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놈을 몰아내고 나라를 구하는 전쟁
위 2024년이 동학혁명 130주년이다. 처음엔 '반역'에서 동학란으로, 또 그사이 동학농민전쟁이었다가 백 주년에서야 비로소 ‘동학농민혁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름 하나 바꾸는데 백 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동학혁명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혁명에 참여했던 오지영 선생이 지은 <동학사> 한 권을 들고 전적지를 찾아다니며, 그 답의 실마리나마 찾아보려 한다. 우리를 되돌아보는 기행이 되었으면 한다. <기자말>
[이영천 기자]
나라는 빈껍데기만 남았다. 스스로 지켜 낼 힘을 잃었다. 실질적 피식민지로 전락되었다. 백성의 생명과 재산은 물론 국체(國體)를 이루는 모든 게 앗기고 파괴당할 위험에 직면했다.
이런 위급이 2024년 대한민국에 닥쳐온다면, 총 들어 맞서 싸우자고 나설 시민이 얼마일까? 무척 궁금한 대목이다. 만연한 기회주의에, 민족을 배반하고 일본과 미국의 등에 올라타 호의호식하던 자들의 세상이던 근현대사에 비춰, 암울하다는 게 솔직한 진단이다.
▲ 삼례 봉기 추수가 한창이던 음력 9월, 동학혁명군은 재봉기에 돌입한다. 전주 선화당을 비워주고 삼례에 대도소를 차리면서 봉기는 시작된다. |
ⓒ 이영천 |
가지 않아도 될 길이라면 굳이 나섰을까? 무기와 훈련, 군대 편제 등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10만 군사가 모여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아니 패배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그래도 싸워야 한다. 불의엔 항거해야만 한다. 그래야 진짜 백성이다.
무르익는 분위기
청일전쟁 승기는 일본이 쥐고, 김홍집 내각은 개혁 정책을 거둬들이며 수구의 길로 회귀하는 와중이다. 장손을 왕위에 앉히려던 것과 청을 통해 일본을 배척하려던 일이 발각된 대원군의 위상은, 간장에 졸인 감자처럼 위축되었다.
김개남 봉기령이 삼남으로 확산하여 전라도 움직임에 모두 민감하다. 그런 때인 9월 4일(음), 강원도 영동지방 동학군이 강릉을 점령한다. 이제 더는 봉기를 미룰 수 없게 되었다.
▲ 삼례 봉기비 1894년 10월 삼례에서 재봉기한 동학혁명군을 기리는 봉기비. |
ⓒ 이영천 |
9월 9일, 경기도 안성과 죽산 관아를 동학군이 점령해 버린다. 금강 이남의 움직임엔 상대적으로 느긋하던 조정도, 위협이 턱 밑으로 다가오자 호들갑이다. 부랴부랴 토벌군을 꾸리느라 야단이다.
9월 초, 경상도 예천에서 경상, 충청, 강원도 13개 고을 동학군이 유생 및 조·일 연합군과 맞서는 사태가 벌어진다. 유생들이 집강소를 습격, 포로인 농민군을 낙동강에 생매장해 버린 사건이 발단이다. 대치는 그러나 27일 조·일 연합군의 대승으로 끝난다. 일본군이 사용했다는 미국제 신식소총의 위력이 대단했다는 후문이다. 일본군 화력을 제대로 실감한 충격적 사건이다.
이두황의 토벌군
안성과 죽산이 동학군에 점령당하자 조정은 일본에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이두황을 죽산 부사로 성하영을 안성 부사에 임명하여 죽산과 안성을 평정한 후 경기 동부와 충청도를 토벌하라 명한다. 조병갑 못지않은 악한 이두황의 등장이다. 홍주목사 이승우에게는 경기와 충청 해안의 동학군 토벌을 지시한다.
이러한 소리가 늘 경성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어 묘당에 있는 관리들은 왕에게 아뢰어 동학군을 치자 하였다. 이에 왕은 하교하기를 …(중략)… 이 교지를 받은 죽산 부사 이두황과 안성 부사 성하영이 천여 명의 군병을 거느리고 삼남 대토벌의 임무에 착수하였다. (동학사. 오지영. 문선각. 1973. p227~228 의역 인용)
일본의 지원을 받은 이두황과 성하영은 월등한 화력으로 동학군을 토벌하며 파죽지세로 남하한다. 그 길에서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남·북접을 가리지 않고 동학도라면 무작정 죽인다. 잔인하고 무자비한 살상이었다.
