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영 기자의 안녕, 나사로] 불안을 끄는 스위치 ‘믿음’
“인간의 뇌는 생존을 위해 두 가지 기능을 끊임없이 발전시켜왔습니다. 그중 하나는 ‘예측’이고 다른 하나는 ‘공감’입니다.” 뇌과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 중인 장동선 박사가 한 강연에서 전한 말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미래 예측 능력과 하나의 뇌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을 분석할 수 있도록 다른 뇌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면서 예측 능력이 역기능으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했다.
“위기가 오지 않았는데도 뇌가 과잉 시뮬레이션을 하면 생기는 게 있습니다. 바로 ‘불안’입니다. 미래 예측을 잘하기 위해 발전시킨 능력이 역효과를 가져오는 셈입니다. 예측 과잉을 줄여서 불안을 줄여나가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큰 위기를 직면하게 되죠.”
최근 연일 극장가로 관객의 발길을 끌어모으는 영화가 있다. 감정을 의인화한 애니메이션으로 496만 관객을 동원했던 ‘인사이드 아웃’(2015)의 속편 ‘인사이드 아웃 2’다. 전체 관람가 등급의 만화 영화가 ‘애들이나 보는 거 아냐’는 편견을 깨고 ‘어른 아이 가리지 않는 무한 감동’이란 댓글 세례를 받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을 캐릭터로 만들어 일상 속 누구나 겪을 법한 상황에서 그들이 어떻게 발동하는지 기발한 상상력으로 재해석해 나이 성별 지역을 막론하고 공감하게 하는 이야기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장한 이야기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설명할 수 없었던 인생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했다.
2편에선 사춘기 소녀가 된 주인공 라일리의 질풍노도와 그 과정에서 표출되는 감정 캐릭터들을 다룬다. 전편에 등장한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의 다섯 가지 감정에 ‘불안 당황 따분 부럽’이란 네 가지 감정이 추가되며 한층 더 복잡하고 섬세해진 심리 세계를 묘사한다.
‘버럭’이 1편의 빌런이었다면 2편에선 ‘불안’이 그 계보를 잇는다. 학교 아이스하키팀에 뽑히고 싶어하는 라일리를 새벽에 깨워 훈련하게 만드는 동력이지만, 매일 밤 상상 속 최악의 시나리오로 몰아넣으며 괴롭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결국 ‘굴러온 돌들’의 리더였던 불안은 ‘박힌 돌들’에 해당하는 기존 감정들을 본부에서 쫓아내고 감정 제어판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육체와 동반 성장한 라일리의 마음 밭엔 전에 없던 감정들의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켈시 맨 감독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신념 자아 추억 기억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실체화한다. 그 가운데서도 최고의 신스틸러는 흰머리에 찻잔을 들고 과거의 향수에 젖게 만드는 ‘추억 할머니(nostalgia)’다. 혼돈과 고난을 관통하며 나이라는 숫자를 쌓아 올린 어른조차 모두 저마다의 추억을 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소중함을 각인시킨다.
사회 문화적 환경으로 이른 사춘기를 겪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에게도 불안은 매 순간 찾아온다. 최근 우리 집 남매도 쉬이 잊히지 않을 불안을 경험했다. 매일 오후 하굣길을 함께하던 외할머니와의 이별이었다. 갑작스레 마주하게 된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 납득될 리 없는 아이들에게 ‘외할머니를 다시 못 보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은 아이들도 모르는 사이 무겁게 다른 감정들을 짓눌렀을 게 틀림없다.
장례를 치르고 일상으로의 회복을 준비하는 동안 부모로서 아이들의 마음에 심어줘야 할 분명한 감정이 떠올랐다. 다름 아닌 ‘믿음’이다. 성경은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슬픔과 당황, 불안이 휘몰아치는 상황 가운데서도 두려움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는 견고한 마음이 곧 ‘믿음’임을 알려줘야 했다. 1편 엔딩 크레딧에 ‘영원히 철들지 말아 달라’는 자막을 새겨 넣었던 제작진은 2편에선 ‘너희가 어떤 모습이든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아이들의 불안정은 분명 또 다른 성장의 예고편이다. 그 과정에 다른 무엇보다 믿음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심어줄 때 라일리의 그것보다 더 성숙한 기쁨이 내 아이의 마음에 새겨지지 않을까.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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