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저지오름에 간 사람들이 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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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미 기자]
먼나무 아래 잠들어 계신 아버지를 찾아 갔습니다. 월요일 오후여서 그런지 산 중턱에 있는 추모공원에는 인적이 없습니다. 조성된 지 오래지 않은 그곳에는 나무들이 아직 어립니다.
지난 겨울에는 붉은 열매들을 단 먼나무와 꽃을 피운 동백을 보기도 했지만, 그늘을 드리울 만큼 자라려면 세월이 더 필요하겠죠. 드넓게 펼쳐진 듬성듬성 나무들 사이, 어슬렁대는 새는 까마귀들 밖에 없군요. 근처까지 다가와서 먹을 것이 있나 살피고 있네요.
▲ 새벽의 합창을 기다리며 지난 6월 14일 새벽에 저지오름에서 새들의 합창을 듣고 있는 한강 사람들 |
ⓒ 최수경 |
어릴 때는 새소리나 바람소리 같은 것이 사방에 있는 나무들과 풍경의 일부였기에 구분지어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도시 사람이 되어 수십 년을 살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와 새들의 노래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저지오름을 가니 오래 전 아이가 어렸을 때 아버지랑 왔던 기억이 났습니다. 아버지는 건강을 위해 이웃 마을에 있는 저지오름까지 가서 매일 한 바퀴씩 돌며 운동을 하셨죠.
이번에 제주에 간 것은 우리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워크숍 때문이었는데, 마침 아버지의 첫 기일도 연이은 날짜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가는 곳마다, 보는 것마다 아버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흰눈썹황금새가 노래하고 한라산 산행 중에 듣는 흰눈썹황금새 소리 |
ⓒ 조은덕 |
"몇 주 전에 한라산에 갔다가 흰눈썹황금새 소리를 들었어. 이제껏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새야. 이런 게 어디 황금새뿐일까. 숲해설하는 친구가 내게 들려줬어. 우린 먹던 김밥도 넘기지 못하고 숨을 죽이며 새소리를 듣기 위해 기다렸어. 이윽고 그 새소리가 들렸어. 친구가 이거예요, 혹여나 새소리가 멈출까 봐 귓속말로 속삭이며 말하는데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였어. 무엇이 저리도 그 친구를 감동시켰을까 가늠해보며 나도 덩달아 황금새 소리에 집중했어. 천상의 소리를 들은 것처럼 나는 감동했어. 이 숲에만도 정말 많은 새들이 살고 있구나 싶어. 새소리는 언제나 다양하고 저마다의 소리로 울어, 아니 노래해. 요즘 잘 들리는 새 소리는 휘파람새와 뻐꾸기 소리야."
얼마 전에 은덕언니가 한라산을 다녀오고 이런 글을 단톡방에 올렸습니다. 은덕언니는 이 세상에서 저랑 가장 닮은 사람. 두 살 터울의 언니입니다. 우리는 무척 많이 닮았다고 해요. 며칠 전에 큰언니를 따라 카페에 갔어요. 은덕언니를 몇 번 봤던 카페 주인은 저를 보고 은덕언니라고 생각하더군요. 우리는 목소리도 정서도 비슷하죠.
나무를 좋아하고 산책을 즐기는 것도 닮았습니다. 언니는 봄의 숲에서 꽃을 가득 달고 있는 때죽나무나 초여름 숲그늘 아래 피어난 산수국 사진을 올리고 저는 이어서 황금비 같은 모감주나무 꽃이나 저녁 노을을 닮은 능소화 사진을 올리죠. 꽃의 향기와 아름다움에 취하고 나무 곁에 서서 지극한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시간이 가고 오는 것을, 누군가 다가오거나 떠나는 것을 담담히 순리라고 여기게 됩니다.
▲ 제주도에서 맞는 새벽 양경모 에코샵홀씨 대표가 제주도에서 새들의 합창을 들으러 찾은 오름 |
ⓒ 양경모 |
'저지오름 Dawn chorus 합창 단원 호랑지빠귀/밤새, 두견이/밤 낮, 두견이 암컷, 꿩, 흰배지빠귀, 직박구리, 멧비둘기, 동박새, 섬휘파람새, 긴꼬리딱새, 뻐꾸기'(양경모 대표의 카톡 내용)
지난 주에 새들의 합창 콘서트에 초대한 분은 에코샵홀씨 양경모 대표님입니다. 장소는 제주도 저지오름이었고요. 그는 이 여행을 준비할 때부터 새벽에 듣는 새들의 노래를 꼭 듣자고 했어요.
우리 숙소가 저지리에 있었기에 가까운 저지오름을 찾았습니다. 아침 4시에 깨어 4시 20분에 차를 타고 30분 정도에 저지오름 입구에 도착합니다. 우리는 오름으로 올라가지 않고 초입에 멈추어 섭니다.
우리를 둘러싼 나무들과 산담에 둘러싸인 무덤들, 그 위로 새들이 머물기도 하고 날기도 합니다. 여명이 부지런히 어둠을 밀어내는 새벽에 동박새, 직박구리, 두견이, 섬휘파람새들이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일전에 그는 섬휘파람새 노래를 특히 좋아한다고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청아하고 경쾌한 음색. 우리들이 다가가자 끝없이 경계음을 내는 직박구리 소리조차 도심에서 들을 때와는 다르게 느껴지네요.
눈을 감고 오롯이 새들의 새벽 합창을 듣던 시간. 새들의 일상을 잠시 엿보던 시간.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새벽녘 저지오름 아래로 순간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듭니다. 그곳을 함께 걸었던 아버지와의 시간으로도 그리움 가득한 여행을 합니다.
그리움은 그리움대로, 회한은 회한대로 잘 추스르며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담대히 살아야 하겠습니다. 새들이 부지런히 새들의 시간을 살듯이… 은덕언니는 이렇게 말을 맺는군요.
"새소리들은 공기를 가르는데도 숲의 고즈넉함을 깨뜨리지는 않아. 오히려 그 새소리들로 숲의 적막함이 더 깊어지는 느낌이랄까. 산책이 더 길어지고 있어. 이렇게 시간이 가. 이렇게 여름이 오네."
후덥지근한 이 여름, 제주에 사는 섬휘파람새의 노래를 바람결에 전합니다. 건강하시길 바라요.
덧붙이는 글 |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소식지 '은미씨의 한강편지'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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