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의 시선]석유는 머릿속에서 먼저 발견된다

김원배 2024. 6. 2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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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 논설위원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7년 2월 정부는 보도자료를 낸다. 호주 우드사이드사와의 계약에 따라 동해 심해에 대한 조광권 계약을 하고 탐사에 착수한다는 내용이다. 석유공사와의 지분은 50대 50, 석유나 천연가스가 발견되면 채취권을 가지며 정부는 조광료 수입을 얻는 조건이다. 현 해저광물자원개발법 시행령에 따르면 조광료율은 3~12%로 생산량에 따라 높아지는 구조다.

만약 천연가스나 석유가 대규모로 발견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드사이드의 몫이 과다하며 국부 유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우드사이드는 2019년 계약을 연장하고 탐사에 공들였지만 중도에 철수했다. 우드사이드가 실패했는데 왜 또 하느냐고 한다. 하지만 큰 회사라고 항상 옳은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다.

비토르 아브레우 미국 액트지오사 고문이 지난 7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기자실에서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관련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뉴스1

석유 메이저 업체로 한때 우드사이드 지분도 갖고 있었던 셸은 엑손모빌과 50대 50으로 가이아나 유전 개발을 했지만, 2014년 손을 뗐다. 육상과 대륙붕에서 여러 번 시도했지만 실패하는 등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반면 엑손모빌은 이듬해인 2015년 첫 번째 심해 시추에서 대박을 터뜨린다. 당시 개발에 참여한 사람이 액트지오의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이다. 그는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첫 번째 가이아나 시추에서 40억 배럴의 매장량을 확인했는데 두 번째 시추에선 아무것도 안 나왔다. 물리탐사에선 똑같아 보였는데 하나는 40억 배럴이고 하나는 아예 없었다”라고 말했다. 석유 탐사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동해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계속 논란이다. 세금 체납 등 액트지오 선정을 둘러싼 이런저런 의혹이 있다. 지난 7일 아브레우 고문의 기자회견 후 더불어민주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마치 가짜약을 파는 약장수 같다는 의구심만 더 강해졌다”고 비판했다.

「 유망구조 시추 놓고 논란 증폭
1차 시추 보고 차분히 진행해야
근해 탐사·시추 경험 축적 필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첫 국정브리핑을 통해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뉴스1

최근 갤럽 여론 조사를 보면 동해 석유 가스 매장과 관련한 정부 발표에 대해 60%가 믿지 못한다는 답변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을 통해 최대 140억 배럴의 매장 가능성을 얘기하면서 판이 커졌다. 보다 신중하게 발표했어야 한다. 여러 보도를 종합해 보면 액트지오란 ‘회사’를 의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아브레우 고문의 경력을 볼 때 그를 ‘가짜약 파는 약장수’라고 깎아내리는 건 온당한 일이 아니다.

정부와 석유공사가 신뢰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 되니 이름 있는 해외투자자 유치가 중요해졌다. 김동섭 석유공사 사장은 19일 브리핑에서 5개 주요 석유업체가 관심을 보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급하면 그르친다. 우리가 급하다는 것을 알면 상대는 자신에게 더 유리한 조건을 내세울 것이다. 민주당이 액트지오 선정을 검증하고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문제를 좀 더 넓고 길게 볼 필요가 있다.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지난 1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동해 심해 석유·가스전 개발 관련 해외 기업 투자 유치 진행 현황 브리핑을 진행하며 5개 주요 석유업체가 관심을 보였다고 밝혔다. 뉴스1

석유공사는 지난달 시추선 사용 계약을 했다고 한다. 1차 시추가 중요하다. 업계 기준으로 충분히 파 볼만하다는 것이지 경제성 있는 석유가 나올 확률이 높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하지만 석유 탐사란 그런 가능성에 도전하는 사업이다. 미국의 지질학자 월리스 프랫은 1952년 ‘석유 탐사의 철학을 향하여’라는 논문의 초록에서 이렇게 밝혔다. 석유업계에선 자주 인용되는 말이라고 한다.

“완벽한 방법론 및 기술의 결핍보다 석유 탐사 성공에 더 큰 장애물이 있다. 훈련받은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보수성,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의 중요성을 무시하거나 평가절하하는 인간의 경향이다. (…) 실제로 유전이 발견되는 곳은 사람의 생각 속(in the minds)에서다.”

최신 인공지능(AI) 모델인 ‘챗GPT-4o’에 의미를 물었더니 이런 답이 나왔다.
“석유 탐사는 단순히 땅을 파서 석유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지질학적 지식과 과학적 분석, 그리고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합니다. 프랫은 석유가 지하에 실제로 존재하기 전에 먼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 존재 가능성을 상상하고, 이론적으로 추론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

이 말은 꼭 석유 사업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상상하지 않고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이뤄진다. 석유공사가 해외 유전 사업에서 큰 손실을 봤기 때문에 신뢰가 덜 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반도 주변 바다의 석유 탐사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중국,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많이 탐사하고 시추했다. 석유 매장 가능성이 언급되는 남해 7광구만 해도 한·중·일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석유공사가 우리 앞바다에서 정밀 탐사와 시추 경험을 쌓아가는 것도 꼭 필요하다.

김원배 논설위원 oneb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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