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99년까지 미리 날짜 계산... 달주기는 4500만년에 하루 오차인 시계의 정체 [더 하이엔드]

이현상 2024. 6. 2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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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제네바에서 지난봄 막을 내린 시계 박람회 워치스앤원더스에서 ‘IWC 샤프하우젠(이하 IWC)’은 화제의 중심에 섰다. 새로 발표한 ‘포르투기저 이터널 캘린더’ 워치 때문이다. 3999년까지 날짜를 자동으로 계산해 알려주는 데다 시계에 탑재된 문페이즈 기능의 오차가 4500만년에 단 하루에 불과한 제품이다. 이는 시계 공학의 정점에 선 IWC의 현주소를 알려준다.

워치스앤원더스 제네바 시계 박람회에서 IWC가 발표한 포르투기저 이터널 캘린더. [사진 IWC 샤프하우젠]

캘린더 매커니즘의 대가
1868년 스위스 북동부의 도시 샤프하우젠에 터를 잡은 IWC는 1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스위스발 기계식 시계 제작에 앞장선 브랜드다. 3개의 시곗바늘로 구동하는, 조립이 비교적 간단한 시계부터 여러 기능을 시계 하나에 넣는 복잡한 하이 컴플리케이션까지 모두 만들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 특히 특정 기간까지(보통은 2100년) 매달 날짜 수를 스스로 계산해 알려주는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은 이들의 전문 분야다. 30일인지 31일인지 계산하며, 2월처럼 날이 적은 달과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윤년도 놓치지 않는다.

스위스 샤프하우젠에 자리한 IWC 매뉴팩처 전경. [사진 IWC 샤프하우젠]


1985년, IWC는 이 퍼페추얼 캘린더 메커니즘을 81개 부품으로 구성한 모듈 형태로 만들었다. 이 모듈은 출시하자마자 날짜 메커니즘 분야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모듈 형태는 이전 일체형 무브먼트와 달리 조립이 쉽고 고장이 나도 고치기 쉬웠다.

퍼페추얼 캘린더 매커니즘은 IWC를 대표하는 기능이다. IWC의 워치메이커. [사진 IWC 샤프하우젠]


IWC는 퍼페추얼 캘린더 메커니즘을 계속 수정하고 발전시켰다. 1985년 모듈 발표 당시 문페이즈의 오차는 122년에 하루였다. 2003년엔 오차를 577.5년에 하루로 대폭 줄였다. 캘린더 분야의 강자임을 다시 한번 드러낸 순간이었다.

기존 틀 허문 퍼페추얼 캘린더
2024년 IWC가 공개한 포르투기저 이터널 캘린더는 퍼페추얼 캘린더보다 더욱 향상된 기능을 갖춘 시계다. 이에 브랜드는 새 시계에 영원을 뜻하는 이터널(eternal)이란 이름을 붙였다. ‘포르투기저’는 항해용 정밀 시계에 영감 받아 1930년대 후반에 처음 탄생한 컬렉션이다.

3999년까지 날짜 수정이 필요없는 포르투기저 이터널 캘린더. [사진 IWC 샤프하우젠]


발전된 기능은 다음과 같다. 기존 퍼페추얼 캘린더가 2100년까지 자동으로 날짜를 계산해 알려주는 것과는 달리 이터널 캘린더는 무려 3999년까지다. 윤년을 계산하는 모듈식 부품을 재정비한 덕분이다. 세큘러 퍼페추얼 캘린더라 불리는 이 모듈은 400년에 한 바퀴 도는 기어를 포함해 단 8개의 부품으로 이뤄졌다. 추가한 부품 수보다 그 효과는 큰 것, IWC가 추구하는 시계 공학의 단면이다.

400년에 한 바퀴 도는 세큘러 퍼페추얼 모듈 부품 조립 과정. [사진 IWC 샤프하우젠]


포르투기저이터널 캘린더에 드러난 독창적 기술은 더 있다. 문페이즈의 오차를 4500만 년에 단 하루로 줄였다. 초승달이 뜬 후 다음 초승달이 뜨기까지 기간을 칭하는 태음월은 정확히 29일 12시간 44분 2.88초다. 그렇기에 그레고리력에 기반을 둔 날짜와 문페이즈 디스크의 회전 속도 차이를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 IWC는 22조번 이상의 시뮬레이션을 거쳐 오차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업계에서 화제가 될 법한 수치다.

