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기 파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생태계·SW로 돌파구 마련하는 가전업계
타이젠·webOS로 TV 뿐 아니라 B2B·車로도 플랫폼 확대
똑똑한 기기 만큼 중요해진 보안… "안전 데이터 기술" 관건
인공지능(AI) 시대가 활짝 열리면서 가전업계가 단순 제품 개발 뿐 아니라 스마트가전, 통합 솔루션 등을 제시하며 고객 어필에 나서고 있다. AI 기술로 집안 안팎 가전 제품을 연결하거나, 스마트 TV를 구동하는 타이젠·웹OS를 고도화하는 방식으로 중심축을 HW(하드웨어)에서 생태계+SW(소프트웨어)로 옮기는 모습이다.
이같은 변화는 '스마트 라이프 솔루션'이라는 가전 트렌드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과거처럼 기존 기기만 팔아서는 성장세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삼성·LG는 오랜기간 축적해온 데이터를 자산으로 AI 역량을 강화, 글로벌 우위를 이어가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21일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가전 수출 금액은 81억5100만 달러로 전년과 견줘 소폭(2.6%)이나마 증가할 전망이다. 2022년~2023년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점을 감안하면 3년 만의 플러스 성장이다.
지지부진했던 가전산업 반등은 글로벌 수요 회복세와, AI를 탑재한 스마트가전 신제품 출시, 고효율 제품 수요 증가, 프리미엄 제품 수출 확대 등이 두루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유로2024, 파리 올림픽 등 대형 스포츠 이벤트도 줄줄이 대기중이다.
긍정 요인이 분명하지만 부정적 요인도 상존하는 만큼 안심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먼저 고물가·고금리가 지속되면서 가전 소비 심리 회복이 예상만큼 따라주지 않을 가능성이다. 프리미엄 제품군에서 빠르게 기술 격차를 좁히고 있는 중국과의 경쟁도 만만치 않다. 이같은 리스크를 얼마나 극복하느냐에 따라 수출 증가폭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위기와 기회 요인으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국내 가전업계는 AI 중심의 가전 생태계를 확장하고, 관련 플랫폼을 고도화하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들어 'AI가전=삼성'을 강조하며 AI 기능을 강화한 신제품을 선보이거나, 한층 진화된 스마트싱스(SmartThings) 역량을 소개하며 소비자 어필에 나서고 있다.
삼성은 이전부터 스마트싱스로 다양한 기기들의 연결성과 사용성을 극대화하는 초연결 시대 구현을 지속적으로 소개해왔다.
최근에는 스마트싱스 기반의 ‘스마트 포워드(Smart Forward)’ 서비스를 본격화하며 고객 어필에 나섰다. 스마트 포워드는 신제품이 아니더라도 최신 기능을 적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이 서비스를 통해 냉장고는 32형 대화면에서 ‘퀵 쉐어’기능을 통해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동영상을 간편하게 감상하거나, ‘유튜브’ 앱을 바로 실행해 원하는 콘텐츠를 즐기고, ‘인터넷 이어보기’기능을 통해 스마트폰에서 보던 웹페이지를 그대로 이어서 볼 수 있다.
제습기도 내부를 자동으로 건조해주는 '맞춤 건조' 기능이 지원돼 보다 편리하게 위생 관리를 할 수 있다.
한층 진화된 기기를 보다 다양한 서비스로 활용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삼성전자는 삼성 스마트TV의 OS(운영체계)인 타이젠(Tizen)으로 똑똑한 TV 해법을 제시해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출시한 삼성 스마트 TV 약 2억7000만대에 타이젠 OS를 탑재했다. 삼성은 타이젠OS를 스마트TV 뿐 아니라 모니터, 빔프로젝터, B2B 사이니지 등에도 탑재하고 있다. 다양한 기기 적용으로 스마트홈 시대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다.
