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기술로 해외까지…기업 AI 해결사 [천억클럽]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suhoz@mk.co.kr) 2024. 6. 2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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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업스테이지

장면 1. 각 보험사는 고객 상당수가 보험금 실비 청구할 때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절차도 복잡하다고 불평하는 것이 늘 고민이다. 삼성생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불만 원인을 찾던 중 각 병원마다 진료비 청구서 양식이 다르다 보니 사람이 일일이 확인, 대조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삼성생명은 AI(인공지능) 스타트업과 제휴해 어떤 병원 청구서 양식이든 AI가 인식해서 간소화하는 기술을 도입했다.

예를 들어 한 보험사 고객이 교통사고로 여러 병원에서 진료와 시술을 받았다. 이전에는 청구서 양식이 다 달라 보험금 지급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진료비 영수증은 병원마다 문서 양식이 천차만별이고, 손글씨 등 비정형 데이터도 많다. 여기에 AI 기반 OCR(광학문자인식) 기술을 적용했더니 업무 시간과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진료비 납입확인서, 진단 소견서, 진료비 영수증, 진료비 세부내역서 등 보험청구 서류 7종 문서를 대상으로 AI의 OCR 인식률을 검증했는데 약 95%에 달하는 정확도를 기록했다. 업계 평균 80%보다 높다”며 “실제 사람 수정이 필요한 항목은 4% 내외에 불과하다”고 소개했다.

장면 2. 법률 스타트업 로앤컴퍼니는 “자체 LLM(거대언어모델) 개발을 통해 GPT-4를 뛰어넘는 국내 최초의 법률 특화 LLM 파운데이션 모델(가칭 ‘솔라 리걸’)을 내놓겠다”고 공표했다. 국내 AI 스타트업이 솔라 리걸의 엔진인 LLM 개발을 맡고, 로앤컴퍼니는 국내 기업 중 가장 많은 443만건의 판례 데이터를 비롯해 법령, 결정례, 유권해석 등 총 16만건의 법률 데이터를 AI 스타트업에 제공한다. 이렇게 개발되는 솔라 리걸은 법률 리서치, 서면 요약·질의응답 등을 제공하는 로앤컴퍼니의 B2B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슈퍼로이어’에 우선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판례 검색 기반 소송 지원, 소송 관련 보고서, 서면 초안 작성 등의 업무를 LLM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청사진이다.

일상생활 속 훅 들어온 AI 활용 사례다. 이 같은 서비스의 밑단에 존재하는 스타트업이 업스테이지다. 이 같은 현장 적용 사례가 알려지면서 ‘한배를 타자’는 기업과 투자사가 몰려들었다. 그 덕에 업스테이지는 지난 4월, 1000억원 규모 시리즈B 투자를 성사시켰다. 국내 AI 소프트웨어 기업이 근래 유치한 투자액 중 최대 규모다. 이로써 업스테이지는 창업 3년 반 만에 누적 투자금 약 1400억원을 확보하게 됐다.

카카오톡에서 AI 채팅을 할 수 있는 업스테이지의 ‘아숙업(AskUp)’.
업스테이지 어떤 회사길래

CEO, CTO 등 네이버 출신 주축

창업자는 김성훈 대표.

홍콩과학기술대 교수 출신으로 네이버 클로바 AI 헤드를 거쳐 ‘독자 기술 AI로 세상을 바꿔보자’며 2020년 창업했다. 워낙 이 분야에서는 전문가로 정평이 났기에 김 대표가 창업한다고 하자 금세 인재가 몰렸다. 네이버 클로바의 문자인식기술을 비롯한 컴퓨터 비전 기술 전반을 다루는 조직인 비주얼(Visual) AI팀 출신 이활석 CTO, 네이버 파파고 모델팀에서 언어 관련 AI를 개발했던 박은정 CSO 등이다. 그 밖에도 메타, 아마존, 엔비디아, 이베이, 구글, 애플, 카카오, 네이버 출신 인재가 속속 합류했다. 회사명 ‘업스테이지’에는 여러 기업을 AI의 무대로 ‘Up(올리다)’, 즉 업그레이드시켜준다는 뜻과 더불어 국내 기업이 글로벌 무대로도 ‘Up(한 단계 발전)’할 수 있게 하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왼쪽부터 이활석 CTO, 김성훈 대표, 박은정 CSO.
이번 투자 어떻게 이뤄졌나

독자 기술력 인정받아

투자자 입장에서 업스테이지에 이처럼 거액의 자금을 집행한 이유는 뭘까.

