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자연생태 극장, 물 채우면 사라질까 두렵다

박은영 2024. 6. 2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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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보 천막 소식 52일-53일차] 우리가 천막농성장에서 즐겁게 버티는 까닭

[박은영 기자]

 
▲ 달빛도 한편의 미디어 아트 소금쟁이의 춤과 어우러진 달빛이 아름다웠다
ⓒ 임도훈
 
"와~ 예술이다, 예술!"

저녁이 되면 세종보 천막농성장에 환한 조명이 켜진다. 한두리대교 교각 조명등이다. 빛이 교각 아래 물웅덩이를 비춘다. 그 빛은 다시 반사돼 교각 벽면에 물그림자를 비춘다. 웅덩이에서 소금쟁이가 움직이면, 교각 벽에서 파문이 일면서 잔잔한 빛의 물결이 인다. 교각과 빛과 물과 소금쟁이가 만드는 한편의 종합예술이다.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천막농성장은 단숨에 사방이 탁 트인 거대한 자연극장이 된다. 소금쟁이가 연출하는 파동은 무용수의 몸짓 같다. 빛 하나에 의존한 자연의 그림자극은 입장료도 필요없고 수천만 원에 달하는 공연비도 필요없다. 자연이 만들어낸 예술이다. 실재하는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묘사한 자연다큐멘터리이다.
 
▲ 교각 위 소금쟁이의 춤 ⓒ 임도훈

이뿐만이 아니다. 여기에서 만난 꿩 커플의 구애 장면과 물떼새가 포란하는 장면 모두 자연이 보여주는, 도시에서 볼 수 없는 하나의 극이다. 세종보에 물을 채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쌓은 돌탑 위에 위태롭게 앉아있던 할미새, 아기오리 5~6마리와 함께 거세게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오리가족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살아있는 자연을 배운다. 강의 흐름을 막아선다면 다시 보기 힘든, 어쩌면 이곳에서는 영원히 끝나버릴 수만 편의 극이다.

자연을 짓밟은 개발사업들… 우리는 행복한가
 
▲ 설악산 친구들 스티커 산양과 하늘다람쥐를 좋아해 핸드폰에 붙여둔 모습
ⓒ 박은영
 
"학교에서 여행안내서 만들기로 했는데 설악산 이야기 할거야."

큰 아이가 아침에 학교 가며 말했다. 지난 4월, 천막농성장에 오기 전에 큰 아이와 함께 설악산 도보순례를 갔었는데 그 때 기억이 좋았나 보다. 핸드폰에 녹색연합에서 제작한 산양과 하늘다람쥐 스티커, '설악산 이대로' 문구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 여행지로 울산바위를 소개하면서 산양과 하늘다람쥐를 만나면 별점을 더 주는 방법으로 만들겠다고 여분의 스티커를 더 챙겨갔다.

"우리가 생명의 자연스런 기쁨과 지혜를 잃어버린 이유는 그것을 무시하도록 세뇌되어 왔기 때문이다. ... 그 경험의 가치를 즐기기 위해 우리가 따로 뭔가를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챘는가. 그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잠재력은 우리의 영혼과 몸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생태심리학을 다룬 <자연에 말걸기>라는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의 내면에 자연을 대하는 자연스러움이 이미 있지만 '자연은 위험하고 정복해야 할 대상이며 경제적 자원'이라며 무시하도록 세뇌되어 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금강의 오리가족들 우리가 지켜야 할 생명의 가치는 멀리 있지 않다. 흐르는 강 곁에 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실제로 경제발전이라는 인간들의 절대적 목표 앞에 자연은 쉽사리 파괴되어 왔고 무시당해왔다. 돈 앞에 그깟 새 한 마리, 그깟 도롱뇽 한 마리의 목숨이란 고려할 대상이 되지 못했다.자본 앞에 인간이든, 야생동물이든 마찬가지이다.
아이와 함께 설악산을 걷고 금강을 찾았던 이유는 바로 그런 세상에서 누군가는 다른 잠재력을 보여줘야 희망이 있다고 여겨서이다. 우리가 물떼새와 흰수마자의 이야기를 건네는 것은 생명을 무시하며 사는 삶이 결코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을 파괴하며 진행해온 수많은 개발사업들이 과연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했는가 질문하면 아직 덜 개발했다는 답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끝이 없다.
 
