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적 법률지식 제공” “위법적 무료 법률상담”

양한주,신지호 2024. 6. 22.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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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톡 이어 변협 규제 앞에 선 ‘AI 대륙아주’
K리걸테크, 또 발목 잡히나
AI, 30초 만에 예상 형량 답변 내놔
게티이미지뱅크


“음주운전을 하다 차량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습니다. 혈중알코올농도는 0.09%가 나왔습니다. 5년 전과 8년 전 음주운전으로 두 차례 처벌받았습니다. 이번에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요?”

21일 챗봇(대화형 인공지능) ‘AI 대륙아주’ 입력창에 이렇게 질문을 적자 약 30초 만에 600자 분량의 답변이 제시됐다. 챗봇은 도로교통법 조항 등을 언급하면서 “재범으로 가중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단순 음주운전이 아니라 면허 취소 결격 기간이 5년으로 늘어날 수 있다. 처벌 수위는 일률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선례들을 살펴보면 최소 1년 이상 징역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답변 말미엔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변호사 상담을 추천한다’는 문구가 붙었다. 파란색 칸의 답변 아래 노란색 칸에는 음주운전 전문 변호사 등을 소개하는 홈페이지 및 블로그 링크가 달린 광고가 함께 떴다. 대륙아주가 아닌 다른 법무법인·변호사 광고로, 클릭하면 해당 홈페이지로 이동된다.

AI 대륙아주는 법무법인 대륙아주가 지난 3월 출시한 무료 인공지능 법률상담 서비스다. 벤처기업 넥서스AI가 네이버의 생성형 AI ‘하이퍼클로바X’를 활용해 개발했다. 직접 이용해 보니 질문에 관한 근거법령, 절차에 대해 일반인 눈높이에 맞춘 답변을 제시했다. 대륙아주 관계자는 “변호사 도움을 받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초적 법률 지식을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AI 대륙아주 서비스는 갈림길에 서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서비스에 변호사법 위반 등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징계 절차를 진행 중이다.

다음 달 변협 조사위원회가 대륙아주 측 제출 경위서와 자료 등을 검토하고, 상임이사회에서 징계위원회 회부 여부를 결정한다. 앞서 변협은 법률 플랫폼 로톡의 ‘변호사 소개 서비스’를 이용한 변호사들을 징계 처분했으나 법무부가 취소한 바 있다. 리걸테크(법률과 기술의 합성어) 산업을 둘러싼 갈등이 AI 기술을 겨냥한 ‘2라운드’로 접어든 양상이다.

변협은 구체적으로 이 서비스가 ‘무료 법률상담’을 금지한 변호사 광고 규정 4조 12호를 위반했다는 입장이다. 변협 관계자는 “대외적으로 무료 법률상담 방식으로 대륙아주 인지도를 높이고 언론 등 노출을 늘려 광고하는 것”이라며 “공정한 수임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무료 또는 부당한 염가를 표방하는 부당 광고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변협은 또 ‘변호사가 아닌 자가 변호사 아니면 할 수 없는 업무를 통해 보수나 이익을 분배해선 안 된다’는 변호사법 34조 5항도 위반했다고 본다. 해당 조항은 기본적으로 ‘법조 브로커’의 사건 알선을 막기 위한 조항이지만, 변협은 AI도 본질은 변호사가 아니라는 점은 동일하다는 입장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대륙아주 측은 “공익 목적의 무료 서비스일 뿐 상업적 이익은 전혀 얻지 않고 있다”고 반박한다. 대륙아주 관계자는 “서비스 이용에서는 대륙아주에 관한 광고 홍보를 전혀 하지 않고 있으며, 이 서비스를 통해 대륙아주가 사건을 수임하는 것도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함께 뜨는 링크 광고도 AI 기술 개발에 협력한 업체(넥서스AI) 측에서 제공하는 것일 뿐 대륙아주 소속 변호사 광고는 전혀 뜨지 않는다”고 했다.

법조계는 변협 대응이 과거 ‘로톡 사태’와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로톡 서비스는 2014년 출시됐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2015년 로톡 운영 업체를 고발했고, 변협은 2021년 로톡 가입 변호사 123명을 징계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9월 징계 처분을 취소했다. 고발 건도 무혐의로 결론 났지만, 업계에선 8년 넘게 갈등이 이어져 법률 플랫폼 시장 성장에 지장을 받았다는 지적이 많다.

한 법률 플랫폼 업체 관계자는 “변협이 플랫폼이든 AI든 새로운 서비스가 시도되면 적으로 몰아세우고 있다”며 “변협이 징계권을 남용해 대국민 법률 서비스의 발전이 막혀버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이러다 구글이나 애플 같은 거대 AI 기업이 한국 법률시장에 들어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러기 전에 국내 법무법인이나 기업들이 리걸 AI에 관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선 AI를 도입한 리걸테크 기업들이 법률문서 판결문 검색과 소송 예측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캐나다의 ‘키라 시스템즈’, 미국 ‘렉스 마키나’, 일본 ‘벤고시닷컴’ 등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트랙슨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전 세계 리걸테크 기업은 8603곳이다. 기업 가치가 1조원 넘는 유니콘 기업도 12곳이나 된다. 국내에선 리걸테크 기업 30여곳이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다. 로앤굿은 생성형 AI 기반 법률 상담 챗봇 ‘로앤봇’, 기업과 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한 ‘로앤서치’ 등을 출시했다. 로앤컴퍼니는 변호사 업무를 돕는 ‘슈퍼로이어’ 출시를 앞두고 있다. 판결문 검색 리걸테크 기업인 엘박스는 변호사를 대상으로 판결 검색 기능을 강화한 ‘엘박스AI’를 지난 4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오는 7월부터는 검색 결과를 바탕으로 소장 서면 등 초안 작성을 돕는 기능도 추가할 예정이다.

일각에선 법률 분야 신산업 발전을 위해 법 개정을 통해 변협의 징계권 행사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변호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리걸테크 활성화법’으로도 불리는 이 법은 변호사 광고 규제 기준을 변협 내부 규정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내용이다. 지난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리걸테크 산업 발전을 위해 변협과 업계가 한자리에 모여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 최경진 가천대 교수는 “AI 기반 서비스를 규제하는 쪽으로만 가면 산업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다만 AI 기술로 부정확한 정보가 제공돼선 안 된다는 변협 입장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법률 서비스 수요자인 국민 관점에서 더 나은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할지 양측이 대화 테이블로 나와야 한다”며 “서비스 검증, 데이터 검증, 사후적인 보완 등 다양한 방법들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한주 신지호 기자 1we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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