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키’ 차이
이직을 하면서 장거리 운전을 하게 된 고지윤(38)씨는 10년 만에 차부터 바꿨다. 고씨가 차량 교체 후 가장 먼저 만족을 느낀 것은 뜻밖에도 ‘디지털 키’ 시스템이었다. 고씨는 “키를 들고 다닐 필요도 없고, 원격 시동도 가능하고, 주차장 도착 전부터 반겨준다. 기대보다 훨씬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고씨처럼 최근 출시된 차량의 디지털 키 시스템에서 높은 만족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운전하기 전부터 차량이 제공하는 편의성을 통해 자동차에 적용된 기술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체험하면서다. 최근 자동차 키는 ‘스마트키’와 ‘디지털키’ 시스템이 대세다.
스마트키는 저주파 통신이나 근거리 무선 통신(NFC) 등을 통해 주차된 차량 앞까지 가기 전 문을 열고 닫는 게 가능하다. 디지털 키는 스마트폰에 어플리케이션을 깔면 이용 할 수 있다. 여전히 ‘키’(key)라고 부르지만 열쇠 모양으로 생기지는 않았다. 스마트 키는 카드키 타입으로 바뀌고 있고, 디지털 키는 앱으로 구동되기 때문에 실물이 없다.
디지털키와 관련해 현대자동차·기아는 상대적으로 앞선 기술을 갖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9년 출시된 8세대 쏘나타부터 디지털키가 적용됐다. 택배 기사에게 트렁크만 열 수 있는 키를 전송해 배송 물품을 차에 싣도록 하는 것도 가능하다.
수입차들도 디지털키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BMW 디지털키는 스마트폰 배터리가 방전되거나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초보운전자에게 디지털키를 공유했을 때 가속력을 감소시키고 최고 속도를 제한하는 것도 가능하다.
스마트키를 통해서는 주차도 할 수 있다. 현대차 쏘나타, 기아 K5 등은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RSPA) 기능을 탑재해 차 밖에서 스마트키를 이용해 주차가 가능하다.
스마트 시대지만 도로에는 여전히 20년 전 생산된 차량도 달리고 있다. 1980년대 개발된 ‘리모컨키’를 이용해 시동을 거는 차들이 있다는 소리다.
차 키는 자동차를 살 때 당연히 따라 오는 필수 옵션이다. 하지만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무렵엔 차 키의 개념이 없었다. 1886년 독일에서 칼 벤츠가 휘발유 자동차를 처음 개발한 이후 63년 동안은 자동차를 사도 열쇠는 받을 수 없었다. 문이나 천장이 없어서 보안 장치가 요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19세기 후반부터 63년간 운전자들은 차 키 없이 어떻게 시동을 걸었던 걸까. 초창기 자동차의 시동은 운전자가 차체 뒤에 동그랗게 생긴 ‘플라이 휠’을 힘껏 돌리거나, 차 앞부분 라디에이터 그릴 밑에 작은 구멍을 끼우고 연결한 ‘크랭크 핸들’을 돌리는 방식을 이용했다.
1910년대에는 버튼식 시동이 등장했다. 내장된 배터리의 전기로 움직이는 모터를 통해 시동을 거는 방식이다. 이때도 열쇠는 필요 없었다. 하지만 이 시동 방식 때문에 ‘차 키’가 만들어졌다. 전기만 연결되면 누구나 시동을 걸 수 있어서 도난 사고가 잦았기 때문이다.
보안을 위해 차 키가 처음 등장한 게 1949년이다. 그야말로 열쇠 모양이었다. 열쇠로 차문을 열고, 그 열쇠를 차에 꽂아 돌려서 사용하는 ‘턴키 스타터’ 방식으로 사용됐다. 이 또한 ‘복제가 쉽다’는 단점이 지적됐다. 하지만 열쇠 손잡이 부분에 암호화된 칩을 넣어 똑같은 열쇠를 만들어도 운전은 불가능하게 ‘이모빌라이저 기술’을 탑재하며 문제점을 보완했다.
미래의 차키는 어떤 모습일까. 가장 유력한 후보는 ‘생체인식 시스템’이다. 현대차는 2018년 세계 최초로 ‘지문 인증 출입·시동 시스템’을 개발해 중국형 싼타페(현지명 셩댜)에 적용했다. 제네시스는 2021년 얼굴을 인식해 차문을 열고 운전자에게 맞춤한 운행 환경을 제공하는 ‘페이스 커넥트’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이 처음 적용된 차량은 GV60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스마트키나 디지털키 없이 차량 출입부터 운행까지 가능하게 해주는 핵심 기술이 개발됐다”며 “앞으로 생체 정보만으로 자동차를 운행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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