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76세 출입 금지가 쏘아 올린 혐오 논쟁[마감후]
판결 후 늘어난 ‘노○○존’
배제·혐오·차별 확산 우려
조례 강화 주장 있지만
‘진상손님’ 해프닝 옹호론도
편집자주 - ‘마감후’는 지면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뒷이야기를 온라인을 통해 밀도 있게 전달합니다. 모두가 기억하는 결과인 속보, 스트레이트, 단신 기사에서 벗어나, 그간의 스토리, 쟁점과 토론 지점, 찬반양론 등을 다양한 시각물과 함께 보여드립니다.
인천 한 헬스장의 ‘아줌마 출입금지’ 안내문이 영국 BBC뉴스에 까지 보도된 데 이어, 대구 한 호텔 헬스장의 ‘만 76세 이상 고객 입장 금지’ 게시문이 알려지며 노줌마·노실버·노키즈존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영업의 자유·경제상의 창의로 볼수도 있지만, 혐오를 조장하고 평등권에 위배되는 차별행위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일각에선 자영업자의 고충이 반영된 ‘진상 손님’을 막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봐야 한다는 옹호론도 있다.
최근 영국 BBC는 아줌마 출입금지 헬스장 뉴스를 보도하면서 한국사회의 “특정 연령집단에 대한 편협함(intolerance for specific age groups)”이 커지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고 보도했다. 또 “일반적으로 아줌마(ajumma)는 30대 후반 이상의 나이 든 여성을 가리키는 용어지만 무례하거나 불쾌한 행동을 경멸하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BBC는 어린이·노인 출입을 제한한 한국의 가게들이 비판을 받은 사례도 언급했다.
문제가 된 헬스장은 ‘아줌마 출입 금지’라는 안내문을 부착하고, 안내문 하단에 ‘교양 있고 우아한 여성만 출입 가능’이라고 써서 논란에 불을 붙였다. 안내문에는 아줌마와 여성을 구별하는 8가지 기준도 적었다. 해당 헬스장 업주는 일부 여성들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자 이런 안내문을 부착했다고 항변했다.
매장 안전사고..업주책임 판결 후 늘어난 ‘노○○존(No○○Zone)’
특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지하는 ‘노○○존(No○○Zone)’은 자영업자 커뮤니티에 줄곧 이슈가 되어왔다. 매장에서 발생한 안전사고의 책임이 업주에게 있다는 법원 판결 이후 일부 연령층의 출입을 제한하는 업장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 2013년 부산지법은 부산 한 음식점에서 뜨거운 물을 들고 가던 종업원과 10세 아동이 부딪혀 아동이 화상을 입자 자영업자에게 “직원 안전 교육이 미흡했다”며 “41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14년 의정부지법도 2012년 음식점에서 유모차에 탄 아기에게 발생한 화상 사고에 식당의 책임 70%, 부모의 책임 30%로 판결했다.
문제는 안전사고 금지와 무관하게 ‘노○○존’의 범위가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노중딩존·노커플존·노래퍼존 혹은 ‘49세 이상은 정중히 거절합니다’란 안내문까지 존재한다. 소비자들의 제보를 통해 구글 노키즈존 지도가 만들어져 온라인상에 공유되기도 했다.
‘행동’ 아닌 ‘속성’ 근거로 배제·혐오·차별 문화 확산 우려
연령을 이유로 입장을 제한하는 행위는 명백히 국가인권위원회의가 정하는 차별 행위에 들어간다. 인권위는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①성별 ②종교 ③장애 ④나이 ⑤사회적 신분 ⑥출신 지역 ⑦출신 국가 ⑧출신 민족 ⑨신체 조건 등 총 19가지를 규정하는데 나이는 네번째로도 포함된다.
이 때문에 인권위 차원에서 2017년 노키즈존을 차별행위라고 판단한 사례도 있다.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모든 아동 또는 아동을 동반한 보호자가 사업주나 다른 이용자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인권위 결정은 권고에 불과해 노OO존을 운영한다고 해서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어서 여전히 법적 판단은 공백으로 남아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게시물들이 행위가 아닌 속성을 근거로 타인을 배제하거나 적대시하는 편견을 확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동석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특정 연령대 차별을 금지하는 공고문이 대외적으로 부착이 되면 사람들의 인식 속에 사회취약층에 대한 혐오나 배제가 내재화되고, 차별의 합리적인 근거로도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지자체 차원의 조례를 통해 규제해야 하는 영역”이라면서 “영업의 자유 원칙이 모든 인권이나 평등권을 침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지자체 조례로 규제해야 VS ‘진상손님’ 대처 해프닝 옹호론도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합리적 이유 없이 노인의 이용을 금지하는 건 노인혐오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지자체 차원에서 인식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며 “노인복지시설에도 헬스장을 확대해 노인들이 편하게 운동할 수 있는 곳도 여러 곳 마련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앞서 대구 수성구 소재 4성급 호텔 헬스장도 ‘만 76세 이상인 고객은 회원 등록과 일일 입장이 불가하다’는 글을 게시했다. 헬스장 측은 쓰러지거나 미끄러지는 등 사고의 이유라면서 “현재 이용 중인 만 76세 이상 회원은 안전사고 발생 시 본인이 책임을 지겠다는 내용의 가족 동의서를 제출하면 심사 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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