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이 필요 없는 시대, 그래도 앨범은 ‘쓸모’가 있다
소장 가치있는 기념품으로 제작
‘포카’만 빼고 버려 환경 문제도
요즘은 음악을 카세트테이프나 CD, LP 등 유형의 매체로 듣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앨범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보다 더 많이 팔리고 있다. 지난해 팔린 K팝 음반만 1억장(써클차트 기준)이 넘었을 정도다.
앨범의 의미가 변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앨범은 여러 음악을 CD나 카세트테이프, LP 등에 모아놓은 것이었지만, 현재의 앨범은 팬들에게 종합선물세트이자 좋아하는 가수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응모권이면서, 동시에 판매량이란 수치로 ‘내 가수’의 위상을 높여줄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앨범의 디자인과 형태는 점차 다양해지고, 팬 한 사람이 구매하는 앨범의 개수도 여러 장이 됐다. 이 때문에 다량의 앨범이 포토카드 등 필요한 것만 빼고 버려지는 신세가 되면서 환경 파괴 문제가 대두되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엔터 업계는 앨범을 단순한 도구가 아닌 소장할 가치가 있는 기념품으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앨범에 ‘쓸모’를 부여하는 것이다. 최근 가장 화제가 된 건 에스파 정규 1집 ‘아마겟돈’의 한정판 앨범이다. CD플레이어(CDP)를 함께 주는 한정판 앨범은 14만5000원이란 높은 가격에도 구매를 원하는 수요가 이어지면서 3차 예약판매까지 진행됐다. 지난달 24일 첫 예약판매 당시엔 오픈 1시간 반 만에 품절됐다.
SM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21일 “음악성과 작품성에서 자신감이 있는 앨범이라 CD의 전곡을 들어봤으면 하는 마음에 CDP를 함께 구성했는데, 이렇게까지 뜨거운 반응을 얻게 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며 “실제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으면서 소유할 수도 있다는 데서 앨범의 의미가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팬들도 이 CDP를 통해 다른 앨범의 CD도 재생해볼 수 있다는 것에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데뷔 10주년 콘서트를 진행한 악뮤는 데뷔 10주년 기념 한정판 피규어 앨범을 출시했다. ‘러브 리’ 앨범을 통해 사랑받은 큐피드와 노래 ‘후라이의 꿈’ 캐릭터를 피규어 형태로 만들어 일상생활 속 소품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앨범엔 CD 대신 피규어와 큐레이션 노트, 캐릭터 스티커, QR 가이드 등이 담겼다.
(여자)아이들은 Y2K 감성을 극대화한 카세트테이프 버전 앨범 출시를 예고했다. 다음 달 8일 발매되는 미니 7집 ‘아이 스웨이’ 스페셜 버전을 실제 카세트테이프로 발매하는 것이다. NCT 위시는 지난 2월 데뷔 싱글 ‘위시’를 내면서 스마트 앨범 ‘위츄’를 발매했다. 두꺼운 포토북과 CD 대신 NFC(근거리 무선 통신) CD와 스티커 세트, 인형 키링 등으로 구성해 팬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했다.
다만 이런 형태로 앨범을 제작, 판매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일반 앨범을 내놓으면서 비싼 가격의 한정판으로 또 출시하는 만큼, ‘고가의 기념품’일 뿐 불필요한 앨범 소비를 줄일 수 있는 궁극적 대안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K팝 시장에서 실물 앨범의 판매량은 그 가수 혹은 음악의 진짜 인기보다 팬덤의 초동 경쟁에 좌우되고 있다”며 “K팝이 최근 밀어내기, 사재기, 다량 구매로 인한 차트 교란과 환경 파괴 등의 문제에 직면한 만큼, 앨범을 사는 경험을 단순한 상품 구매 이상의 색다른 경험, 앨범의 가치 자체를 부각하는 형식의 상생 마케팅이 필요해 보인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카세트테이프나 CDP 발매도 색다른 경험이라 생각하지만, 높은 가격과 한정 판매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본다”며 “뉴진스의 앨범 발매 사례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진스는 앨범의 구성품을 가방에 담아내는 것을 여러 차례 시도했는데 한정판으로 판매하지 않았다. 포토카드 역시 멤버 중 랜덤 1종이 아닌 멤버 전원을 넣었다. 데뷔앨범 ‘뉴 진스’, 미니 2집 ‘겟 업’ 때 각각 원형 가방과 비치백 형태의 앨범을 냈고, 이날 일본에서 발매한 데뷔 싱글 ‘슈퍼내추럴’은 드로우스트링 백 버전과 크로스 백 버전으로 가방의 형태를 2개로 나눠 제작했다. 앨범 구매 후 팬들이 실제로 가방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앨범 그 자체의 소장 가치도 높이는 방식이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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