새 옷 입은 포르투기저
IWC는 올해 브랜드 대표 컬렉션 포르투기저의 새 디자인도 공개했다. 시계 케이스 옆면의 두께를 줄여 날렵한 인상으로 만들고, 다이얼을 덮는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를 돔 형태 이중 구조로 완성했다. 견고할 뿐 아니라 손목 위에서 다이얼이 더욱 돋보이는 효과를 준다.

실버 문, 옵시디언, 듄, 호라이즌 블루 등 4가지 다이얼로 선보이는 포르투기저 컬렉션. [사진 IWC 샤프하우젠]


여러 변화 중 4가지 다이얼 색이 시선을 모은다. IWC는 맑고 투명한 오후의 하늘색을 표현한 ‘호라이즌 블루’, 석양이 시작되는 초저녁 분위기를 담은 ‘듄’, 새까만 밤하늘을 표현한 ‘옵시디언’, 달 표면에서 반사된 태양의 반짝임을 나타내는 ‘실버 문’ 등 새 포르투기저에 사용한 다이얼 컬러에 개성 있는 이름을 지었다. 브랜드는 깊이 있는 다이얼 색을 구현하기 위해 15겹의 투명 래커 작업을 포함, 총 60여 단계의 과정을 거쳤다고 밝혔다. 4가지 색 다이얼을 포함해 바뀐 디자인은 42·40㎜ 2가지 크기의 오토매틱 버전, 크로노그래프 등 여러 버전의 시계에 적용됐다. 포르투기저 컬렉션을 대표하는 케이스 지름 44㎜ 퍼페추얼 캘린더도 마찬가지다.

IWC와 포르투기저 컬렉션을 대표하는 퍼페추얼 캘린더 44 모델. 이름처럼 케이스 지름은 44mm다. [사진 IWC 샤프하우젠]


‘포르투기저 퍼페추얼 캘린더 44’는 7일간의 긴 파워리저브 기능을 갖춘 오토매틱 방식의 52616 칼리버로 구동한다. 동력을 공급하는 장치인 로터는 양방향으로 회전한다. 다이얼엔 시간과 날짜와 관련한 다양한 디스플레이를 담았다.

남반구와 북반구에서 각각 볼 수 있는 달의 모습을 담은 문페이즈가 IWC 퍼페추얼 캘린더의 특징이다. [사진 IWC 샤프하우젠]


문페이즈(12시 방향), 날짜와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3시), 월(6시), 요일과 스몰 세컨드(9시) 카운터 구성이다. 4자리로 표기하는 연도 창은 7시 30분 방향에 두었다. 여러 정보를 담았지만 읽기 쉽다. IWC 퍼페추얼 캘린더의 특징이다. 문페이즈의 오차는 577.5년에 하루며, 남반구와 북반구에서 볼 수 있는 달의 모습을 모두 담아냈다.

IWC는 각 다이얼 컬러마다 여러 기능이 있는 포르투기저 워치를 한 번에 출시했다. (왼쪽부터) 퍼페추얼 캘린더 44, 크로노그래프, 오토매틱 42, 오토매틱 40. [사진 IWC 샤프하우젠]


우아한 디자인에 숨은 혁신적 시계 공학
박람회 기간 IWC의 최고경영자(CEO) 크리스토프 그레인저-헤어를 만나 새 시계의 특징과 브랜드의 방향성에 관해 물었다. 그레인저-헤어는 영국 런던의 세인트 마틴 아트 & 디자인 칼리지를 졸업하고 본머스 대학교에서 인테리어 디자인과 건축학을 전공했다. IWC에 처음 발을 들인 건 2006년이다. 그는 이후 마케팅·세일즈·리테일·전략 기획 등 주요 보직을 거쳐 2017년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IWC 최고경영자 크리스토프 그레인저-헤어. [사진 IWC 샤프하우젠]


