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테러 겪은 뒤 중도의 길…종부세 완화론, 그래서 나왔다" [더 인터뷰 -이재명 멘토 이한주]
더 인터뷰 - 이재명의 멘토 이한주 민주연구원장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멘토이자 책사(策士)로 불리는 이한주(68·사진) 민주연구원장의 말이다. 이 원장은 정치권에서 이 대표의 생각을 가장 잘 꿰뚫고 있는 인사다. 이 원장은 경원대(현 가천대) 교수 시절인 1986년 성남 지역 시민단체 토론회에서 22세의 청년 이재명을 처음 만났다.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 대표가 학생운동을 하던 이 원장의 제자들을 무료 변론해 주고, 이 원장도 이 대표에게 여러 조언을 해주면서 인연이 38년간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뒤 이 대표가 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을 이 원장에게 맡긴 것은 2027년 대선을 겨냥한 장기 포석이다. 캐스팅 보트를 쥔 중도층 공략을 강화하겠단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이 원장 취임후 민주당에서 종부세 완화론이 제기된 건 우연이 아니다.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민주연구원 사무실에서 이 원장을 만나 정책 구상을 들어봤다. 이 원장은 조근조근한 어조에 전형적인 학자풍 분위기였다. 그에 따르면 자신은 뭐든지 천천히 하고 두세 번 따져보는데 이 대표는 후다닥 추진하는 스타일이라 성격은 많이 다르다고 한다. 대신 “이념적이라기보단 실용적인 사고를 한다는 점과 불공정한 기득권에 대한 문제의식이 서로 닮았다”고 평가했다. 그에게 현안부터 물어봤다.
“이재명, 후다닥 추진 스타일…25만원 차등지원도 즉각 수용”
Q : 대통령실 성태윤 정책실장이 지난 16일 초고가 1주택과 가액 총합이 매우 큰 다주택 보유자에게만 종부세를 매겨 사실상 종부세를 전면 폐지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는데.
A : “우리가 충분히 협의할 수 있는 내용이다. 평생 건실히 살아오면서 서울에 아파트 한 채 장만했는데 갑자기 집값이 뛰면서 종부세 대상이 된 분이 많다. 특히 은퇴하고 연세 드신 분들이 종부세 때문에 고충이 컸다. 1주택자에 대한 종부세는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이 맞다고 본다. 다만 전면 폐지는 안 된다. 세목을 한 번 없애면 나중에 필요해져도 되살리기가 굉장히 어렵다.”
Q : 성 실장은 상속세도 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을 고려해 최고 30% 수준까지 대폭 인하하자고 했다.
A : “상속세 인하는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 이미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있어서 중소기업의 상속세 부담을 확 줄여주고 있다. 소득세가 소득 불평등 해소를 위한 것이라면 상속세는 ‘누적된 소득세’라는 관점으로 봐야 한다. 평생에 걸친 불평등 해소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통계를 봤더니 지난해에 37만 명이 사망했는데 그중에서 4%만 상속세 대상이었다. 4%면 사회의 최상층인데 이들을 위해 상속세를 낮추는 건 곤란하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계속 부자감세를 추진했는데 그 결과 지난해 세수가 56조원이나 부족했다. 올해도 30조원 가까이 펑크가 날 것 같다. 이렇게 되면 고소득층보단 저소득층이, 수도권보다 지방이 훨씬 힘들어진다. 세수 기반을 줄이면 반드시 후회한다. 이명박 정부가 감세를 많이 하는 바람에 박근혜 정부가 세금을 올리느라 얼마나 애먹었나.”
이 원장은 이재명 성남시장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무상복지 시리즈를 설계한 당사자다. 그에게 “여전히 무상복지의 방향이 유효하다고 보냐”고 물었다. 그는 성남시에서 도입한 청년배당·지역화폐 정책 등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당시 조사해 보니 일부 부작용이 있어도 재래시장 활성화 같은 긍정적 효과가 압도적이었다. 어떤 이들은 왜 재정으로 민간 시장을 움직이냐고 비판하던데, 그럼 재정으로 민간 시장을 안 움직인 나라가 하나라도 있나.”
