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취지 전달됐으니 서울대병원 휴진 멈추길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17일부터 휴진을 강행했다. 미복귀 또는 사직하는 전공의가 향후에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이유를 들면서 비대위는 정부에 진료 유지 명령 철회가 아닌 명령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 이후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난 전공의의 일부라도 돌아올 수 있도록 사직 처리를 해달라는 게 그동안 의료계의 요구였다. 이에 정부가 한발 물러서 사직 처리 금지를 철회하면서 전공의들의 출구가 열리는 듯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18일 하루 휴진을 강행하고 오는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을 예고한 상태다. 안타깝게도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한 ‘휴진 도미노’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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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진, 환자생명 위협·신뢰 하락
상급종합병원 정립 방향성 옳아
정부도 전공의 제재 풀고 대화를
」
최고의 의료계 전문가 집단을 자부해온 서울의대 비대위가 무기한 휴진이라는 초강수를 쓰며 정부를 압박하는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먼저, 전공의 보호가 중요하지만, 정부도 한발 물러선 마당에 서로 신의의 원칙 아래 잘 조율하면 될 일을 무기한 휴진까지 할 정도인지 의문이다. 비대위가 얻고자 하는 성과에 비해 환자 생명 위협과 사회적 신뢰 하락 등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공의 보호와는 당장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의협이 뒤이어 휴진을 선언함에 따라 서울의대 비대위의 취지 자체가 무색해졌다. 의협은 이제껏 전공의를 앞세워 정부를 압박하다가 전공의 사직이 허용되자 휴진을 결의해 이슈를 재점화하려는 모양새다. 의협과 서울의대 비대위가 나란히 휴진하는 모양이 됨으로써 의도와는 달리 서울의대 비대위의 목적이 퇴색하고 말았다.
이번 무기한 휴진 결정의 배경에는 사직 처리 금지에 따라 의사들의 직업 선택 자유가 침해당했다는 인식이 있는 듯하다. 의사든 누구든 당연히 헌법이 보장한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 하지만 생명을 다루는 의업(醫業)의 특수성 때문에 아무나 의료 제공자가 될 수 없도록 정부가 면허를 부여하고, 반대급부로 ‘국민 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정부가 의료진에 진료 유지를 명령할 수 있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다.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을 막기 위해 발동한 정부의 사직 처리 금지 명령이 의사들을 믿지 못해 내린 성급한 결정이었다고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명령이 의사들의 자기 결정권을 부정하는 조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의사 면허에는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무가 따르기 때문이다.
서울의대 비대위의 설명 중에 이제부터 경증 환자들을 보지 않고 중증 및 희귀 질환 환자 중심으로 진료하는 상급종합병원의 면모를 되찾겠다는 긍정적인 면이 엿보인다. 그동안 경증 환자들의 대학병원 과다 이용, 그것도 응급실을 경유함으로써 정말 응급한 환자의 치료 기회를 박탈하는 왜곡된 의료 이용 문화가 만연해 있다.
그동안 정부가 엄두도 내지 못했던 고질적 문제를 서울대병원 의사들이 바꾸려고 시도하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기에 무기한 휴진보다 ‘진료 체계 정상화’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진정으로 의료 이용 체계를 바꾸는 ‘나비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의협을 비롯해 다른 대학병원까지 줄줄이 휴진을 예고해 직접적 피해자인 환자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서울의대 비대위에서 무기한 휴진과 1주일 휴진을 놓고 의견이 나뉘는 듯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서울대병원의 휴진은 짧을수록 좋다. 휴진을 통해 사회를 향해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미 전달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울의대 비대위 휴진이 명분 없는 의협 휴진과 겹쳐지면 좋은 의도마저 퇴색될 것이다. 이번 휴진을 통해 모색하고자 했던 진정한 상급종합병원의 면모를 앞으로도 유지한다면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지닌 서울대병원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쌓일 것이다.
의료계 휴진에 강력한 대응을 예고한 정부도 대화에 나서야 한다. 복귀 여부를 떠나 모든 전공의에 대한 제재를 푸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수련을 포기하고 사직하는 것까지 막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이번 휴진이 오히려 의·정 갈등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고 진정한 의료 개혁을 향한 시발점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태진 서울대 보건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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