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징벌적 손배제 도입? 조중동 쏠림만 더 심화될 것"
[이영광 기자]
KBS와 MBC, EBS 등 공영방송의 이사회 구조와 사장 선임 절차를 바꾸는 걸 골자로 하는 방송3법 개정안이 지난 18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했다. 사실 방송3법은 21대 국회에서도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바 있다.
이번에 과방위 통과된 법안 또한 본회의 통과하더라도 여야 합의가 없다면 윤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줄곧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주장해 온 윤창현 전국 언론노조 위원장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지난 19일 프레스센터 내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윤 위원장과 만났다. 다음은 윤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 정리한 것이다.
▲ 윤창현 전국 언론노조 위원장 |
ⓒ 이영광 |
-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방송 3법이 어제(1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했는데,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세요?
"방송 관련 법 제도는 국회 전체의 합의로 처리되는 게 최상입니다. 그걸 저희가 모르지 않아요. 그러나 지금 한국 정치는 쟁점 법안을 국회가 처리하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남발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거든요. 답답합니다. 이렇게 가면 거부권 행사하게 될 것이라는 게 거의 확실하죠. 그래서 22대 국회는 여든 야든 정치를 제대로 해야 된다는 거예요. 법안의 시급성과 필요성 강하게 주장해 왔는데, (정치권에선) 여러 비판 있고 완결적이지 않은 지점들이 있다고 주장하니 저희는 그러면 대안을 내놓고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 거예요. 그런 논의가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죠."
- 이번에 과방위에서 통과된 법안 내용은 어떻게 평가하세요?
"21대 국회에서 처리했던 법안하고 대동소이하고 거기에 일부 부칙 조항이 반영됐어요. 현 정부의 언론 탄압으로 언론 자유주의 지수가 폭락했고,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어요. 이는 공영방송 장악이 가능한 시스템 때문이라는 국제사회의 지적이 있었는데요. 이런 환경을 빨리 불식시키지 않으면 안 되기에, 부칙에 21대 국회에서 처리한 법안에 '6개월 후 시행'이라고 정한 것을 '즉시 시행'으로 바꿨어요. 그만큼 시급하다는 거죠.
아쉬운 지점은 이번 22대 국회 과방위에서 처리한 법률안 중에 기존에 정치권이 나눠 먹던 이사 몫을 전체 비중에서 약 4분의 1 정도로 줄이고 학회, 시청자위원회, 그리고 방송 관련 직능 단체의 추천권으로 배분했잖아요. 학회 추천 몫을 방통위가 정하게 했는데, 이게 좀 애매해요. 자격 없는 학회들이 들어올 수 있잖아요. 대표성이 없거나 극히 소수인 학회가 들어올 때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그걸 보완할 수 있는 입법 조항을 의견으로 제시했는데 일단 21대 법안의 틀을 이번에는 건드리지 말자고 과방위에서 정리된 것 같아요."
- 이사 수를 21명으로 늘리는데 방송사 시청자 위원회가 4명, 방송 현업 단체가 6명, 미디어학회에서 6명, 국회가 5명이죠. 그러나 미디어학회 선정은 방통위가 해요. 사실상 정치권에서 영향 미치는 게 11명으로 과반 넘죠. 괜찮을까요?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공영방송에 대해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는 인식이 있어야 돼요. 그게 없으면 무조건 틈을 찾아서 (방송 장악을) 하려고 할 겁니다. 그래서 저는 학회 관련 추천 규정에 대표성, 전문성 같은 것들을 다 고려해서 방통위가 선정하도록 하는 제한 조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 방송3법에 대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언론장악법'이라고 주장하는데.
"윤석열 정부의 언론 자유 탄압, 방송 장악을 국민의힘은 '방송 정상화', '언론 정상화'라고 표현합니다. 정당의 이름은 달랐지만, 정치 세력이 집권할 때마다 언론 장악 논란이 계속 반복됐죠. 그러니까 이에 가장 격렬하게 맞서 싸운 언론노조나 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등의 조직들을 '친민주당' 프레임으로 엮어서 한데 몰아넣지 않으면 반박의 논리가 없는 거죠. 북한이 오물 풍선 날리듯 이 법안, 그리고 현장의 언론인들에 대해 빨간 물감을 담은 오물 풍선을 날리는 거예요. 철 지난 이야기죠.
대응을 보면 답답합니다. 지난 몇 년간 국민의힘은 이 방송법 문제에 대해서 단 한 줄도 대안을 제시한 적이 없어요. 대안은 제시하지 않고 현장 언론인들은 '좌파', '친민주당' 이렇게 몰아버립니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서 KBS 장악하고 YTN 팔고 이젠 MBC 장악하려고 하고 또 다른 방송사들은 방심위 동원해서 다 찍어 누르는 방식으로 언론 자유를 완전히 망쳐놓은 거죠."