그러나 이 대표의 활동 범위가 성남시에서 경기도·전국으로 확대되면서 이 원장의 고민이 깊어졌다. 당연히 예산 문제 때문이다. 특히 캠프에서 기본소득과 관련한 논쟁이 많았다고 한다.
■ 22세 이재명과 60세 이재명 대표
「 불공정에 분노하던 청년, 시각 달라져
정치하며 세상은 이분법 아니다 깨달아
내가 중도 이끈게 아니라 본인이 변해
」
“재정이 현실적으로 아주 심각한 제약 요인으로 작용한다. 기본소득은 조금만 높여도 막대한 재정이 들어간다. 사실 지난 대선 때 나는 기본소득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이었다. 기본소득보다 더욱 시급한 것들이 있다고 봤다. 그래서 기본 난방비나 기본 금융, 기본 주택 같은 걸 묶어서 ‘기본 서비스’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Q : 결국 과거에 비해 무상복지나 기본소득에 대한 견해가 약화된 것인가.
A : “약화가 아니라 발전됐다고 표현하는 게 좋을 것 같다.”
Q : 이 대표가 총선 공약으로 전 국민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지급을 제시했는데 지난 5월 “동일 지급이 어렵다면 차등 지원도 수용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배경이 뭔가.
A : “정부는 인플레 우려를 들어 민생지원금에 반대했는데 사실 민생지원금 13조원을 갖고 인플레는 안 생긴다. 결국 자신들이 야당의 ‘보편복지’ 논리에 끌려가는 인상을 주는 게 싫으니까 반대한 거라고 봤다. 그래서 내가 ‘그러면 보편 지원 원칙을 풀어 주자’고 했다. 일단 일부라도 지원하는 게 중요하니까. 그런데도 정부가 안 한다. 아무리 좋은 것도 상대방이 얘기하면 싫어하는 게 정치권의 속성인 것 같다. 나는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지 당 최고위에서도 항상 ‘여당이 말하는 것도 좋은 것이라면 잘했다고 박수치고 그냥 받아버리자’고 얘기한다.”
Q :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나 최저임금 인상은 어떻게 평가하나.
A : “케인스주의의 한 분파에 속했던 칼레츠키라는 경제학자가 ‘임금 상승→소비 증가→생산 증대→투자 확대’라는 연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임금을 높이는 게 성장의 한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명칭은 마치 임금을 올리는 것만이 유일한 성장 요인이라는 오해를 불러왔다. 게다가 최저임금을 올리는 속도도 과속한 측면이 있다. 경제는 모델대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정책을 추진할 때는 어두운 밤길에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 것처럼 이리저리 잘 재면서 나아가야지 한꺼번에 확 밀어붙이면 안 된다.”
이 원장은 인터뷰 도중 간간이 ‘대표’라는 직함을 빼고 ‘이재명’이란 이름 석 자만 부르곤 했다. 그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 건 그만큼 두 사람의 관계가 오래됐기 때문일 것이다. 이 원장이 보는 ‘이재명’은 어떤 사람일까.
“이재명은 삶의 불공정에 대한 분노로부터 자기 삶을 시작한 사람이다. 내가 옆에서 봐서 생생히 기억한다. 20대 초반 젊은이들의 속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변호사가 되고 나서 돈을 많이 벌어 자기 식구들 챙기자는 게 아니라 어려운 이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각성의 계기가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정치를 한다길래 나는 진보정당을 추천했는데 이재명은 ‘거기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에 가겠다고 하더라. 이후 정치 경험이 쌓이면서 세상이 꼭 기득권과 소외계층의 이분법으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 사고가 유연해진 거다. 특히 올 초 테러 사건이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내가 정책 노선을 중도로 이끄는 게 아니라 이 대표 본인이 바뀌는 거다.”
Q : 이 대표가 과거와 달라졌다는 실례가 있다면?