- 올해 IWC는 포르투기저 컬렉션에 집중했다.
“포르투기저 는 IWC의 DNA이자 브랜드를 지탱하는 중요한 컬렉션이다. 엔지니어링 방식을 도입한 IWC 시계 제작 정체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포르투기저는 드레스 워치의 표본이다. 동시에 툴(tool) 워치다. 항해용 정밀 시계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만큼 다양한 기능을 탑재했다. 사용도 간편하고 착용감이 좋다. 그래서 데일리 워치로 사랑받는다. 우리는 이 컬렉션의 화려한 역사에 기대지 않고 시계를 계속 진화시키고 있다. 이번 포르투기저 이터널 캘린더 워치가 그 결과물이다.”

옵시디언 다이얼 컬러로 만든 포르투기저 오토매틱 워치. [사진 IWC 샤프하우젠]


- ‘스펙’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3999년까지 날짜 수정이 필요 없는 ‘세큘러 캘린더’ 메커니즘은 시계 역사에서 처음이다. 보통의 퍼페추얼 캘린더가 2100년까지 날짜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수치다. 단 3개의 기어트레인을 추가해 이를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IWC가 추구하는 시계 공학 정신을 느낄 수 있다. 놀라운 점은 또 있다. 문페이즈의 오차가 4500만년에 단 하루란 사실이다. 광학 리소그래피라고 불리는 컴퓨터 칩 제조 기술을 활용했다. 기존 시계 부품을 만드는 기계로는 가공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아날로그 제품인 기계식 시계를 만들었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무척 흥미롭다.”

- 윤년 계산을 위해 400년에 한 번 회전하는 기어를 개발했다.
“기존 퍼페추얼 캘린더의 윤년 관련 휠은 4년에 한 번 회전한다. 하지만 이 시계에 탑재된 휠의 회전 주기는 400년이다. 1년에 움직이는 각도가 1도가 채 되지 않는다. 제조 과정에서 엄청난 정확성이 필요하다. 말 그대로 ‘극단적’ 기어다. 완성까지 8년이 걸렸다.”

- 돔 형태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를 포함해 포르투기저 디자인에 변화가 있다.
“베젤을 없애고 더블 박스 글라스를 장착했다. 덕분에 시계의 모습이 더욱 입체적이 됐다. 우리는 포르투기저 컬렉션 전체 디자인을 바꾸는 대신 세부적인 요소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매만졌다. 작은 변화가 모여 결과적으로 큰 변화를 끌어낸 게 이번 디자인의 특징이다.”

포르투기저 퍼페추얼 캘린더 44 옵시디언 다이얼 버전. [사진 IWC 샤프하우젠]


- IWC가 퍼페추얼 캘린더 워치의 대표 주자가 된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제작자 입장에서는 창의적인 데다 복잡해 만들기 어렵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쉽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작이 간편하고, 매일 착용할 수 있는 퍼페추얼 캘린더 워치를 선보이는 것이 우리의 강점이다.”

- IWC에 한국은 어떠한 시장인가.
“제품을 개발할 때 늘 주목하는 시장이다. 우리는 한국에서 다양한 이벤트를 벌인다. 주기적으로 팝업 매장을 여는 것은 물론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에 ‘빅 파일럿’ 커피 바를 상설 운영한다. 나는 한국 고객의 스타일에 늘 감탄하곤 한다. 언젠가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어 IWC의 풍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다.”

워치스앤원더스 시계 박람회 내 IWC 부스 전경. [사진 IWC 샤프하우젠]


- 7년째 IWC를 이끌고 있다.
“탑건 라인을 통해 파일럿 컬렉션을 재정비하고, 포르투기저를 통해 엔지니어링 브랜드로서 DNA를 공고하게 다져왔다. 통합 매뉴팩처 브랜드로서 스포츠 시계와 드레스 시계가 균형을 이룬 제품을 지속해 선보이고 싶다. 지난 150년 이상 쌓아온 시계 엔지니어링을 기반으로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힘을 보여주려 한다.”

이현상 기자 lee.hyunsa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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