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고 외롭다면… 일상 속 경이로움을 맛보라

맹경환 2024. 6. 2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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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경외심
대커 켈트너 지음, 이한나 옮김
위즈덤하우스, 448쪽, 2만3000원
한 사람이 산 정상에서 두 팔을 벌린 채 밤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다. 웅장한 산맥, 수많은 별, 선명한 은하수 등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통해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저자는 우리가 평소에 겪는 것을 뛰어넘는 거대한 것과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을 경외심으로 정의한다. 게티이미지 제공


산 정상에 올라 거대한 운무를 바라볼 때, 태어난 아이를 처음 안았을 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맞을 때, 좋아하는 팀이 극적인 역전승을 거둘 때, 음악 속에 빠져 음악과 하나가 될 때…. 뭔가 공통점이 있다. 이 특별한 순간에는 목덜미에서 등으로 뭔가 오싹함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바로 경외심(Awe)이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심리학과 교수이자 경외심 연구의 선구자인 저자는 20여년 동안 많은 사람에게 좋은 삶, 행복을 찾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마침내 찾은 답이 경외심이었다. 저자는 경외심을 “세상에 대한 기존 이해를 뛰어넘는 거대한 무언가와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으로 정의한다. 의외로 우리는 경외심을 일상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다. 경외심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은 우리 뇌와 몸이 태생적으로 품는 기본 욕구이기 때문에 그저 잠시 호기심을 품고 주위를 둘러보기만 해도 쉽게 경험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경외심을 느끼는 걸까. 저자의 연구팀은 26개국 사람들에게 경외심의 정의를 들려주고 경외심을 느꼈던 순간을 적게 해서 2600편의 일화를 수집했다. 그렇게 8가지의 경외심의 대상인 경이(驚異)를 분류했다. 가장 많은 사람이 경외심을 느끼는 경우는 심적인 아름다움에 감명받을 때였다. 흔히 보기 어려운 선행, 품성, 능력 같은 심적인 아름다움은 순수하고 선량한 의도와 행동이 특징이다. 아름다운 선행이나 고통 속에서 보여주는 용기에서 우리는 감동을 받고 경외심을 갖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자연, 군무나 스포츠 경기장에서 수많은 사람과 하나 되는 경험(집단 열광), 음악, 시각예술, 영적이고 종교적인 체험, 탄생과 죽음, 삶의 근본 진리를 깨닫는 통찰의 순간에도 경외심을 느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대목은 경외심을 일으키는 대상으로 돈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자는 “경외심은 물질주의, 돈, 소유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처럼 세속적인 세계와는 분리된, 세속적인 것들을 뛰어넘어 소위 신성하다고 일컫는 영역에서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중요한 것은 삶의 경이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다. 매일 경외심을 느낀 순간을 적게 하는 일지 쓰기 연구에서는 평균 일주일에 두세 번은 경외심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가자들은 친구가 거리 노숙인에게 보인 친절, 향긋한 꽃내음, 첫사랑의 추억 속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음악 등 일상 속에서 경외심을 느꼈다.

경외심을 느낄 때 우리는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역사적으로 경외심 경험을 전한 많은 책의 공통된 주제는 “독립된 개체로서의 자기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주위 경계가 흐려지며 내가 나 자신보다 훨씬 거대한 무언가의 일부라는 감각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는 것”이다.

경외심을 경험할 때 사라지는 ‘자기’는 심리학에서는 ‘기본 상태의 자기(default self)’로 부른다. 기본 상태의 자기는 자신이 다른 사람과 어떤 점에서 차별화되고 독립적이며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있고, 어떤 점에서 다른 이들보다 경쟁 우위에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기본 상태의 자기가 힘을 과시하면 불안 우울 자기비판에 빠질 위험이 있고, 공동체 내에서 협동심과 선의를 약하게 할 수 있다. 저자는 “경외심에는 바로 기본 상태의 자기가 하는 끊임없는 잔소리를 잠재우는 힘이 있다”면서 “경외심이 일으킨 이런 자기 변화는 오늘날 유행처럼 만연한 고립감과 외로움에 대항하는 강력한 해독제가 되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경외심은 인간 본성 속에 숨어 있는 ‘거룩하고 고결한 기질’을 일깨우는 특성도 있다. 저자는 이를 증명할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한 집단에게는 대자연의 장엄함 속에 경외심을 느끼게 하는 다큐멘터리를 보여주고, 다른 집단에게는 동물의 익살스러운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여줬다. 전체 참가자에게 현금과 교환할 수 있는 포인트를 부여하고 낯선 사람에게 얼마를 나눠줄 수 있는지 물었다. 경외심을 느낀 참가자들은 그렇지 않은 참가자들보다 더 많은 양을 나누겠다고 답했다. 심지어 모르는 사람에게 나눠줄 포인트는 자신이 받은 포인트의 절반 이상이었다. 저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어떻게든 경쟁 우위에 서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의 소유물이나 시간을 타인에게 베푸는 데 인색한 마음은 경외심을 느끼는 동안 허물어진다”고 강조했다.


책은 인간이 경외심을 느끼게 된 이유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저자 개인의 체험담과 다양한 연구를 통해 타인이 보여준 심적인 아름다움이 지닌 초월적인 힘이 교도소, 도서관, 병원 등의 다양한 기관에서 얼마나 위력을 발휘하는지를 밝힌다. 또한 스포츠 경기장이나 시위 현장 등에서 수많은 사람과 하나 될 때 느껴지는 집단 열광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대자연이 선사하는 경이로움과 그 힘이 전쟁이나 외로움, 빈곤이 남긴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도 살핀다. 음악과 시각예술, 종교 등 지금까지 인류 문화가 어떻게 경외심을 다양한 형태로 담아냈는지도 다룬다.

책의 부제는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경이의 순간은 어떻게 내 삶을 일으키고 지탱해주는가’다. 저자는 “자신 외 대상에 감탄할 줄 아는 것(경외심)이 (몸과 마음의) 건강과 행복에 얼마나 이로운지 확인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 세·줄·평 ★ ★ ★
·경외심은 대단한 감정이 아니다
·마음만 열면 우리 일상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답답하고 힘들 때 산과 들로 강으로 가보자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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