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도 "조기총선 잔인하다" 탄식…마크롱, 강행하는 속내
" “잔인하다”(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총리) " " “프랑스에 큰 위험이다”(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 "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에 참패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조기 총선이란 승부수를 던지자 아탈·사르코지처럼 그와 가까웠던 정치인들조차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지난 9일 하원 해산으로 치러지는 조기 총선(6월 30일 1차 투표, 7월 7일 결선 투표)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프랑스는 여전히 혼란에 싸여 있다. 프랑스 대통령이 의회 해산 권한을 실제 행사한 건 1997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이후 27년 만이다.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으로 인한 충격은 정치권을 넘어 경제·사회 전반에 타격을 주고 있다. 파리 증시는 급락을 거듭해 지난 17일 유럽 최대 주식 시장의 지위를 런던에 내줬다. 전국에선 연일 극우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정치권에선 총선을 겨냥한 합종연횡 시도가 이어진다. 올림픽 코앞에 “프랑스를 넘어 유럽까지 뒤흔드는 위기를 만들었다”는 평까지 나온다. 그새 마크롱의 지지율(24%)은 지난달보다 5%포인트 하락해 5년 반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승부사 마크롱의 행보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마크롱이 유럽의회 선거 몇 달 전부터 측근 그룹과 조기 총선 카드를 논의했다는 정황이 잇따라 나왔다. 선거 참패에 따른 ‘충동적 도박’이 아니라 정교하게 짠 정치적 승부수였다는 해석이다. 이는 변곡점마다 금기에 도전했던 그의 정치 역정과도 연결된다.
일요일 오후 8시58분 하원 해산 발표
르몽드에 따르면 의회 해산이라는 ‘고위험 시나리오’는 약 10명 미만의 측근 그룹이 여러 달 동안 엘리제궁에서 작업한 결과다. 대통령 고문인 브루노 로제 쁘티와 조나단 게마스, 알렉시스 콜러 비서실장,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부 장관 등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일요일이자 유럽의회 선거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는 지난 9일 엘리제궁에 있었고, 이날 오후 8시 58분 마크롱은 의회 해산을 발표했다.
의회 해산 시나리오가 진작부터 논의된 건 여러 개혁 등이 지지부진했던 상황과 관련 있다. 2년 전부터 하원(총 577석)에서 마크롱 우호 의석(239석)은 과반(289석)에 못 미쳤다. 2022년 말부터 마크롱의 부인 브리짓은 지인들에게 “우리는 결코 그렇게 5년을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게다가 야당은 급증하는 재정 적자를 이유로 올가을 불신임 투표에 부치겠다고 위협해왔다. 마크롱 측의 한 상원의원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가을까지 기다리기보다 지금 행동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대선 전 극우 집권 경험하는 게 낫다?
마크롱이 2027년 대선에 앞서 유권자들이 미리 RN의 정치를 경험해 혐오감을 느끼기 원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치 분석가 끌로에 모린은 “마크롱은 유권자들이 곧 혐오감을 느낄 것이라는 데 베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는 대통령의 3선 연임이 불가능해, 재선인 마크롱은 다음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그래도 마린 르펜 전 RN 대표에게 대통령직을 넘기는 것만큼은 막으려 하고 있다. RN이 조기 총선에서 승리해 RN의 29세 대표 조르당 바르델라가 총리가 되는 것도 마크롱에게 나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에서 총리는 잘못된 모든 것에 책임을 지는 경향이 있지만, 대통령은 그런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크롱은 “좌우파 극단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이들이 뭉쳐 함께 하자”고 촉구하고 있다. 이는 2017년, 2022년 대선 결선투표 때 마린 르펜을 물리치는 데 효과를 봤던 전략이다. 마크롱을 지지해온 프랑수아 파트리아 상원의원은 1969년 자신의 통치에 한계가 왔다고 판단하고 자진 사임했던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을 거론하며 “(조기 총선 결정은) 위험한 도박이 아니다. 프랑스의 주권을 존중하는, 드골주의자다운 결정”이라고 말했다. 마크롱은 평소 드골을 존경한다고 밝혀왔다.
마크롱의 캐치프레이즈 “위험 감수해야”
마크롱이 대담한 포석을 선보인 건 처음이 아니다. FT에 따르면 마크롱이 측근들과 반복해 사용하는 캐치프레이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Il faut prendre son risque)’다. 사실 그의 정치 인생 자체가 무모해 보이는 듯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마크롱은 39세의 나이에 선출직 경험이 전무한 신생 정당 소속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권에 도전할 때는 좌·우 이념으로 나뉜 기존 진영 정치를 뛰어넘겠다고 호소해 경륜이 풍부한 지도자를 선호하는 프랑스 유권자들의 관성을 깼다. 고교 재학 시절 교사였던 25세 연상 브리짓과 결혼한 스토리도 유명하다.
임기 내내 노동·국철·공공부문 등 각종 개혁을 밀어붙였다. 2018년 유류세 인상을 계기로 일어난 노란 조끼 시위, 2023년 연금개혁 반대 시위, 2024년 농민 시위 등으로 홍역을 치를 때도 정면승부를 택했다. 노란 조끼 시위 때는 두 달간 전국을 순회하며 사회적 대토론을 진행했고, 농민시위 때는 농민들과 공개 토론을 했다. 반면 충분한 설득·합의 없이 밀어붙이는 그의 방식에 국민적 피로감이 커졌고, 결국 극우가 파고드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선까지 극우 몰아칠 자충수 될 수도
현재로선 마크롱이 던진 승부수가 총선은 물론 대선까지 극우 세력에 내주는 자충수가 될 것이란 우려가 더 앞서는 상황이다. 지난 17일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RN은 지지율 1위(32%), 좌파연합인 신민중전선(NFP)은 2위(28%)로 나타났다. 마크롱이 이끄는 중도우파 집권당 르네상스당 연합(앙상블)은 3위(18%)에 그쳤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열흘 남은 1차 투표까지 커다란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FT는 “유권자들이 마크롱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마크롱 자신은 모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마크롱의 ‘계획된 도박’이 먹힐지, 아니면 극우에 엘리제궁을 열어주는 자충수가 될지는 이후 판가름날 전망이다.
백일현·박형수 기자 baek.il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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