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탕' 채상병 청문회…"한 사람 격노로 꼬였다" "尹개입 없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은 21일 “한 사람의 격노로 인해 모든 것이 꼬이고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됐다”고 말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윤 대통령의 개입은 없었다.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맞섰다.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채 상병 특검법 입법 청문회’에선 이처럼 윤석열 대통령의 개입 여부를 놓고 새로운 사실 공개 등 실체 규명에는 진전 없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양측 증인 간 공방만 벌어졌다. 또 다른 증인으로 소환된 대통령실·국방부 관계자들 역시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대답을 회피하거나 답변을 거부했다.
민주당이 여당 국민의힘 의원들은 전원 불참한 가운데 단독으로 개최한 ‘반쪽’ 청문회가 핵심 증인들의 증언 거부 속에 결국 ‘맹탕’ 청문회가 된 것이다. 전날 ‘채상병 특검법안’을 법사위 소위를 단독 통과시킨 뒤 하루 만에 연 청문회였다.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불성실한 답변을 이유로 이 전 장관,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과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10분간 청문회장 밖으로 ‘퇴장’시키기도 했다.
채 상병 순직 1주기 앞둔 맹탕·반쪽 청문회
하지만 시작부터 고성이 오갔다. 이 전 장관과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임성근 전 사단장이 줄줄이 증인 선서를 거부하면서다. 이 전 장관은 “법률상 보장된 권리이기 때문에”, 신 전 차관은 “청문회 발언이 (향후 수사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이 채상병 사건을 수사 중임을 들어 법률상 증언거부권을 활용한 것이다. 형사소송법 148조는 “누구든지 형사소추 또는 공소제기를 당하거나 유죄판결을 받을 사실이 드러날 염려가 있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증인선서 거부 사태에 "고발 조치할 것" 압박
정청래 위원장은 증인 선서 거부가 이어지자 “증언을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국민들은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라는 심증이 붙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린다”며 “증인 선서 거부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 국회법에 따라 고발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법은 정당한 이유 없이 선서 또는 증언을 거부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1000~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청문회에서 지난해 7월 30일부터 나흘간 이뤄진 대통령실·국방부·해병대 관계자들 간 통화를 수사 외압의 근거로 제시했다. 이 시기는 채 상병 사망과 관련한 해병대수사단의 조사 결과가 이종섭 전 장관에게 보고되고 경찰에 관련 기록이 이첩됐으나 돌연 회수된 시기다.
실제 해병대수사단의 조사 결과가 이첩된 당일인 지난해 8월 2일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부터 사용한 개인 휴대전화로 이 전 장관에게 3차례에 걸쳐 직접 전화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임기훈 전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과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과도 통화했다. 그 사이에 이시원·임기훈 전 비서관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사이에도 수차례에 걸친 통화가 이뤄졌다.
이같은 통화를 거쳐 국방부는 경찰에 이첩됐던 채 상병 조사기록을 회수했고, 박정훈 대령은 보직 해임됐다. 이와 관련 서영교 의원은 “이런 엄청난 전화 내역이 나왔는데 자기들끼리 (입을) 맞춰서 아니라고 하고, 그래서 특검이 필요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이에 대해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에 의문점이 남아 (결재 후 이튿날) 이첩 보류를 지시했고 적법한 지시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후 이첩을 강행한) 박 대령에 대한 수사 및 인사조치 검토 지시 역시 독자 판단에 의한 것”이라며 “두 지시 이후 대통령실의 전화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통화내역, 수사외압 '단서' 될까
청문회에선 지난해 7월 31일 이종섭 전 장관이 주재한 회의에서 당시 정종범 해병대 부사령관이 작성한 이른바 ‘정종범 메모’에 의미에 대해서도 질의가 이어졌다. 이 메모엔 ‘누구누구 수사 언급하면 안 됨’ ‘사람에 대해서 조치‧혐의는 안됨’ 등 사건 처리 지침으로 보이는 내용이 담겼다.
'정종범 메모' 둘러싼 엇갈린 증언
채상병 수사외압 의혹이 시작된 첫 단추인 ‘VIP(대통령) 격노설’의 진위에 대한 공세도 이어다. 박정훈 대령이 “한 사람의 격노로 인해 이 모든 게 꼬이고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고 수많은 사람이 범죄자가 됐다”며 “그 과정에 저렇게 많은 통화와 공모가 있었다는 게 너무나 참담하고 도대체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다.
박지원 의원은 “11년 전 (국정원 댓글수사) 외압을 폭로한 윤 대통령이 이제 수사 외압 의혹 한 가운데에 있다”며 “왜 대통령은 꼬리 자르기를 하냐”고 말했다. 전현희 의원은 “이 사안은 대통령에 대한 직권남용 등 불법적 행위로 탄핵 사유가 될 수도 있는 어마무시한 일”이라고 공세를 벌였다.
김계환 사령관은 이날 오후 화상 증언에서 ‘VIP 격노설을 (해병대 간부들에) 이야기한 적 있냐”는 질문을 받자 “그 부분은 제가 공수처로부터 수사를 받고 있기 때문에 형사소송법 148조에 의거 답변드릴 수 없다”고 대답을 거부했다.
청문회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논평을 내고 “오늘 민주당 단독 입법청문회는 대한민국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권력남용이자 사법 방해”라고 비판했다. ‘이재명 사법파괴 저지 특별위원회’도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이 채상병 특검법 청문회를 열어 경찰과 공수처가 수사 중인 사건에 실질적으로 개입하고, 특검 정국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며 “민주당은 특검 정국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여 이재명 지키기 행태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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