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한번에 옷 세벌 깜짝 놀랐죠 [정현권의 감성골프]

2024. 6. 2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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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패션 쇼를 하는 줄 알았어요. 남자나 여자들 복장이 엄청 고급지고 화려합니다. 미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장면입니다.”

20여년 전에 미국 샌디에이고로 이민간 고교 후배가 모처럼 귀국해 고국에서 부부 골프 경험담을 들려줬다. 이름도 모르는 각양각색 고급 브랜드 복장에 가장 놀랐다고 한다.

특히 아내에게는 풀메이커업에 화려한 패션으로 무장한 여성 골퍼들의 복장이 충격 그 자체였다. 한결 같이 형형색색 주름 치마에 무릎 양말을 착용한 장면이 매우 이색적이고 낯설게 다가왔다.

곰곰이 살펴보니 골프 한번에 옷 3벌을 갈아입는 여성도 있었단다. 골프장 오갈 때 입는 옷, 골프 도중 입는 옷이 다르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의 아내는 평소 입고 다니던 골프복 한 벌로 입장해서 플레이 도중이나 귀가할 때도 원래 복장 그대로였다. 속세에 살던 사람이 별천지에 혼자 떨어진 느낌이었다. 파우더룸에선 자신이 블랙 스완처럼 여겨졌다.

후배도 마찬가지였다. 그린에서 퍼트를 기다리는 중에 마침 핀을 옮기려던 그린 키퍼(Green keeper)가 아래 위를 빤히 훑어보는 시선이 불편했다고 한다.

평범한 복장에 그냥 운동화 차림이어서 도저히 골퍼로 보이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도대체 저 사람은 뭐야”라는 따가운 시선이었다.

빈정 상한 마음을 전달하려다 참았다고 한다. 후배에겐 한국 특유의 과시 혹은 비교 문화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물론 샌디에이고 근처에도 격식을 차리는 회원제 골프장이 있지만 대부분 집에서 입고 온 복장으로 편안하게 플레이를 합니다.”

심지어 샌들을 신고 왔다가 운동화로 갈아 신거나 아예 운동화 차림으로 와서 그대로 골프만 치고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골프 대국 이미지와는 달리 한국에서 골프 문화가 아직도 대중화에 이르지 못했다는 인상이었다.

이들 부부에게 한국 골프장은 마치 테러리스트를 연상케 하는 안면 마스크 전시장 같은 느낌도 들었다. 미국 골프장에서도 간혹 얼굴을 칭칭 동여맨 무장(?) 골퍼는 100% 한국인이라고 한다.

그는 여수 인근 명문골프장에서 골프를 했다. 라운드를 끝내고 캐디피 15만원(4명분)을 별도 지불했다. 그린피(25만원)와 카트비(2만원) 포함해 27만원을 결제하며 왜 이런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미국에선 보통 캐디 없이 티샷 방향, 거리측정, 클럽 선택 등은 온전히 골퍼 본인 판단과 선택에 따른다. 최근에는 카트 자체에 GPS가 장착돼 코스 레이아웃과 거리, 해저드 위치, 심지어 핀 위치와 그린 경사까지 확대해 보여준단다. 골퍼 혼자 판단하고 플레이하는 데에 전혀 지장이 없다.

그 날 홀마다 티잉 구역(Teeing area)에 오르면 캐디가 “왼쪽 소나무를 겨냥하고 벙커까진 180m, 홀까진 390m∙∙∙”식으로 친절히(?) 알려줬다. 혼자서 코스를 읽고 플레이 하는 데에 익숙한 후배에게 친절한 캐디 설명은 낯설고 오히려 방해요소로 작용했다.

또 캐디 한 명이 골퍼 4명 클럽을 일일이 전달하다 보니 골퍼 개인으로선 오히려 흐름을 끊어 불편한 측면도 있었다고 한다. 그가 미국으로 이민 간 2000년 초반만 해도 한국에선 골프장(200여곳) 출입 자체가 상류층 증표로 인식됐다.

요즘 같은 골프 대중화 시대(530곳)에 본인이 원하거나 캐디 조력이 필요한 경우를 빼곤 캐디 의무화 폐지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린에 공을 올려놓고 직접 마크를 하려는데 캐디가 얼른 다가와 마크해서 공을 닦고 라인을 읽는 장면도 미국에서 상상불가이다.

한국의 카트 대여도 고객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미국 골프장은 체크인 단계에서 “Walk or Ride”를 묻는다. 후배는 보통 개인 푸시(미는) 카트로 플레이를 하는 Walking을 선호한다. 카트피(1인당 20달러 정도) 절약은 물론 5시간 걸으며 체력 단련을 할 수 있어서다.

“캐디와 캐디피는 한국의 독특한 골프 문화, 고용 문제와 연관돼 당장 폐지는 힘들겠죠. 하지만 이제 골프장 입장이 아닌 골퍼 각자의 선택에 맡기는 탄력 운영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가 골프를 하면서 목격한 또다른 생경한 장면은 그린에서 직원 2명이 그린을 보수(리페어)하는 모습이었다. 모두 2홀에서 마주쳤는데 샷을 앞두고 캐디가 목청을 돋워 이들을 그린 밖으로 이동시켰다.

경기 흐름을 방해하고 혹시 모를 안전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었다. 간혹 초보자 공은 어디로 튈지 몰라 사고 유발 위험이 매우 크다.

미국 같으면 상해 전문 변호사의 먹이 감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들 직원을 고용하는 비용은 고스란히 그린피 등으로 전가된다.

미국에선 자신의 그린 디벗(피치 마크)는 당연히 자기 손으로 보수한다. 샌드 벙커 보수처럼 다음 골퍼를 위한 매너이다.

보통 골프장에선 최적의 코스 상태를 유지하려고 봄 가을 두 차례 걸쳐 그린과 페어웨이 등에 구멍뚫기(Aerification)를 한다. 이 때 그린에 구멍과 모래가 뿌려져 있어 플레이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이를 감안해 미국에선 고객 배려 차원에서 그린피를 일정액 할인해 준다고 한다. 후배가 골프를 하던 날 그린도 이런 상태였는데 정상 그린피를 그대로 받은 것도 그에겐 아쉬운 포인트였다.

“물론 한국과 미국 골프문화, 그리고 골프장 여건과 관리를 수평 비교한다는 건 무리죠. 하지만 한국도 이젠 고물가 저성장시대에 접어들어 비용 문턱을 하나씩 낮춰가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 아닌가요?”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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