타이젠 개발팀의 황서영 프로는 "올해는 타이젠 OS에 대폭 향상된 하드웨어까지 힘을 합쳐 온디바이스 AI(기기 자체에 탑재돼 직접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가 빛을 발하고 있다”며 “자막을 인식하고 위치를 자동으로 조정한다거나 게임 장르를 인식해 자동으로 최적의 화면모드를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타이젠 플랫폼을 통해 AI 가전 확장에 더욱 공을 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LG전자는 기존 '가전 명가'를 넘어 고객의 다양한 공간과 경험을 연결·확장하는 '스마트 라이프 솔루션' 기업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이를 가속화할 수 있는 지렛대가 'AI'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LG전자가 매년 판매하는 제품은 약 1억대로, 제품 수명을 7년으로 가정하면 7억대에 가까운 LG 제품을 고객들이 쓰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해당 제품에 축적된 데이터도 7000억 시간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LG전자는 이 LG 가전과 데이터들이 자사의 AI를 가속화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AI도 새롭게 정의했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공감지능(Affectionate Intelligence)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공감지능을 생성형 AI 기반의 스마트홈 서비스로 발전시켜 고객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LG전자는 이 공감지능 특징을 적용한 제품군을 ▲에어컨 ▲세탁기 ▲건조기 ▲스타일러 ▲공기청정기 ▲로봇청소기 ▲냉장고 ▲전기레인지 ▲오븐 ▲식기세척기 ▲정수기 ▲TV ▲사운드바 등 10여 종으로 확대했다.
구체적으로 2024년형 휘센 오브제컬렉션 타워 에어컨은‘AI 스마트케어’로 실시간으로 사용자 위치를 파악, 바람의 방향과 세기, 온도를 알아서 조절해준다. 일체형 세탁건조기에도 공감지능이 적용됐다. LG 트롬 오브제컬렉션 워시콤보는 AI가 고객이 투입한 세탁물의 무게, 습도, 재질을 분석해 LG전자만의 세탁방법인 6모션 중 옷감을 보호하는 최적의 모션으로 세탁·건조한다.
LG전자는 AI 가전에서 보다 앞서나가기 위해 전용 온디바이스 AI칩도 개발했다. 자체 개발한 가전 전용 AI칩 'DQ-C'의 적용 제품군을 세탁기, 건조기, 에어컨 등 5가지에서 연말까지 8가지 제품군·46개 모델(국내 기준)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TV사업에서도 공감지능 구현을 위해 전용 온디바이스 AI칩, 알파11 프로세서도 선보였다. 이를 통해 고객들은 LG 올레드 TV를 볼 때 '맞춤 화면 설정'으로 선호하는 화면을 볼 수 있다. TV를 사용하다 문제가 생기면 AI가 TV 상태를 자체 진단한 뒤 해결책을 알려주기도 한다.
스마트 TV 운영 체제인 webOS를 앞세워 콘텐츠 역량도 강화하고 있다. TV 기기를 플랫폼 삼아 SW에서 지속적인 매출과 이익을 내는 구조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webOS는 현재 전세계 2억대 이상의 LG 스마트 TV에서 구동하고 300개 이상 TV 브랜드에 공급되고 있다. webOS에서 경험 가능한 제휴 콘텐츠는 약 3500개에 달한다.
LG전자는 외부 TV업체 뿐 아니라 스마트모니터, 차량용 인포테인먼트로도 webOS를 확장해 플랫폼 사업의 모수를 빠르게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박형세 HE사업본부장(사장)은 올해 초 webOS 플랫폼 사업을 조 단위 매출 사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AI로 한층 진화된 기기를 다양한 서비스로 활용하는 것만큼, 사용자를 보호하는 기술 역시 중요해지고 있다.
삼성은 자사의 AI 제품을 안전하게 쓸 수 있도록 '삼성 녹스(Knox)'로 보호하고 있다. 상호 연결된 삼성 기기를 블록체인 기반의 ‘녹스 매트릭스(Knox Matrix)’가 서로의 보안 상태를 모니터링해 제품 간 보안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LG전자의 독자 보안 시스템 ‘LG 쉴드(Shield)’는 보안이 보다 중요해진 AI 시대를 맞아 중앙 서버, 앱, 운영체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상업용 디스플레이를 보안 위협으로부터 보호한다. 국제 보안 규격(CC 인증 EAL2, ISO/IEC DIS 18974)을 취득해 보안 성능을 공인 받았다.
조주완 LG전자 CEO는 "자체 데이터 보안시스템인 ‘LG 쉴드(LG Shield)’를 고객 데이터의 수집·저장·활용 등 전 과정에 적용함으로써 모든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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