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무기지원 반발에 용산 "러시아 행동 따라 수위 결정"
대통령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일 “(한국이) 살상 무기를 우크라이나 전투 구역에 보내는 것은 아주 큰 실수가 될 것”이라 말한 데 대해 “우크라이나 지원 수위는 향후 러시아의 행동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21일 밝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이같은 정부의 입장을 전하며 “살상 무기 지원 방안 안에도 수많은 선택지가 있다. 우리 입장에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타스 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20일 북한·베트남 순방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우크라이나 살상 무기 지원 가능성과 관련해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상응하는 결정을 내릴 것이고 그것은 아마 한국의 현 지도부가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 반발했다.
같은 날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이 북·러 간의 군사 개입을 명시한 ‘조(북)·러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규탄하는 정부 성명을 발표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지원 문제를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힌 것에 대한 경고성 반응이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 20일 정부 성명 발표 뒤 이어진 브리핑에서 “여태까지 우크라이나에 대해선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방침이었는데, 그 방침을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라며 “어떻게 할지는 러시아 쪽도 차차 아는 게 흥미진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무기 지원 방안을 꺼낼지는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155㎜ 포탄이나 대전차 유도탄, 혹은 정밀타격무기 지원 가능성이 언론에 보도되는 것과 관련해 정보 소식통은 “단순 살상 무기뿐만 아니라 러시아 장비를 교란하는 재밍(jamming) 장치 등 여러 옵션을 보고 있다”며 “아직 정해진 건 없다”고 했다.
푸틴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북한을 침공할 계획이 없기 때문에 (북·러 간) 이런 분야의 협력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발언한 점에 대해 대통령실은 “말보다는 행동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푸틴 대통령이 한·러 관계를 고려해 실제 수위를 조절하려는 것인지, 혹은 립서비스인지를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북·러 조약과 관련한 추가적인 공개 입장 표명엔 신중을 기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회견에 다시 용산이 바로 나설 경우 양국 정상이 직접 충돌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미 외교 당국 간 고위급 소통이 곧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대통령실은 지난 5일 푸틴 대통령이 서방 언론과의 기자회견에서 한국에 유화 제스처를 보인 것을 일찌감치 ‘위험 신호’로 받아들이고 대러 제재 준비 등에 착수했다고 한다. 푸틴 대통령은 당시 전 세계 주요 뉴스통신사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지 않는 점을 들며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리 쪽 채널이 열려있고 한국과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당시 푸틴의 발언을 보고 오히려 북·러 정상회담의 준비 작업이라는 위험성을 느꼈다”며 “바로 이도훈 주러시아 대사를 통해 러시아에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성 소통을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난주 윤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 기간 중 구체적 대러 독자 제재 방안을 준비했고, 정부 성명을 포함한 북·러에 대한 단계별 대응조치도 사전에 마련해둔 상태였다”고 강조했다.
한편 21일 한국갤럽이 공개한 여론조사(18~20일·성인 1002명 전화면접 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26%로 지난주 조사와 동일했다. 긍정 평가 이유는 외교(26%)와 의대 정원 확대(11%) 국방·안보(6%) 순이었고, 부정 평가 이유는 경제·민생(17%), 소통 미흡(8%), 의대 정원 확대(7%) 순이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4월 총선 이후 20%대 중반을 답보하고 있는 상태다. (※자세한 여론조사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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