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민경배 (15) 평생 57권 저서… 기독교서회 저술상·용재학술상 등 수상

손동준 2024. 6. 21.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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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68년 기독교서회의 현대신서 총서에 '한국의 기독교회사'를 저술, 간행했다.

이후 계속해서 한국교회사 자료를 수집하고 밤낮없이 집필해 2년 반 만인 1972년 3월 '한국 기독교회사'를 기독교서회에서 간행할 수 있었다.

내가 쓴 현대신서 총서의 '한국의 기독교회사'는 1974년 처음으로 일본어로 번역됐고 '한국 기독교회사' 역시 1981년 도쿄의 신교출판사에서 번역 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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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한국의 기독교회사’ 간행 후
한국교회사 자료 수집, 밤낮없이 집필
1972년 ‘한국기독교회사’ 간행
민경배(오른쪽) 박사가 2005년 연세대 국학연구원으로부터 용재학술상을 받는 모습. 민 박사 제공


나는 1968년 기독교서회의 현대신서 총서에 ‘한국의 기독교회사’를 저술, 간행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학술적·역사적으로 제대로 쓴 저서라 여긴다. 이 책은 문고판으로 출간됐고 이상규 안준배 박사가 대단한 영향을 받았다고 공개한 바 있다. 이후 계속해서 한국교회사 자료를 수집하고 밤낮없이 집필해 2년 반 만인 1972년 3월 ‘한국 기독교회사’를 기독교서회에서 간행할 수 있었다.

나는 평생 57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1975년 5월 연세대학교 학술상, 6월엔 기독교서회 저술상, 2005년 3월 9일 제11회 용재학술상을 받았다. ‘한국 기독교회사’는 나의 주저이며 나의 역사방법론의 대본이라 할 수 있다. 백낙준 박사의 ‘한국개신교사’는 1920년대 중반 미국 예일대 박사 학위 논문으로 제출된 것으로 1910년까지의 미국의 한국 선교 역사를 정확하고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나의 ‘한국 기독교회사’는 1972년 출간돼 당시까지의 한국교회 역사를 통괄한 저서다. 시대적으로는 한국교회 역사를 총괄했다. 이는 획기적인 저서이며 통사적이고 민족 교회사로서의 체계를 갖추었기 때문에 신학대학교와 일반 대중에게 많이 읽혔다. 국내 여러 주요 언론에서도 기사화됐다. 책은 4차례에 걸쳐 개정판을 냈으며 4판부터는 연세대 출판부에서 간행하기 시작했다.

내가 쓴 현대신서 총서의 ‘한국의 기독교회사’는 1974년 처음으로 일본어로 번역됐고 ‘한국 기독교회사’ 역시 1981년 도쿄의 신교출판사에서 번역 간행됐다. 2005년에는 연세대 출판부에서 영어로 출판되기도 했다. 또한 나의 ‘순교자 주기철 목사’는 1989년 일본에서 번역 출간됐고 1981년 1월에는 도쿄의 교문관에서 ‘아시아 기독교사-중국, 대만, 한국, 일본’이 간행됐다. 이 책은 일본의 도히 아키오 교수와 나, 그리고 중국과 대만의 교회 사학자가 공동 집필한 것이다.

나는 1970년 여름 영국 런던대학교에서 돌아오자 곧 한국 기독교회사 집필을 시작했다. 연희동 172번지의 단층집에서의 일이었다. 당시에는 컴퓨터가 없었다. 200자 원고지에 철필로 잉크를 찍어 글을 썼다. 다 쓰고 나니 원고가 약 50㎝ 높이였다. 아침 낮 밤의 강행군이었다. 이 작업은 1년 반 동안 진행됐다. 이 시기 내가 느낀 고통과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글을 쓰다가 각주 하나가 틀리거나 보충하려면 한 페이지씩 다 돌아가서 고쳐야 했던 일이다. 때로는 수십 페이지를 거슬러 다시 써 내려가야 했다. 컴퓨터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그때 사람들은 절실하게 느낀다. 컴퓨터에서는 그냥 고치면 자동으로 정리된다. 이전에는 복사나 옮겨 쓰는 작업도 글자 하나하나 그대로 써 내려가야 했다.

글을 쓰는 동안 자그마한 집에서 방해될 세라 자녀들도 아주 조용히 해주었다. 그들의 배려가 큰 도움이 됐다. 1년 반이 꿈처럼 지나갔다. 글쓰기를 마치는 날 온 집안이 환호하며 나를 반겨줬다. 당시 아들은 15살, 첫째 딸은 13살, 둘째 딸은 9살이었다.

정리=손동준 기자 sd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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