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 환자 매일 사망하는데…수술 가능한 의사는 ‘7명’
‘레벨-4 수술 기관’ 美 260곳…국내 단 6곳
“포괄적 치료 제공하는 거점 뇌전증 지원병원 필요”
7명. 국내에서 뇌전증 수술이 가능한 의사 수다. 매일 한두 명의 뇌전증 환자가 사망하는 실정이지만 수술할 수 있는 의사는 극소수다. 거점 뇌전증 지원병원 제도를 도입해 포괄적 치료 시스템을 정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승봉 대한뇌전증센터학회 회장(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은 2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1회 뇌전증 국제기자회견’에서 국내 뇌전증 환자 치료를 위해 포괄적 뇌전증 치료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포괄적 뇌전증 치료’란 뇌전증 환자와 가족들에게 질병 치료뿐만 아니라 우울, 불안, 편견, 차별, 사회생활 문제에 대한 사회복지 서비스와 심리 상담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뇌전증은 뇌신경세포에 과도한 전류가 흘러서 반복적으로 신체 경련발작이 발생하는 뇌질환이다. 국내 뇌전증 환자는 약 36만명으로 소아청소년 환자가 14%, 성인 환자가 86%를 차지한다. 이 중 10만명에 달하는 30% 정도는 약물을 투여해도 경련발작이 재발하는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에 해당한다. 뇌전증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돌연사율은 일반인의 17배, 약물로 치료되지 않는 중증 난치성 뇌전증은 30배나 더 높다.
홍 회장은 “뇌전증 환자의 14년 장기 생존율은 50%에 불과하다”며 “뇌전증이 발생하면 근육 경직 과정에서 근육이 융해되기도 하고, 호흡 곤란으로 저산소증이 발생하는 등 신체 손상률이 일반인 대비 최대 100배 높다”고 설명했다.
뇌전증은 여러 정신건강 문제를 수반한다. 환자의 50%가 우울증, 40%는 불안증을 겪고 30%는 자살 생각을 떠올린다. 학업, 취업, 결혼 등에서 질병으로 인한 좌절을 경험하고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쉽다. 실업, 해고, 차별을 겪기도 한다.
뇌전증 환자의 삶은 척박한데 치료 환경마저 열악하다. 미국, 유럽, 일본 등 해외 선진국에선 30~60분에 달하는 충분한 진료시간이 보장된다. 전문간호사,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사 등의 포괄적 치료 지원도 활발하게 시행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3~5분에 불과한 짧은 진료시간과 뇌전증 전문 인력(코디네이터)의 부재로 포괄적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다. 뇌전증 지원센터가 환자와 가족들에게 전문적인 의료·사회복지·심리·법률 상담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나 한계를 보이고 있다.
홍 회장은 “지원센터에서 뇌전증 도움전화를 통해 심리 상담을 제공하고 있지만 병원 간 상담 실적이 크게 차이가 나고, 국내 의료진조차 포괄적 뇌전증의 치료 개념과 중요성을 몰라 뇌전증 도움전화를 잘 안내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각 지역에 거점 뇌전증 지원병원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짧은 진료시간 때문에 환자에게 많은 치료 기회를 주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홍 회장은 “미국은 진료 시간이 최대 60분에 달하는 반면 국내 진료시간은 2~5분에 불과해 환자들이 의사 눈치 보기 바쁘다”면서 “거점 뇌전증지원병원을 설립해 뇌전증 지원 코디네이터를 배정하고 10억원 정도의 예산을 지원하면 국내 어디서나 일본과 비슷한 수준의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짚었다.
뇌전증 치료는 조기 개입을 통한 적절한 약물 사용이 중요하지만 약물로 치료가 잘 안 되는 환자군이 있다. 이런 환자들은 수술밖에는 답이 없는데 국내에서 수술이 가능한 의사는 단 7명이다. 7명 중 6명이 서울에 있고 지방엔 1명밖에 없다. 수술할 수 있는 병원도 7곳으로, 그중 항상 수술이 가능한 병원은 5곳에 불과하다.
뇌 안에 전극을 삽입하는 최고난도 수술이 가능한 국내 ‘레벨-4 수술 기관’은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고대구로병원, 해운대백병원 등 6곳에 불과한데 미국은 무려 260곳에 달한다. 일본은 28개 거점 뇌전증 지원병원을 지정해 전국 어디서나 환자가 최적의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홍 회장은 “한국에선 꿈도 못 꾸는 뇌전증 치료를 일본은 언제 어디서든 받을 수 있다”며 “우리나라도 뇌전증 환자들이 질병에 대한 포괄적인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과 일본 등을 벤치마킹해 한국도 뇌전증 진료 상위 병원들이 지원 시스템을 마련하도록 국가 차원의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고 부연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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