰린 죄수의 심정으로, 사냥개에 쫓기는 멧돼지처럼 그는 방황한다.
▲ 리빙: 어떤 인생 스틸컷 |
ⓒ 무주산골영화제 |
절망과 향락, 그러나 무엇도 답이 되지 못했다
영화는 윌리엄스의 변화를 얼마간의 애정과 얼마간의 염려가 담긴 시선으로 뒤따른다. 우선 윌리엄스는 바닷가로 간다. 대면키 어려운 고통과 마주하여 바다를 찾는 건 얼마나 클리셰(진부하고 틀에 박힌 장치를 이르는 말)적인 결정인가.
무얼 해야할 지 몰라 바닷가 레스토랑에 앉은 그는 우연히 어느 작가(톰 버크 분)가 종업원에게 쏟아내는 한탄 섞인 투정을 듣는다. 요컨대 저는 위대한 작품을 쓰려는 소설가로 영국의 현실이 제게 그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 잠이 오지 않아 수면제를 찾는 그에게 윌리엄스가 꺼내 건네는 약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죽고자 했으나 죽지 못했던 것이다.
윌리엄스는 작가 서덜랜드를 따라 향락의 세계를 경험한다. 이제껏 못 놀아본 한을 풀기 위해서일까. 흥청망청 취해도 보고 도박을 하고 춤과 노래를 즐겨 보지만 하루아침에 익을 리가 없다. 어느 순간 무의미함을 느낀 것도 자연스런 일. 그는 향락에 젖어 남은 생을 소모하길 그만둔다.
▲ 리빙: 어떤 인생 스틸컷 |
ⓒ 무주산골영화제 |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러나
마거릿을 만나고 윌리엄스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생기 있는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제게도 어떤 힘이, 가능성이 생겨나는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일어난다. 오랫동안 아무렇지 않게 외면해왔던 업무를 돌보는 것도 그래서다. 작은 놀이터가 그로부터 만들어진다. 그 놀이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은 그대로 <리빙: 어떤 인생>의 묘미가 된다.
영화는 여러모로 라틴어 격언,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상기하게 한다. 아무리 위대한 장군이며 왕일지라도 언젠가 죽는 한 인간임을 기억하도록 하는 것, 이 격언은 아주 오랫동안 그와 같은 역할을 수행해왔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을 무력하게 하고 삶을 허망하게 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단 점은 특기할 만하다. 죽음을 곁에 둘 때 인간은 저의 유한함을 인지하게 되며, 그로부터 보다 본질적이고 가치 있는 일에 생을 바칠 수 있다는 인식이 태어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나 그를 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그리 많지가 않다. 생이라는 일시적 현상이 죽음이란 귀결을 가리기 때문이다. 마침내 도달할 죽음을 떼어놓고 생을 단절적 무엇으로 바라본다면 생이 지닌 가능성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는 걸 이 영화와 같은 작품이 내보인다. 죽음에 대한 태도야말로 삶의 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일이라고, 죽음의 의미를 묻는 것이 삶의 의미를 묻는 것이라고 말한다.
▲ 무주산골영화제 포스터 |
ⓒ 무주산골영화제 |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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