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함이 만들어낸 '살리는 힘'... 아이들도 그렇기를

변택주 2024. 6. 2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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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그림책 <벌새 하나가 작은 날개를 펼칠 때> 를 켰다.

 며칠 전 함께 모여 '연주'한 그림책 가운데 하나, 델핀 자코가 짓고 생태동화작가 권오준 선생이 번역한 <벌새 하나가 작은 날개를 펼칠 때> 였다.

이처럼 벌새도 숲과 저를 하나로 여겼을 것이다.

그렇기에 <벌새 하나가 작은 날개를 펼칠 때> 를 지은 델핀 자코도 번역가 권오준 작가도, 아이들이 벌새처럼 썩 나서서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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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벌새 하나가 작은 날개를 펼칠 때> 를 함께 낭독하면서

[변택주 기자]

고운 그림책 <벌새 하나가 작은 날개를 펼칠 때>를 켰다. '폈다'를 잘못 쓴 것이 아니다. 그림책을 바이올린을 켜듯이 했다는 말이다. 내가 일하는 꼬마평화도서관, 그곳 사람들은 여럿이 둘러앉아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을 '그림책 켜기' 또는 '그림책 연주'라고 부른다.
   
 '벌새 하나가 작은 날개를 펼칠 때'를 연주하는 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
ⓒ 변택주
 
며칠 전 함께 모여 '연주'한 그림책 가운데 하나, 델핀 자코가 짓고 생태동화작가 권오준 선생이 번역한 <벌새 하나가 작은 날개를 펼칠 때>였다. 남미 안데스산맥에 사는 케추아족 사이에 이어 내려오던 이야기를 프랑스 그림책 작가 델핀 자코가 살려낸 이야기다. 이미 알던 이야기인데도 새롭다. 

요즘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가 나눠 봐야 할 얘기 같기도 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숲에 번개가 내리쳐 불이 났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새들과 덩치가 큰 짐승들은 '활활' 타오르는 불을 바라만 보며 발만 동동 구른다. 그때 작디작은 벌새 한 마리가 부리에 물을 머금고 불길에 뛰어들어 물 한 방울 떨어뜨리고 돌아와서 다시 물을 머금고 오가기를 거듭한다. 

그러나 몸집이 큰 아나콘다, 재규어, 나무늘보, 꼬리 감는 원숭이, 개미핥기 같은 짐승들과 화려한 새들은 "고작 물 몇 방울로 저 불을 끌 수 있다고 생각하니?" 하고 어림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래도 벌새는 "나는 내 할 일을 할 뿐"이라면서 붕붕거리며 연못과 불이 난 숲을 오간다. 얼마나 지났을까? 딱새 한 마리가 힘을 보태고 새들이 잇따라 나선다.'
 
 함께 독 연주하고 느낌을 나누는 그림책연주뒷마당
ⓒ 변택주
   
다들 고개를 저을 때 몸길이가 6.5cm밖에 되지 않는 작디작은 벌새 한 마리가 팔 걷어붙이고 나선다. 날개가 짧은 벌새는 본디 날 수 있는 몸이 아니다.

1초에 90번이나 날갯짓해야만 하늘에 떠 있을 수 있는 작은 벌새가 불을 끄겠다고 나선 까닭이 어디 있을까? 살려고 그랬다. 벌새는 꿀을 먹지 않고 두 시간이 지나면 죽는단다. 그런 벌새에게 숲이 불탄다는 말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말이다. 불을 서둘러 끄려고 한 이유다.

다른 짐승들이라고 달랐을까? 견디는 시간 차이는 있을지언정 숲이 사라지면 살아남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다른 짐승들은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행히 불을 끄겠다고 종종거리는 벌새를 보며 늦게나마 다른 새들이 어울린다. 나를 살리려던 날갯짓이 남도 살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얘기다.

어렸을 적, 내가 힘들게 오랜 병치레를 하고 있을 때 어머니는 똥구멍이라도 불어서 살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면서 나를 업고 겅중겅중 여기저기를 뛰어다니셨었다. 어머니는 나와 당신을 하나로 받아들였던 거다. 이처럼 벌새도 숲과 저를 하나로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너 따위가 나서야 숲에 난 불을 끄기에 어림없다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내 할 일을 할 뿐이야!"라고 외쳤을 테다.

나를 살리든 너를 살리든, 살리는 힘은 절박함에서 나온다. 그렇더라도 다 뒷짐을 지고 있는데 홀로 나선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벌새 하나가 작은 날개를 펼칠 때>를 지은 델핀 자코도 번역가 권오준 작가도, 아이들이 벌새처럼 썩 나서서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테다.
  
 연주하고 느낌을 나누는 오리(활동명)
ⓒ 변택주
   
그림책은 그림을 잘 살펴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글도 여러 번 곱씹어가며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글이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을 느끼려면 그래야 한다.

"나는 내 할 일을 할 뿐이야."
"나는 내 할 일을 할 뿐이야."

이 같은 말이 되풀이해 나오는 데 눈으로 읽을 때 올라오지 않던 느낌이 소리 내어 읽을 때 새록새록 다가온다. 이번 연주도 참으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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