다시, 삼례에서
▲ 전라감영 선화당을 중심으로 일부 복원된 전라감영. 재봉기를 맞아 이곳을 비워준다. |
ⓒ 이영천 |
김학진과 약속에 따라 완주 위봉 산성은 물론 곳곳의 대포와 총기, 화약과 포탄, 탄약 등으로 부족한 화력을 보강한다. 성능은 차지하고 무기가 될만한 건 죄다 끌어모은다. 또한 나름의 통신체계 구축으로 연결성을 확보해 둔다.
전봉준은 서울 병력이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대항하기 위해 대영을 이끌고 전주에서 나와 삼례에 진을 치고 충청지방의 동정을 살폈다. 진을 펼쳐 큰길을 차단하고 주변 읍에서 양곡을 징발하고 …(중략)… 병사를 보내 위봉 산성의 무기와 화약 10분의 1만 남겨두고 모두 가져갔다. 산성을 지키던 병사들이 이 사실을 급히 감영에 보고했다. (번역 오하기문. 황현. 김종익 옮김. 역사비평사. 1995. p264 의역 인용)
▲ 위봉산성 서문 재봉기를 맞아 동학혁명군이 관군의 무기를 징발해 갔다는 위봉산성. |
ⓒ 국가유산청 |
전봉준의 봉기 소식은 전라도는 물론이고 경상도, 강원도, 경기도와 황해도까지 돌고 돌아, 그 기세가 대단하였다. 이즈음 북접에서 김연국과 손천민이 삼례로 온다. 회의는 교단 보호라는 북접의 소극적 입장만 재확인하고 끝맺는다.
전봉준은 답답했다. 전체 동학이 힘을 합해도 버거운 싸움에, 북접의 비협조는 높다란 벽으로 느껴졌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다. 승패를 떠나서 동학 전체가 한 길에 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설득해 모든 힘을 재봉기에 집중시켜야만 한다.
한 길에서
전라도를 남접이라 이름하고, 충청도를 북접이라 이름하여 서로 배척하게 되었고 …(중략)… 그것이 재봉기 상황에서 문제가 되었다. …(중략)… 처음은 언쟁으로 대립하다 차차 육박전으로, 끝내 살상하는 지경에 이르러 자기들끼리 짓밟는 불상사를 일으켰다. …(중략)… 남북접이 힘을 합하는 책무를 오지영에게 맡기었다. (오지영의 앞의 책. p238~239 의역 인용)
북접 강경파도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었다. 충청도 곳곳에서 전라도 동학에 동조하였고, 황하일 등 지도부도 전봉준의 뜻에 찬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유부단한 북접 지도부와 달리, 기층 민중은 북접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 보은 장내리 최시형이 은거한 당시 북접의 중심지 충청도 보은 장내리. |
ⓒ 이영천 |
팔월 하순 오지영은 …(중략)… 보은 장내리에 도달하여 해월 선생을 뵙고 남북접에 대해 보고하였다 …(중략)… 오지영이 남북접 협력을 강조하려 할 즈음, 그들이 돌연 한 통의 긴 글을 내놓으며 보라 한다. 그 통문에는 「도로써 난을 지음은 불가한 일이다. 호남의 전봉준과 호서의 서장옥은 국가의 역적이오, 사문의 난적이라, 우리는 빨리 모여 그들을 공격하자」 적혀있었다 …(중략)… 흥망성쇠는 말할 것도 없이 도인끼리 합하여,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것이 가장 당연한 일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모두 말없이 앉았는데 유독 손병희 혼자 나서며 말하기를 "그 말이 옳다" 하며 통문을 거두게 하고, 남접 정벌 군기를 꺾어 내버리고 보국안민 기치 아래 같이 싸우기로 했다. (오지영의 앞의 책. p241~242 의역 인용)
최시형의 봉기 선언은 강력한 힘이었다. 각처에서 들고 일어난다. 22일 상주 점령을 신호탄으로 24일 진천에서, 25일 안동에서, 26일 음성에서, 27일 문경에서, 29일 경기 안성과 이천에서 봉기하고 30일엔 청주성을 습격한다.
▲ 재봉기 조형물 삼례 재봉기를 형상화한 조형물. 쇠스랑을 쥔 팔뚝에 핏줄이 섰다. |
ⓒ 이영천 |
이제는 명실상부한 '동학혁명군' 이름으로 한 길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교조 신원으로 모였던 때와는 격세지감이다. 삼례를 출발지로 삼았다. 왜놈을 몰아내고 나라를 구하는 전쟁이다. 희망은 오로지 동학혁명군뿐이다. 그래서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 여기서 다시 길을 묻고 새 세상을 열어젖혀야만 한다. 절체절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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