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던 장마 아니다…갑자기 폭우 '도깨비 장마' 온다
19일 늦은 밤 제주도 산지에 올해 첫 장맛비가 내리면서 올해 장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중부 지역은 아직 장맛비 소식이 없지만, 제주도 부근에 형성된 정체전선(장마전선)이 북상하면 중부 지역 장마도 시작될 전망이다.
특히, 기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최근 장마가 점점 과거의 공식을 벗어나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장마는 남쪽의 북태평양기단과 북쪽의 오호츠크해기단이 만나는 자리에 형성된 정체전선이 제주도를 시작으로 남부와 중부 지역을 오르내리며 일정 기간 비를 뿌리는 현상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장맛비가 정체전선보다는 저기압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체전선 부근 저기압의 발달 정도에 따라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 현상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20일 제주도에 호우경보가 내려질 정도로 많은 비를 몰고 온 것도 정체전선 부근에 발달한 저기압의 영향이다. 기상청은 3시간 누적 강우량 90㎜ 이상 또는 12시간 누적 강우량이 180㎜ 이상 내릴 것으로 예상될 때 호우경보를 발표한다. 이날 서귀포에는 오후 5시 기준 시간당 최대 51.8㎜의 폭우가 쏟아졌고, 220.9㎜의 일강수량을 기록했다. 둘 다 역대 6월 중 2위 기록으로, 확률적으로는 80년에 한 번 일어날 정도다. 기상청은 이날 오후 5시부터 21일 새벽까지 5~40㎜의 비가 추가로 내린 뒤 멈출 것으로 예보했다.
우진규 기상청 통보관은 “22일에도 저기압이 북서쪽에서 내려와 정체전선 부근에 접근하는데, 이 저기압의 상태에 따라 남부 지역에 큰 비가 내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공식 깨지며 생긴 ‘도깨비 장마’
이런 특징이 최근 3년 사이 강하게 나타나면서 ‘도깨비 장마’라는 말이 생겼다. 좀처럼 종잡을 수 없이 갑자기 강한 비를 쏟아낸다는 의미에서다. 통상 제주도부터 남부, 중부로 정체전선이 올라오며 순차적으로 장마가 시작된다는 공식도 깨졌다. 지난해에는 전국에서 동시에 장마가 시작됐는데, 이는 정체전선 주위에서 발달한 큰 저기압이 전국에 비를 뿌렸기 때문이다. 강수량도 유달리 많았다. 지난해 중부 지역 장마 기간 강수량은 594.1㎜였는데, 이는 평년(378.3㎜)보다 57%나 많은 양이다. 강수일수(20.6일)를 고려하면 비가 온 날의 하루 평균 강수량은 28.8㎜로 역대 5위 수준이다. 남부 지역은 장마기간 강수량이 712.3㎜로 역대 최고 강수량을 기록했고 하루 평균 강수량(30.7㎜)도 역대 2위에 달했다.
폭우 양상 더 중요…장마보다 우기에 가까워져
장마가 끝난 뒤에 전례없는 폭우가 쏟아져 강남역 침수를 일으킨 2022년도도 마찬가지다. 통상 장마는 오호츠크해기단과 힘겨루기를 하던 북태평양기단이 북상하면서 한반도를 뒤덮으면 끝나고, 한반도 전역이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권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된다. 그런데 2022년에는 7월 25일부로 장마가 끝났는데, 8월 8일 북서쪽에서 내려온 차가운 공기 덩어리와 북태평양기단이 중부 지역에서 만나 일시적으로 강한 정체전선을 형성해 이틀간 비를 마구 쏟아냈다.
이제 한국에서는 장마보다, 동남아시아의 ‘우기’ 개념을 적용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여름철 우기 동안 언제든 강한 폭우가 쏟아질 수 있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손석우 교수는 “2020년에는 중부 지역에 54일이라는 역대 최장기간의 장마가 찾아왔고 2022년과 2023년에는 연달아 수해가 발생했다”며 “과거에 비해 변동성이 확실히 커졌고 장마 기간과 상관 없이 많은 비가 쏟아지는 양상이 더 중요한 특징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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