▲ 금강 곁 원앙부부 자연이 주는 기쁨과 지혜는 우리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금강 천막농성장에서 버티는 이유는 아이가 설악산을 기억하듯이 이곳을 찾은 이들이 바로 눈 앞에 흐르는 강을 기억하게 하고 싶어서다. 강가에 조금만 앉아있어도 물떼새와 할미새가 종종걸음으로 산책하는 모습을 바로 코앞에서 본다. 이름을 물어보면 알려주고, 한 번 불러보면서 금강에게 말을 건다. 끝없이 발전해야 한다는 말, 더 개발해야 우리가 잘 살 수 있다는 환상을 끝낼 수 있는 길은 지금 생명의 이름을 불러보는 일이다. '생명의 자연스런 기쁨과 지혜'를 우리들이 차근히 일으켜 세워보는 것이다.

그래서 강을 흐르게 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길은 자본의 폭주기관차에 올라타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강 곁에 서는 일이다. 

금강 사랑의 마음 담아… 즐겁게 투쟁하기
 
▲ 시민들과 몸자보 만들기 함께 구호를 적고 쓰며 금강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운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아이고, 글씨 틀렸어 어떡해!"

지난 19일, 천막농성장이 시끌벅적했다. 27일 목요일 오후 2시에 있을 <4대강 16개 보 철거 촉구 1차 전국결의대회> 때 참가할 대전, 세종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 날 입을 몸자보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그려넣었다. 몸자보가 될 천을 조끼 모양으로 박음질해 거기에 금강을 지키자는 구호와 본인만의 문구를 써넣기도 했다.

'강을 썩게 하는 세종보 재가동 반대합니다'

본인은 정중하게 요구할 거라며 '반대한다'를 '반대합니다'로 바꾸겠다, 아니다 세게 요구해야 하니 반말로 써야 한다 하며 서로 옥신각신 하기도 하고, 천막농성장 주변에 사는 생명의 이름을 몸자보 가득 채워넣기도 했다. 직접 흰목물떼새와 금개구리, 달뿌리풀, 물떼새 알들을 그려넣으며 금강에 사는 생명들의 모습을 찾아보기도 했다.
 
▲ 몸자보 만들기 여러 문구와 그림으로 채워지는 몸자보
ⓒ 대전충남녹색연합
 
'강물아 흘러라'를 한 글자씩 칠하고 그린 뒤 직접 바느질 하는 손길과 물떼새나 금개구리를 들여다보며 하나하나 그려넣는 손길들은 모두 하나같이 금강과 자신들이 맺은 관계를 보여줬다. 어떤 이에게는 물떼새가, 어떤 이에게는 흰수마자가 마음에 닿았을테고 그것으로 금강과 그 이들은 연결되었다.
이 연결고리가 이어지면서 천막농성장은 금강에 대한 사랑으로 넘치고 있다. 모두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걱정하지만, 그 걱정을 하며 오늘 하루를 꽉 채우고 있었다. 
 
▲ 강도 살고 당신도 살고 몸자보 만들기 참가자가 쓴 문구 중 하나
ⓒ 박은서
 
'강도 살고 당신도 살고'

몸자보에 새겨진 문구 중 하나다. '강이 흘러야 한다'는 주장은 정치적 수사도 편향된 주장도 아닌 우리가 알고 있는 '강', 건강하고 깨끗한 강을 위한 가장 쉽고 명확한 방법이자 전제조건이다. 강에 깃든 생명이 귀한 줄 아는 세상이면 사람도 귀한 줄 안다. 강이 살면 당신도 산다.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로서 존중받는다'는 뜻이다.

여기 금강 세종보 천막은 반드시 지켜내야 할 금강이 있는 곳이다. 금강과 이 강에 기대어 사는 생명들을 지켜내려는 일이다. 강을 흐르도록 두라는 말에 공감한다고 함께 지키자는 이들부터 정치적이고 이념적이라고 말하는 이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 바라보거나 그 곁에서 운동을 하거나 그 속에 새를 관찰하거나 모든 행위들로 미루어 보건대 강에 기대어 사는 존재들이다.

오늘도 여기 금강 곁에 앉아 그 흐름을 바라본다. 힘차게 흐르는 모습에 위로받으며 오늘 하루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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