- 개혁신당에서는 '공영방송 사장 임명동의제'를 얘기했는데 그건 어떻게 보세요?
"제가 한국방송사에서 처음으로 임명 동의 제도를 노사 합의로 만들었던 사람입니다. 반드시 필요한 제도이고요. 공영방송이 국민의 자산이기 때문에 이사회 구성 등에서 국민 참여가 보장되고 최종적으로 사장 선임 과정에서 임명동의제 같은 허들에 합의돼서 법조문으로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방송의 정치적 독립 보장하는 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합니다."
-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에서 벌어지는 방송장악에 대해 국정조사를 추진하는 것 같던데, 필요하다고 보세요?
▲ 윤창현 전국 언론노조 위원장 |
ⓒ 이영광 |
- 5월 31일로 TBS에 대한 서울시의 지원금이 끊겨서 폐국 위기에 몰린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어떻게 보고 계세요?
"오세훈 시장 취임 전에 <김어준 뉴스공장>이 집중적으로 조명 됐잖아요. 찬사와 비판이 엇갈렸죠. 당시 경영진 아래서 필요한 조치들 내지는 적절한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어요. 그런 상태에서 국민의힘 다수로 서울시 의회가 재편되고 오세훈 시장이 취임하면서 압박이 시작됐죠.
프로그램 공정성에 이슈가 있었다고 하면 그 부분을 다루면 돼요. 공정성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사내에 편성 규약, 편성위원회, 공정방송위원회 이런 장치들을 설치하고 거기에 시민들을 골고루 참여시켜서 방송이 제도적으로 지역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재구성하면 되잖아요. 근데 그게 아니라 방송국 전체를 통으로 날려버리는 결정을 했단 말이에요. 폭력적인 거죠. 이대로 가면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폐합 이후에 방송국 하나를 없애는 첫 사례가 될 거예요."
"징벌적 손배제, 민주주의 망치는 법이 될 가능성 농후"
-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22대 국회 시작하자마자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는 법 개정안을 발의했어요. 21대에서 발의되었을 때 언론노조에서 반대했죠.
"정청래 의원이 주장하는 가짜 뉴스가 뭔가요? 한국 사회만큼 가짜 뉴스라는 표현을 오남용하는 나라가 없어요. 미국의 트럼프가 그 표현을 쓰지만 다른 정치인들은 그 표현 잘 쓰지 않아요. 트럼프가 '페이크 뉴스'라고 언급했던, '가짜 뉴스'라고 언급했던 대상이 CNN을 포함한 주류 방송사들이었어요. 트럼프의 범죄 혐의나 정치 정치적인 결정에 대해 비판하면 다 '가짜 뉴스'라고 뭐라 하잖아요. 한국은 다른가요? 저는 똑같다고 생각해요.
허위 정보나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마구 유포하고 있는 게 정치인인가요? 언론인가요? 자신들의 주장 받아 쓰지 않으면 '기레기'라고 욕하고, 또 자기가 소속된 정당이나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반하는 견해나 다른 사실들 얘기하면 '가짜 뉴스'로 몰아가는 정치적 풍토가 아주 강하고, 거기에 수많은 지지자가 열광하기 때문에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배제가 도입되면 민주주의를 망치는 법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해요.
특히 윤석열 정권에서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도 '가짜 뉴스' 방지 얘기했잖아요. 윤석열 대통령이 반복적으로 '가짜 뉴스 대책'을 얘기하고 있어요. 이 전 위원이 만들겠다고 했던 징벌적 손배는 언론 통제고 민주당이 만드는 징벌적 손배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겁니까? 두 법안은 뭐가 다른가요? 윤석열 정권이 하는 것도 반대고, 민주당의 정청래 의원, 혹은 다른 누가 하는 것도 반대라는 거예요.
국제사회에 미디어 환경이 디지털 중심으로 바뀌면서 언론과 미디어를 통한 정보에 대해서 거부감을 강하게 갖는 정치인들이 많아요. 그렇다고 이런 법안을 함부로 만드는 나라는 없습니다. 다 이유가 있는 것이죠. 윤석열 정부가 엉망 같은 언론 정책을 펼쳐서 언론자유지수 62위까지 떨어졌는데 지금 원내 1당이 그걸 밀어붙이겠다? 언론자유지수는 더 폭락할 거예요.
징벌적 손배 제도가 도입되면 전문적 영역에서 사회 부패를 감시하는 기능들을 하고 있는 마이너 언론들은 그냥 바로 문을 닫을 지경이 될 거예요. 소송 비용도 감당이 안 되니까요. 그러나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같은 거대 언론사들은 징벌 배상 들어와도 아주 여유 있게 법적 대응을 할 거예요. 자본도 있고 인력도 있으니까요. 그게 언론 자유,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걸까요? 그런 제도가 도입되면 오히려 조중동 쏠림 현상이 더 심해질 거라고 봐요."
덧붙이는 글 | '전북의 소리'에 중복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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