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가 현실로…‘차이나테크’의 역습
中 과학 기술 수준, 한국 이미 추월
중국의 최첨단 기술인 ‘차이나테크’ 공습이 현실화되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으로 미국이 대(對)중국 제재를 강화하자 중국은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았다. 정부뿐 아니라 산업계, 학계가 똘똘 뭉쳐 첨단 산업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데 힘을 쏟았다. 덕분에 전기차,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주요 제조업에서 중국 독주 시대가 열렸고, 로봇·자율주행·수소 등 미래 산업에서도 중국은 미국 못지않은 강대국으로 올라섰다. 오랜 기간 중국 첨단 기술을 한 수 아래로 치부해왔던 우리나라는 비상이 걸렸다. 한국 주력 산업이 중국의 핵심 타깃이 된 탓이다. 중국에 추월당할 위기에 놓인 기업마다 자존심을 버리고 ‘중국 따라 하기’에 나설 정도다. 제조업 강대국으로 불려온 대한민국은 ‘차이나테크’를 순탄하게 이겨낼 수 있을까.
국내 기업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값싼 인건비를 앞세워 노동집약형 산업을 키워왔던 중국이 180도 달라졌다. 정부 주도로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해 각종 첨단 산업을 집중 육성하면서 ‘차이나테크 굴기’를 외치고 있다.
이미 한국 과학 기술 수준이 중국에 추월당했다는 통계까지 나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기술 수준 평가 결과(2022년 기준)’에 따르면 국가별 기술 수준은 1위인 미국을 100%로 봤을 때 유럽연합(EU) 94.7%, 일본 86.4%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81.5%로 이들 국가에 한참 밀릴 뿐 아니라 중국(82.6%)조차 뛰어넘지 못했다. 이 조사는 정보통신기술(ICT)·소프트웨어(SW), 기계·제조, 우주·항공 등 11대 분야 136개 기술을 대상으로 평가한 결과다.
중국이 우리나라를 앞지른 데는 이유가 있다. ICT·SW 분야에서 중국의 기술 수준은 2012년 67.5% 수준이었지만 2022년 87.9%로 큰 폭의 성장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한국은 82.2%에서 82.6%로 0.4%포인트 성장하는 데 그쳤다.
이뿐 아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디스플레이, 수소 등 국가전략기술 분야 세부 평가에서도 중국은 86.5%를 기록해 일본(85.2%), 한국(81.7%)을 뛰어넘었다. 한국은 2차전지 분야에서만 세계 최고 수준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돼 기대에 못 미쳤다.
그나마 자존심을 세운 2차전지 산업에서도 한국 위상은 불안하기만 하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1~4월 중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에서 판매한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에서 중국 CATL이 1위에 올랐다. 이 기간 점유율이 27.4%로 LG에너지솔루션(25.7%), 삼성SDI(10.8%), SK온(10.2%)을 가뿐히 제쳤다. 중국 기업이 강세를 보이는 중국 내수 시장까지 포함하면 국내 배터리 업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진다.
중국산 배터리가 약진하는 것은 가성비를 앞세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가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몰이 중이기 때문이다. LFP 배터리는 국내 배터리 업계가 주력해온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낮고, 주행 거리는 짧지만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테슬라, 메르세데스-벤츠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저가형 모델에 잇따라 LFP 배터리를 채택하는 모습이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도 중국 기업 약진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중국 전기차 업체 BYD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20.5%로 미국 테슬라(12.9%)를 제치고 독보적인 1위로 올라섰다.
전기차, 배터리뿐 아니라 스마트폰 시장도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 중국 휴대폰 업체 화웨이는 올 1분기 세계 폴더블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화웨이 점유율은 35%로 삼성전자(23%)보다 10% 이상 높다.
세계를 호령해온 한국 조선업도 불안하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가 유지하던 조선 산업 가치사슬 종합 경쟁력 1위를 지난해 중국에 내줬다”고 밝혔다. 조선업의 가치사슬 경쟁력은 연구개발(R&D)·설계, 조달, 생산, 유지보수(AM)·서비스, 수요 등 5개 분야를 평가한 뒤 종합 점수를 산출하는 방식으로 추정됐다. 한국의 지난해 종합 점수는 88.9로 중국(90.6)에 이은 2위에 그쳤다. 일본(83.1), 유럽연합(71.4)이 뒤를 이었다. 2020년 이후 한국이 줄곧 1위를 지켰지만 결국 추월당했다. 한국은 R&D·설계와 조달에서만 경쟁력 우위를 보였을 뿐 생산과 유지보수·서비스, 수요 측면에선 중국의 경쟁력이 월등히 높았다.
이대로 가면 한국을 먹여살린 반도체 산업 주도권마저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국 정부는 최근 3440억위안(약 64조6720억원) 규모 세 번째 반도체 투자기금을 조성했다. 1차 1400억위안(약 26조3000억원), 2차 2000억위안(약 37조6000억원)에 이어 반도체 산업 육성에만 무려 128조원 실탄을 쏟아붓는 셈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칩스법’을 통해 반도체 산업에 지원하는 금액(70조원)의 두 배에 달한다. 중국 최대 메모리반도체 업체인 YMTC(양쯔메모리), CXMT(창신메모리)를 비롯해 ‘중국판 TSMC’인 SMIC, ‘중국판 퀄컴’인 시스템온칩 설계사 UNISOC 등이 반도체 굴기를 주도한다.
블룸버그는 “미국, 주요 동맹국과 중국 사이에 반도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중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평가했다.
재계 관계자는 “중국은 이미 범용 반도체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한 만큼 머지않아 한국이 주도해온 D램 시장도 잠식할 우려가 크다”고 전한다.
“한국과 중국의 무역 구조가 보완적 관계를 벗어나 경쟁 관계로 진입하면 국내 산업이 받게 될 충격이 커질 수 있다. 서둘러 차이나 쇼크에 대비해야 한다”는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 의견도 눈길을 끈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4호 (2024.06.19~2024.06.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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