SK네트웍스 관계자는 “업스테이지처럼 자체 LLM을 개발해 실제 사업화까지 성공한 기업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도 손에 꼽는다”고 말했다. 그만큼 자체 기술력이 탁월하다는 말이다.

기술력뿐 아니라 현장 적용에서 실용성이 돋보인다는 것이 회사 측 자랑이다.

업스테이지가 AI 대중화를 앞당긴 사례는 여럿이다. 그중 대화형 AI 서비스 ‘AskUp(일명 아숙업)’ 서비스가 가장 눈길을 끈다.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 기반으로 챗GPT를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인데 이를 써본 약 200만명의 사용자가 자연스레 AI를 친구처럼 여길 수 있게 됐다. 여기서 업스테이지의 핵심 기술인 OCR 활용도를 높인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예를 들면 AskUp에 지금 읽고 있는 책의 한 구절을 카톡 사진 올리기 기능을 활용해 올리기만 하면 곧바로 텍스트로 변환시켜준다.

업스테이지의 ‘솔라’는 이런 AI 대화·텍스트 변환 등 다양한 기술을 탑재한 대표 상품으로 국내외 기업에 팔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최근 개발된 솔라의 소형 사이즈 모델 ‘솔라 미니’는 빅테크 모델보다 경량화한 사이즈로 더욱 빠른 속도와 성능을 자랑한다.

회사 관계자는 “솔라 미니는 아마존웹서비스(AWS)에서 AI 모델을 제공하는 ‘아마존 세이지메이커 점프스타트(Amazon SageMaker JumpStart)’에 대표 사전 학습 모델로 탑재돼 AWS를 사용하는 전 세계 고객이 손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됐다. 현재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 등 3개 언어를 지원하며, 추후 지원 언어를 더 확장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더불어 기업 전용 AI 서비스인 ‘다큐먼트 AI’ 역시 나오자마자 반응이 뜨겁다. 각 기업이 보유한 각종 문서와 이에 포함된 비정형 데이터를 디지털화해주는 솔루션. 이미지 내 문자를 텍스트로 추출하는 자체 AI OCR 기술을 탑재했다. 최근 ‘Layout Analyzer(문서구조 분석 추출)’ 기능을 추가, 기존 OCR의 영역인 업무 자동화뿐 아니라 LLM 도입을 위한 데이터 처리까지 확장 지원한다.

회사 관계자는 “범용 모델의 경우 LLM이 왜곡된 정보를 생성하는 ‘환각 현상’이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다”며 “반면 업스테이지는 기업 분리망·폐쇄망, 내부 클라우드에 직접 설치형(온프레미스)으로 LLM을 구축해 이런 점을 해결하고, 기업 내부 데이터만을 학습 데이터로 활용해 환각 현상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약점은 없나

글로벌 빅테크와 경쟁해야

‘큰돈’이 들어온 업스테이지 입장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겠다 싶다. 그런데 실은 MS나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는 더 큰 자금을 끌어와 이 시장을 선점하려 하고 있다.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 과연 토종 AI 업체가 차별화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두고 많은 업계 전문가가 궁금해한다.

업스테이지는 초거대 AI 홍수 속에서 틈새시장은 분명히 있다고 자신한다.

“솔라를 내놓고 LLM 사업화에 본격 시동을 걸면서 짧은 기간에 100억원 규모 신규 계약을 확보하고 제품 출시 전 대비 2배 이상 성장률을 기록했다. 현재 국내외에서 300억원 규모 계약을 추가 논의 중으로, 올해는 지난해 대비 2배 이상 매출 성장을 기대한다. 이번 투자 유치금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글로벌 생성형 AI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이미 지난 2월 말 실리콘밸리에 미국 법인을 설립해 글로벌 진출을 위한 채비를 마쳤다. 북미를 거점으로 솔라 LLM, 다큐먼트 AI 제품을 앞세워 글로벌 엔터프라이즈 기업들과 협력 기회를 발굴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유럽, 일본, 동남아 시장에도 해외 거점을 넓혀갈 계획이다.”

김성훈 대표의 포부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4호 (2024.06.19~2024.06.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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