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자연생태 극장, 물 채우면 사라질까 두렵다
[박은영 기자]
▲ 달빛도 한편의 미디어 아트 소금쟁이의 춤과 어우러진 달빛이 아름다웠다 |
ⓒ 임도훈 |
"와~ 예술이다, 예술!"
저녁이 되면 세종보 천막농성장에 환한 조명이 켜진다. 한두리대교 교각 조명등이다. 빛이 교각 아래 물웅덩이를 비춘다. 그 빛은 다시 반사돼 교각 벽면에 물그림자를 비춘다. 웅덩이에서 소금쟁이가 움직이면, 교각 벽에서 파문이 일면서 잔잔한 빛의 물결이 인다. 교각과 빛과 물과 소금쟁이가 만드는 한편의 종합예술이다.
▲ 교각 위 소금쟁이의 춤 ⓒ 임도훈 |
이뿐만이 아니다. 여기에서 만난 꿩 커플의 구애 장면과 물떼새가 포란하는 장면 모두 자연이 보여주는, 도시에서 볼 수 없는 하나의 극이다. 세종보에 물을 채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쌓은 돌탑 위에 위태롭게 앉아있던 할미새, 아기오리 5~6마리와 함께 거세게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오리가족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살아있는 자연을 배운다. 강의 흐름을 막아선다면 다시 보기 힘든, 어쩌면 이곳에서는 영원히 끝나버릴 수만 편의 극이다.
▲ 설악산 친구들 스티커 산양과 하늘다람쥐를 좋아해 핸드폰에 붙여둔 모습 |
ⓒ 박은영 |
"학교에서 여행안내서 만들기로 했는데 설악산 이야기 할거야."
큰 아이가 아침에 학교 가며 말했다. 지난 4월, 천막농성장에 오기 전에 큰 아이와 함께 설악산 도보순례를 갔었는데 그 때 기억이 좋았나 보다. 핸드폰에 녹색연합에서 제작한 산양과 하늘다람쥐 스티커, '설악산 이대로' 문구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 여행지로 울산바위를 소개하면서 산양과 하늘다람쥐를 만나면 별점을 더 주는 방법으로 만들겠다고 여분의 스티커를 더 챙겨갔다.
"우리가 생명의 자연스런 기쁨과 지혜를 잃어버린 이유는 그것을 무시하도록 세뇌되어 왔기 때문이다. ... 그 경험의 가치를 즐기기 위해 우리가 따로 뭔가를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챘는가. 그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잠재력은 우리의 영혼과 몸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
▲ 금강의 오리가족들 우리가 지켜야 할 생명의 가치는 멀리 있지 않다. 흐르는 강 곁에 있다. |
ⓒ 대전충남녹색연합 |
실제로 경제발전이라는 인간들의 절대적 목표 앞에 자연은 쉽사리 파괴되어 왔고 무시당해왔다. 돈 앞에 그깟 새 한 마리, 그깟 도롱뇽 한 마리의 목숨이란 고려할 대상이 되지 못했다.자본 앞에 인간이든, 야생동물이든 마찬가지이다.
▲ 금강 곁 원앙부부 자연이 주는 기쁨과 지혜는 우리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
ⓒ 대전충남녹색연합 |
금강 천막농성장에서 버티는 이유는 아이가 설악산을 기억하듯이 이곳을 찾은 이들이 바로 눈 앞에 흐르는 강을 기억하게 하고 싶어서다. 강가에 조금만 앉아있어도 물떼새와 할미새가 종종걸음으로 산책하는 모습을 바로 코앞에서 본다. 이름을 물어보면 알려주고, 한 번 불러보면서 금강에게 말을 건다. 끝없이 발전해야 한다는 말, 더 개발해야 우리가 잘 살 수 있다는 환상을 끝낼 수 있는 길은 지금 생명의 이름을 불러보는 일이다. '생명의 자연스런 기쁨과 지혜'를 우리들이 차근히 일으켜 세워보는 것이다.
그래서 강을 흐르게 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길은 자본의 폭주기관차에 올라타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강 곁에 서는 일이다.
▲ 시민들과 몸자보 만들기 함께 구호를 적고 쓰며 금강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운다 |
ⓒ 대전충남녹색연합 |
지난 19일, 천막농성장이 시끌벅적했다. 27일 목요일 오후 2시에 있을 <4대강 16개 보 철거 촉구 1차 전국결의대회> 때 참가할 대전, 세종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 날 입을 몸자보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그려넣었다. 몸자보가 될 천을 조끼 모양으로 박음질해 거기에 금강을 지키자는 구호와 본인만의 문구를 써넣기도 했다.
'강을 썩게 하는 세종보 재가동 반대합니다'
▲ 몸자보 만들기 여러 문구와 그림으로 채워지는 몸자보 |
ⓒ 대전충남녹색연합 |
'강물아 흘러라'를 한 글자씩 칠하고 그린 뒤 직접 바느질 하는 손길과 물떼새나 금개구리를 들여다보며 하나하나 그려넣는 손길들은 모두 하나같이 금강과 자신들이 맺은 관계를 보여줬다. 어떤 이에게는 물떼새가, 어떤 이에게는 흰수마자가 마음에 닿았을테고 그것으로 금강과 그 이들은 연결되었다.
▲ 강도 살고 당신도 살고 몸자보 만들기 참가자가 쓴 문구 중 하나 |
ⓒ 박은서 |
'강도 살고 당신도 살고'
몸자보에 새겨진 문구 중 하나다. '강이 흘러야 한다'는 주장은 정치적 수사도 편향된 주장도 아닌 우리가 알고 있는 '강', 건강하고 깨끗한 강을 위한 가장 쉽고 명확한 방법이자 전제조건이다. 강에 깃든 생명이 귀한 줄 아는 세상이면 사람도 귀한 줄 안다. 강이 살면 당신도 산다.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로서 존중받는다'는 뜻이다.
여기 금강 세종보 천막은 반드시 지켜내야 할 금강이 있는 곳이다. 금강과 이 강에 기대어 사는 생명들을 지켜내려는 일이다. 강을 흐르도록 두라는 말에 공감한다고 함께 지키자는 이들부터 정치적이고 이념적이라고 말하는 이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 바라보거나 그 곁에서 운동을 하거나 그 속에 새를 관찰하거나 모든 행위들로 미루어 보건대 강에 기대어 사는 존재들이다.
오늘도 여기 금강 곁에 앉아 그 흐름을 바라본다. 힘차게 흐르는 모습에 위로받으며 오늘 하루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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