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우크라 지원 리스트 짜고있다"…푸틴 '나쁜행동' 막을 카드

이유정, 정영교, 박태인 2024. 6. 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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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에 서명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유사시 러시아의 한반도 군사 개입 가능성을 얼어둔 북·러의 새 군사 원조 조약(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에 대응해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재고할 수 있다”고 암시하자, 러시아는 즉각 반발했다.

러시아 매체 인테르팍스 등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베트남 순방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공급하는 것은 아주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은 이어 “북한과 맺은 조약은 62년(※실제론 1961년 7월)인가 맺은 이전 조약과 비교할 때 새로운 것이 아무것도 없고 거의 같은 내용”이라면서 “상호 군사 지원의 요건으로 침략 상태가 명시돼 있으며, 한국은 북한을 침공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이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면 국내법 등에 준해 지체없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 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한 북·러 조약 4조에서 “무력 침공을 받은 상태”란 단서를 부각한 것이다.

물론 ‘유사시 자동군사개입’ 조항을 담은 61년 조약은 조·소 상호방위조약이었다는 점에서 이날 푸틴의 발언은 지난 19일 북·러 조약이 냉전 시기 북·러 군사 동맹을 부활시킨 것임을 시인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푸틴이 직접 해명을 상세히 한 부분에 대해선 한·러 관계를 관리하려는 의지가 없지 않은 것으로 정부는 받아들이고 있다. ‘무기 지원 검토’ 카드를 최대한 활용해 러시아의 ‘나쁜 행동’을 막는 게 목적인 만큼, 정부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면서 대응 수위를 결정해가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러시아에 경고 메시지를 발신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은 것도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둔 것으로 해석된다. 북·러를 겨냥한 정상급 메시지 발신도 향후 하나의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5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상공에서 러시아발 미사일이 폭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푸틴의 즉각적인 반응은 정부가 ‘무기 지원 방침 재검토 카드’를 내비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은둔의 나라’ 북한까지 손을 뻗치는 러시아로선 세계 10대 방산 수출국인 한국의 우크라이나 살상 무기 지원은 그만큼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20일 지원 가능한 구체적인 무기에 대해 “러시아 측이 알아가도록 하게 할 것”이라고 한 것도 이런 민감성을 '레버리지'로 활용하기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한국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수 있고, 리스트도 짜고 있다”는 신호를 내비치지만, 실제 실행 여부는 모호한 영역에 남겨두겠다는 얘기다.

정부가 '무기 지원 카드'를 단계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높다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러시아가 북한에 핵·미사일 관련 핵심 기술을 이전하는 등 ‘레드 라인’을 넘는 것으로 판단되면 한국의 지원 가능 무기 리스트 공개→ 방어용 무기 지원→ 공격용 무기 지원 등으로 대응 수위를 높여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지원 가능한 무기로 드론 요격용 재머(주파수 교란기)와 같은 교란 무기, 우크라이나 영공 방어를 위한 20mm 발칸포, 30mm 기관포 등 대공포나 구형 패트리엇(PAC-2)을 거론한다. 상징적인 차원에서 이들 무기를 몇 기 넘겨주는 방안이 있을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유상 지원’이냐 ‘무상 지원’이냐에 따라 무게감이 달라진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부 당국자들은 그간 한국에 155mm 포탄이나 패트리엇의 지원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수차례 전달해왔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부 장관이 지난 4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외교장관 회의에서 “이 자리를 빌려 한국 정부에게 패트리엇을 제공하는 방법을 찾아 달라고 요청한다”고 밝힌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정부는 “비살상 무기만 지원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래서 지금껏 후방 지역에서 장애물을 개척하는 K-600 코뿔소 등만 지원했다.

이와 관련 한 정부 소식통은 “아직은 구체적인 무기 종류를 언급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면서도 “우리 군의 대비 태세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방산 수출 물량까지 고려하면 최신 요격 내지 타격 무기는 후순위가 되지 않겠느냐”라고 언급했다.

30mm 자주대공포(비호) 사격. 연합뉴스


북·러가 ‘묵과할 수 없는 수준’의 군사적 협력 또는 행동을 감행한다면, 정부도 공격용 무기 지원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북·러는 조약 4조 군사 지원 조항에서 “모든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는데, 러시아의 의지에 따라 핵무력 지원도 여기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푸틴은 20일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핵 독트린(사용 교리)’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면서 "핵무기 사용 문턱을 낮추는 것과 관련된 새로운 요소가 등장하고 있다"면서 "초저전력 폭발성 핵장치"를 예로 들었다.

이 경우 ▶155mm 포탄 등 일일 전투용 무기 지원 ▶러시아 본토를 위협할 수준의 중·단거리 미사일 등 전술 무기 지원 ▶러시아 본토까지 타격권에 들어오는 중장거리 미사일 등 전략 무기 지원 등의 단계로 세분화할 수 있다.

이와 관련,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들 가운데 한국이 어느 수위로 기여를 할지는 미국과 나토의 협의는 물론, 의회 등 국내 여론까지 고려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공격용 무기 지원이란 경우의 수는 한·러 관계가 파국에 가까워지는 ‘최악 상황’을 맞을 때라야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홍 연구위원은 "정부가 러시아에 경고 메시지를 내기 위해 무기 지원을 검토할 만 하지만, 지금으로선 미국과 일본, 나토 등과 상황에 대한 인식 공유를 바탕으로 공동 대응 방안을 짜는 게 더 시급해 보인다"고 말했다.

정영교·이유정·박태인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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