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방한, 미·중 정상 만난다…내년 '경주 APEC' 외교 큰 장
내년 11월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 도시로 경주가 사실상 결정되면서 외교적 '빅 이벤트' 효과에도 관심이 쏠린다. 그간 APEC 정상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해왔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방한할 기회가 될 수 있는데, 미·중 정상이 대좌하는 장으로도 한국이 떠오른다는 차원에서다.
정부 당국자는 21일 "APEC은 정상급 국제회의 중에서도 규모가 상당히 큰 편에 속한다"며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고위관리회의(SOM), 외교·통상 합동각료회의(AMM), 워킹그룹 회의, 각종 포럼 등 200회 이상의 APEC 관련 회의가 한국에서 열리는 것도 부수적인 효과"라고 설명했다.
한국이 APEC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건 2005년 부산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이후 20년 만이다. APEC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60% 이상, 세계 교역량의 50%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협력체다.
무엇보다 이를 계기로 주요국 정상들이 경주에 모이는 게 관전 포인트다.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시 주석의 방한이 성사될 가능성도 크다. 시 주석의 방한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7월 국빈방문이 마지막이다.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한·일·중 정상회의에 리창(李强) 중국 국무원 총리가 방한하는 등 양국 관계가 최근 전격적인 개선 흐름을 타는 상황에서 내년 APEC 정상회의 또한 정상급 소통의 중요한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또한 시 주석의 방한이 먼저 이뤄질 경우 윤 대통령의 방중을 답방 형태로 추진할 동력이 마련된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윤 대통령과 시 주석은 잠시 조우했지만 정상회담은 불발됐다.
APEC 정상회의는 거의 매번 미·중 정상회담의 장으로도 활용되는데, 특히 이번에는 미국에서 새 행정부가 출범한 뒤라는 시기가 더 주목을 끌만 하다. 미국의 새 대통령이 1월 취임한 뒤 양국 간 별도의 양자방문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APEC 정상회의가 차기 행정부 들어 미·중 정상이 처음 대면해 회담하는 무대가 될 수 있다. 바이든 혹은 트럼프 행정부 2기 들어 미·중 관계를 재설정하는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 샌프란시스코 APEC 정상회의에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 주석이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간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줄이기로 합의하고 관계 안정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추이에 달렸지만, 원칙적으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멤버이기는 하다. 물론 이는 주최국의 재량에 달렸다. 미국은 지난해 주최한 APEC 정상회의에 대러 제재 등을 고려해 푸틴을 아예 초청하지 않았다.
지난 19일 평양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에서 양측이 유사시 자동 개입의 길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포괄적인 전략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면서 한·러 관계 또한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 현재로선 푸틴 초청 가능성은 쉽게 상정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정부는 내년 APEC 정상회의를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과 글로벌 중추 국가 구상을 확장할 기회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해 최초로 한·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를 열었고, 지난달에도 역시 최초로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4강 외교를 넘어 글로벌 사우스 등으로 외교 저변을 넓히려는 노력에 APEC 정상회의 같은 대형 외교 이벤트는 주요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이번 정상회의가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지방 외교 강화 효과도 있다.
내년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 주도로 도출될 결과물도 주목된다. 지난해 미국 APEC에서 21개 회원국 정상은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규칙에 둔 다자간 무역체제의 중요성을 재확인한 '골든 게이트 선언'을 채택했다.
앞서 APEC 정상회의 개최도시 선정위원회는 20일 4차 회의에서 경주를 최종 개최 도시로 준비위원회에 건의하기로 의결했다. "그간 토의와 평가에 기반해 경주가 국가와 지역 발전 기여도, 문화와 관광자원 등 다양한 방면에서 우수성을 보유했기 때문에 최적의 후보 도시로 다수결 결정했다"는 게 선정위의 설명이다. 경주는 불국사, 석굴암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4점을 보유하고 있다.
당초 경주와 함께 인천광역시, 제주특별자치도 등 3개 지자체가 유치 경쟁을 벌였지만 결국 경주에서 개최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힌 셈이다. 이번 달 중 열릴 준비위에서 경주 개최가 확정될 전망이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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