A : “야당 입장에선 인기 없는 국민연금 개혁안에 협조하는 건 정치적으로 손해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과감히 소득대체율 44%와 보험요율 13% 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히지 않았나. 당시 당 회의 때 나는 미리 알고 있었지만 몰랐던 다른 참석자들은 이 대표 얘기를 듣고 다들 깜짝 놀랐다. 보수 진영은 물론이고 진보 진영도 우리가 소득대체율 50%에서 물러섰다고 불만이 대단했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국민연금 개혁 같은 사안은 정부와 협조하는 게 대승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쯤에서 이 대표의 아픈 대목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사법리스크 문제다.
Q :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A : “당연히 리스크가 있다. 재판이 하나가 더 늘어 네 개가 됐다. 거기다 부인 것까지 있다. 그래도 내가 확실히 믿는 것은 이재명이 누구한테도 돈을 받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돈을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재명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주지 말고 받지 않는 게 자신을 지키는 길이라는 것을 이재명은 너무나 잘 안다. 검찰이 아무리 뒤져도 직접 돈을 받은 증거가 안 나오니 죄다 주변에서 일어난 사소한 것들을 부풀리는 것 아니겠나.”
■ 이재명 사법리스크, 어떻게 보나
「 재판 4개 있지만 사소한 일 부풀린 것
경기동부연합과 관계는 완전히 오해
민생 영역, 여야 대화·타협 여지 있다
」
Q : 보수 진영에선 이 대표가 경기동부연합 인사들이랑 가깝다는 점을 수상쩍게 생각한다.
A : “그건 완전히 오해다. 경기동부는 자기들끼리 결속력이 무지 강한데 지금 이 대표 주변에 경기동부 출신이 누가 있나. 정진상·김용은 그쪽과 계열이 다르다. 이 대표가 이석기 전 의원은 만나는 걸 본 적이 없다. 김미희 전 의원도 과거에 일을 같이한 적은 있지만 지금은 정리가 됐다. 이 대표가 경기동부의 감수성을 그대로 받았으면 지금과 전혀 다른 인물이 됐을 거다. 그런 면에서 언젠가 이 대표가 나를 고마워할 수도 있을 것 같다(자신이 이 대표가 경기동부로 쏠리지 않게 조언을 했다는 뉘앙스).”
이 원장은 여야 협치의 한 방식으로 민주연구원과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공동연구 작업을 제안하고 싶다고 했다. 연금·저출산·국가균형발전·탄소중립·교육개혁 등의 과제는 보수와 진보의 진영 논리를 초월한 국가의 장기 과제라는 것이다. 좋은 생각이지만 지금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유죄판결을 촉구하고 있고,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거론하는 마당에 너무 이상적인 얘기 아닐까. “서로 싸우는 영역이야 어쩔 수 없어도 민생의 영역은 얼마든지 대화와 타협의 여지가 있다”는 게 그의 답변이다.
■ 이한주는 누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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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과 38년된 인연…3대 무상정책 설계자
이한주 원장은 경복고 졸업 뒤인 1975년 서울대에 입학해 생물학을 전공했다.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됐던 그해, 이 원장은 고심 끝에 학생운동과 다소 거리를 두기로 했다.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종손이라 감옥에 갈 형편이 안 됐고, 대신 공부해서 사회에 기여하고 싶었다”고 했다.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으로 택한 것은 경제학이었다.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노동경제학을 전공했다. 85년 경원대(현 가천대)에서 강사를 하던 시절 제자였던 송광영씨의 분신 투쟁에 충격을 받아 유학을 포기하고 성남 지역 시민사회운동에 깊이 관여하게 됐다.
이 원장은 이재명 대표의 경기지사 시절엔 경기연구원장을 맡아 청년배당, 무상 산후조리, 무상 교복 지원 등 ‘3대 무상 정책’을 설계했다. 2021년에는 대선캠프에서 정책위원장을 맡아 이 대표의 정책 멘토 역할을 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뒤 민주연구원장에 임명됐다. 정계를 떠난 뒤 수목원을 경영하는 게 인생의 목표라고 한다.
」
김정하 논설위원, 손국희 기자 wormh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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