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위험한 동맹' 나비효과…한반도·유럽 '안보 싱크로율' 높였다

정영교, 박현주 2024. 6. 2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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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평양에서 개최된 북러 정상회담에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에 서명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서명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통해 유사시 상호 간 '군사 개입'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당면 과제인 북한의 재래식 무기 지원 강화를 끌어냈고, 북한도 그 대가로 무기체계의 현대화·고도화에 필요한 첨단 군사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전문가 사이에선 한반도와 유럽에서 당장 전쟁이 발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 베이징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뉴욕에 허리케인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 이론처럼 연쇄적인 파급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북·러 양국이 사실상 군사동맹 수준으로 협력을 강화하자, 북한과 러시아로부터 직접적인 군사위협을 받는 한반도와 유럽의 안보 이해가 사실상 일치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북·러 양국이 이번 조약을 통해 군사 분야에서의 교류·협력을 더욱 확대·강화될 것이란 의지를 내비친 만큼 이들과 전선을 접하고 있는 한국과 유럽에는 직접적인 위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일 쌍방 사이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에 서명했다고 조선중앙TV가 20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한국·일본을 비롯한 '태평양 동맹'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연결을 위해 수년간 노력해왔는데, 모순되게도 김정은과 푸틴이 바이든의 숙원을 이뤄준 셈이다. 이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자유민주주의·인권·시장경제 등의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국가 사이에선 점차 큰 대오를 형성하고 있는 권위주의 국가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공통분모가 획기적으로 커질 수 있다.

실제 나토는 지난 1월 새해 첫 군 수뇌부 회의에 진행하면서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를 초청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내달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서 3년 연속으로 초청을 받아 참가할 예정이다. 이번 북·러 조약은 인도·태평양 국가들과 협력 확대를 꾀하는 나토의 움직임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러시아가 북한을 사실상 재래식 무기 생산기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나토 안에서도 유럽에 부족한 군수품을 한국에서 조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남과 북에서 생산된 군수 물자가 각각 러시아와 나토로 향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8월 3~5일 중요 군수공장 시찰하는 모습. 김정은은 북한이 러시아 측에 수출하는 것으로 알려진 122mm 방사포탄을 들여다 보고 있다. 조선중앙TV, 연합뉴스

앞서 베네데타 베르티 나토 정책기획관은 지난 2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나토는 포탄 등 당장 필요한 군수품을 신속히 외부에서 조달할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며 "나토는 자체 방산 역량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뿐 아니라 한국과 같은 방산 강국과 협력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사안을 예의 주시하면서 신중하게 움직이는 분위기다. 대통령실은 이달 초부터 북·러의 움직임을 면밀히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이도훈 주러시아 대사가 러시아 측에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으며, 푸틴 대통령 방북 직전에는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러시아대사를 초치해 재차 경고했다고 한다.

한국 입장에선 당장 어떤 대응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이번 북·러 정상회담으로 대립각이 더욱 분명해졌기 때문에 앞으로의 목표와 행동 계획을 세밀하게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특히 기존 미국과 일본은 물론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공동으로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가 21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조치되고 있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김홍균 외교부 제1차관은 이날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들여 북한과 러시아가 체결한 '포괄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 대해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달할 예정이다.뉴스1

미국도 신중한 입장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에선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에 이어 추가로 전선이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미, 미·일 동맹을 축으로 인도·태평양 동맹을 강화해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 건 환영할 일이지만, 북한이 러시아와의 밀착을 통해 동아시아에서 위협 수위를 높이는 건 부담이 크다.

향후 중국의 움직임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북·러의 밀착으로 양국에 대한 자신들의 레버리지가 약화되는 측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반미연대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긴 어려울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다만 미국이 북·러 정상회담을 빌미로 한·미·일 협력 강화를 통해 대만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는 상황에 대해서는 경계할 것으로 보인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은 "한반도에서도 국제정치의 나비효과가 나타나는 모습"이라며 "이번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진영 간 대립의 윤곽이 뚜렷해졌기 때문에 미국·일본과 같이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공동전선을 구축해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영교·박현주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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