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AI, 피할 수 없는 미래
이번엔 인공지능이 불러올 에너지·제조업·의학 혁명 예측
불과 10년 안에 벌어질 거라는 이 거대한 변화를 코앞에 두고
석유 정쟁·의료 파업 매몰된 우리 현실이 더 SF처럼 보인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의 책 ‘특이점이 온다’는 인공지능(AI) 업계가 혹독한 겨울을 보내던 2005년 출간됐다. AI 개발이 난관에 봉착해 실망한 투자자들이 떠나갈 때, 그는 거꾸로 “2029년이면 AI가 인간 지능에 도달하고(AGI·범용인공지능) 2045년에는 인류의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이 온다”고 했다. 많은 이들이 소설 같은 얘기라 여겼던 예측은 지금 착착 현실이 돼가는 중이다. 오픈AI가 목표로 내건 AGI 개발은 이제 시간문제가 됐으며, 예상 시점도 계속 앞당겨지고 있다(일론 머스크는 당장 내년에 AGI가 등장할 거라 했다).
컴퓨터가 체스에서 인간을 이긴다는 전망부터 스마트폰 가상현실 증강현실의 대중화까지 그가 내놨던 미래 예측 147건 중 86%가 현실이 됐다고 한다. 높은 적중률, 특히 AI 기술의 정확한 예견은 다음 주 출간될 그의 새 책 ‘특이점이 더 가까워졌다’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제목이 말해주듯 2005년 저서의 후속작인 이 책은 AI 업계의 주목 속에 벌써 내용이 꽤 알려졌는데, 인공지능이 인간의 현실 세계를 어떻게 바꿀지 내다보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세 분야가 가장 크게 바뀐다고 봤다. ①에너지 ②제조업 ③의학.
먼저 값싸고 무궁한 태양광 에너지 시대가 열릴 거라고 예상했다. 지구에 도달하는 햇빛의 0.01%만 전력화해도 인류 전체가 쓰고 남지만, 아직 그러지 못하는 건 태양광 발전이 화석연료보다 너무 비싼 데다 저장을 위한 배터리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발전 단가를 낮추고 배터리 성능을 높이려면 최적의 화학물질과 화학공식을 찾아내야 하는데, 무수한 조합을 일일이 검증해야 해서 과학자들의 작업은 더디게 진행돼 왔다. 이런 시뮬레이션을 하루아침에 해내는 고도의 AI가 등장하면 태양광 에너지 혁명이 일어나리란 것이다.
그렇게 확보된 값싼 에너지가 제조업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거라고 전망했다. 제조업 생산에는 에너지·노동력·원료가 필요한데, 각각의 비용이 인공지능을 통해 획기적으로 낮아진다는 뜻이다. 먼저 태양광 혁명에 에너지 비용이 크게 줄어들고, AI와 결합한 로봇에 노동 비용이 낮아지고, AI를 활용한 저비용 원료 채굴과 희소 원료 대체재 발굴이 본격화하면 원료비도 급감한다. 이런 제조업 혁명은 지금 엄청나게 비싼 엔비디아 반도체를 비롯해 첨단 컴퓨팅 비용 역시 크게 낮출 것이며, 그래서 인공지능이 더욱 고도화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적용될 분야는 의학이라고 봤다.
인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확히 모르는 인간의 의학은 변수를 다 통제하지 못해 약품마다 부작용이 있고 약효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AI로 가능해질 분자 바이오 시뮬레이션은 인체와 약물의 작용을 정밀하게 모델링해 내게 필요한 최적의 약품을 빠르게 찾아내는 시대를 열어줄 거라고 한다. 특정한 ‘병’을 치료하는 수준을 넘어 병에 걸린 ‘나’를 치료하는 맞춤형 의료의 세상은 수명에 대한 우리 상식을 바꿔놓을 수 있다. 커즈와일은 2029~2035년에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 예측했다.
아무리 적중률이 높다 해도 어디까지나 예측일 뿐이고, 다소 급진적인 AI 낙관론자의 생각이니 당연히 걸러 들어야 한다. 그와 반대로 디스토피아를 경고하는 비관적 전망도 제프리 힌턴을 비롯해 저명한 학자들에게서 숱하게 제기됐다. 그럼에도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커즈와일이 그리 먼 미래를 말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에너지 혁명과 제조업 혁명을 거쳐 인간 수명을 바꾸는 의학 혁명까지 앞으로 10년 안에 벌어지리라 보고 있다. 2005년 예측은 20년, 40년 뒤를 말한 거였는데, 2024년의 예측은 불과 10년 뒤에 포커스를 맞췄다.
챗GPT가 등장한 지 고작 1년 반 만에 엔비디아가 시총 1위에 오르는 모습은 유토피아든 디스토피아든 결코 먼 훗날의 얘기가 아님을 불현듯 깨닫게 한다. AI가 불러올 문명의 대전환은 변화의 내용보다 가공할 속도가 더 충격적인데, 이렇게 거대한 변화를 코앞에 둔 우리의 모습이 더욱 놀랍다. 태양광 에너지 혁명을 예상하는 시점에 채굴하게 될 동해의 석유가 진짜냐 아니냐를 놓고 정쟁이 벌어지고, 의학 혁명이 일어난다는 시점에 배출될 의사 수를 놓고 몇 달째 의료 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SF 소설 같던 얘기가 점점 현실이 돼가니, 기존 사고에 갇혀 아웅다웅하는 우리 현실이 오히려 초현실적인 소설처럼 보인다. AI, 피할 수 없는 미래이자 당면한 현실이 됐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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