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자원개발은 실패를 먹고 자란다

오현길 2024. 6. 2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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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으로 10년간 매년 이 사업에 1000만달러씩 지원하겠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를 두 차례나 겪어야 했던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은 일찌감치 자원개발에 눈을 돌렸다.

40여년 전인 1982년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석유 개발사업에 뛰어들며 그가 했던 말은 당시 임직원들에게 격려 이상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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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유전, 투명한 정보공개 절실
수천억 실패 감수할 국민적 공감대 필요

"나는 앞으로 10년간 매년 이 사업에 1000만달러씩 지원하겠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를 두 차례나 겪어야 했던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은 일찌감치 자원개발에 눈을 돌렸다. 40여년 전인 1982년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석유 개발사업에 뛰어들며 그가 했던 말은 당시 임직원들에게 격려 이상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성공률이 극히 희박한 자원 개발 사업이다 보니, 만일 실패했을 경우에 그 책임이 직원들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허나 실패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그의 용단에도, 이듬해에 처음으로 참여한 인도네시아 카리문 광구에서 350만달러의 손해를 보고 실패했다. 보고를 들은 최 선대회장은 "성공보다 실패할 확률이 높은 사업입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해볼 것은 해야 합니다"라며 실패에 주눅 들어 있던 직원들을 독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SK그룹의 자원개발 역사는 이렇게 시작했다. 최 선대회장은 섬유에서 석유화학, 정유를 거쳐 자원개발로 이어지는 석유사업 계열화를 꿈꿨고,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하면서 그 발판을 마련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1984년 북예멘 마리브 유전에서 상업성 있는 석유를 발견하고, 3년 후인 1987년 마침내 하루 15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게 됐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꽃길만 걷진 않았다. 1989년에는 유망하다고 평가받던 미얀마 블록C 광구를 단독으로 개발했다가 4년여 동안 모두 5600만달러를 날리기도 했다. 당시 그 돈이면 국내에서 웬만한 기업 하나는 살 수 있다며 혹독한 실패라고 평가받기도 했다.

석유 개발 사업에 진출한 지 10년이 지난 1993년 사업팀을 다시 만난 최 선대회장은 "비록 미얀마 사업이 실패하긴 했지만 실망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10년간 또 투자하겠습니다"라며 굳은 의지를 이어갔다. 그가 그린 자원개발의 꿈은 기업 오너 한 사람이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가지고 진심으로 사업을 추진했던 대표적인 사례로 오늘날 평가받고 있다.

이달 초 윤석열 대통령은 동해 심해에 유전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깜짝 발표했다. 그러나 아직도 의혹 제기와 해명이 이어지고 있다. 진짜 기름이 있느냐에서부터 자료를 해석한 컨설팅 업체에 대한 궁금증까지 어느 하나 속 시원히 풀리지 않았다.

이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한국석유공사는 우리나라에서 자원개발에 관한 가장 많은 경험과 기술을 가졌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1979년 한국석유개발공사로 창립, 40년 넘게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국내외 오지에서 땅을 파고 석유를 뽑아내며 노하우를 쌓아온 만큼 그 전문성을 의심키는 어렵다. 대통령도 최소 5공의 시추가 필요하다는 석유공사 보고를 승인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이 시점에 과연 우리는 자원개발의 중요성만큼 그 실패를 온전히 감수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자원개발이란 실패가 쌓여야 성공에 다다를 수 있다는 공감대는 아직도 부족해 보인다. 탈탄소 시대 광구 개발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야 하는지 동의하지 못하는 이들도 여전히 많다. 결국 국민으로부터 지지받으려면 철저한 검증과 이를 위한 투명한 정보공개가 무엇보다 먼저다. 그래야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산업IT부 오현길 차장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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