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혼잡통행료 부과 연기… 美 대선 맞물려 논란 커진다

김남중 2024. 6. 22.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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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시행 임박, 전격 연기 결정 파문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 브리지를 지나 맨해튼 남쪽의 핵심 상업지구로 진입하는 차량들이 긴 행렬을 이루고 있다. AP연합뉴스


뉴욕은 미국 최초의 혼잡통행료 실험을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오는 30일부터 맨해튼 핵심 상업지구로 진입하는 승용차 한 대당 15달러(2만원)를 비롯해 트럭·버스·오토바이 등에 혼잡통행료를 부과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시행을 불과 몇 주 앞둔 지난 5일(현지시간)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가 이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민주당 소속 주지사가 갑작스럽게 시행 연기를 결정하면서 혼잡통행료는 뉴욕의 뜨거운 논란거리가 됐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일 관련 기사와 논평을 쏟아내고 있다. 혼잡통행료는 11월 미국 대선에서도 이슈가 될 전망이다. 뉴욕과 인근 뉴저지 등에서 공화당은 혼잡통행료 폐기를 선거 쟁점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내 호컬 주지사의 경쟁자들은 사업 재추진을 약속하고 있다.

선거 표심 악화 우려로 시행 연기

교통체증이 극심한 도심으로의 차량 진입을 억제하기 위해 고안된 혼잡통행료 제도는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스웨덴 스톡홀름, 노르웨이 오슬로 등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다. 한 보고서는 런던이 혼잡통행료 도입으로 교통 혼잡을 30% 줄였고 버스 승객 수를 33% 늘렸다고 평가했다. 파리에서는 도심 지역이 보행자와 자전거 천국으로 바뀌었고, 스톡홀름에선 소아 천식 발병률이 50% 가까이 떨어졌다.

뉴욕도 혼잡통행료를 수십년간 논의해 왔다. 혼잡통행료는 뉴욕의 악명 높은 교통지옥의 해결책으로, 자동차 사용을 줄이는 기후위기 대응책으로, 또 뉴욕 지하철·버스를 운영하는 메트로폴리탄교통국(MTA)의 재정난 해소책으로 지지를 받았다.

최근 WSJ 보도에 따르면 맨해튼 중심지 미드타운의 차량 평균속도는 시속 7.2㎞까지 떨어져 사람이 걷는 속도에 근접하고 있다. 뉴욕시 교통위원회는 2022년 가을 맨해튼 상업지구로 이동하는 차량이 하루 약 80만2000대라고 집계했다. 혼잡통행료 시행은 맨해튼으로 들어가는 자동차 수를 하루 10만대가량 줄일 것으로 예상됐다.

뉴욕은 대중교통을 이용한 통근자 비율이 미국의 다른 도시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곳이다. 주민 대다수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교외 지역에서도 92%가 대중교통을 통해 진입한다. 그래서 뉴욕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혼잡통행료 제도를 시행해볼 수 있는 도시로 여겨졌다.

물론 반대도 있었다. 자동차 이용자와 뉴욕으로 통근하는 교외 거주자들, 일부 사업주와 노조 등은 강력하게 반대했다. 반대자들은 혼잡통행료가 자동차 통근자와 차량으로 사업하는 기업에 불공평하다고 주장했다.

오랜 논란 끝에 2019년 뉴욕주의회는 혼잡통행료 법을 통과시켰고, 지난해 6월 미 연방도로청(FHA)은 사업을 승인했다. 이어 올해 3월 MTA가 혼잡통행료 부과를 가결했다. 호컬 주지사는 지난달까지도 혼잡통행료를 “도시를 더 살기 좋게 만드는 방법”이라며 옹호했다. 하지만 이달 들어 갑자기 ‘경제회복 지연’과 ‘생활비 상승 우려’ 등을 이유로 입장을 바꿨다.

호컬 주지사는 혼잡통행료 징수를 연기한 이유로 경제를 내세웠지만 언론들은 선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NYT는 지난 7일 ‘뉴욕은 혼잡통행료를 지연시킬 게 아니라 선도해야 한다’는 제목의 사설을 냈다. 이 사설은 호컬 주지사가 돌연 태도를 바꾼 이유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혼잡통행료 계획을 공격했고, 뉴욕주의 다수 민주당 의원들은 경쟁적인 하원 선거에서 혼잡통행료 시행으로 공격받을 것을 우려했다”고 분석했다.

혼잡통행료는 인기 있는 정책은 아니다. 지난 4월 시에나칼리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혼잡통행료 징수에 반대하는 뉴욕 시민은 64%에 달했고 33%만 찬성했다. 교외 지역 응답자들의 반대 비율은 더 높았다.

뉴욕이 안 되면 다른 도시도 어렵다

혼잡통행료 시행을 연기한 뉴욕 민주당의 결정이 11월 선거에서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불명확하다. 하지만 미국 도시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시도 중 하나가 좌절됐다는 건 분명하다.

NYT는 지난 16일 기사에서 도심의 고가 6차로 고속도로를 지하화한 1982년 보스턴시의 ‘빅 디그’ 등 미국 도시의 미래를 바꾼 사업들을 소환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도시들은 버스나 자전거 같은 자동차의 대안을 늘리기 위해 애써 왔지만 운전을 억제하려고 노력한 적은 거의 없었다”며 “(혼잡통행료가 시행됐다면) 미국의 도시와 자동차 사이의 세기적인 관계에 큰 변화를 일으켰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의 실패가 혼잡통행료 도입을 추진하는 로스앤젤레스(LA) 등 다른 도시들에 주는 메시지도 우려스럽다. 코넬대의 도시·지역계획 연구원인 자커리 말렛은 “자동차에 대한 교통 대안이 있는 뉴욕시에서조차 혼잡통행료를 실행할 수 없다면 좋은 대안이 없는 다른 도시에선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고 WP에 말했다.

노후된 대중교통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려는 뉴욕시의 계획도 수렁에 빠졌다. MTA는 현 통행량 기준으로 혼잡통행료 수입이 연 1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고, 총 150억 달러를 조달해 지하철 확장과 전기버스 도입 등에 투자할 계획이었다.

지난 5일(현지시간)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가 혼잡통행료 시행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하자 시민들이 주지사 사무실로 몰려가 항의하는 모습. AP연합뉴스


뉴욕주지사의 결정이 뒤집힐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혼잡통행료 시행은 뉴욕시 교통위원회의 투표 없이는 중단될 수 없다. 이 정책을 지지해 온 시민과 단체, 정치인들은 혼잡통행료 연기 결정을 무효화하는 소송을 준비 중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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