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협력'으로 쓰고 '위성기술 이전'이라 읽는다…조약문 뜯어보니

정영교, 이유정, 김한솔 2024. 6. 2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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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정상회담 직후 양국 간 조약에 서명한 뒤 악수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서명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은 유사시 '군사 원조 제공'을 포함, 1961년 조·소 상호방위조약 수준으로 양국 관계를 복원하는 동시에 다양한 분야에서의 전방위 협력을 명문화했다. 다만 정상국가 간 협력 강화처럼 규정한 조항들이 사실은 군사정찰위성이나 핵추진 잠수함 기술 이전, 북한 노동자 송출과 같은 불법 거래를 보다 원활하게 하기 위한 '포장'에 가깝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제·과학기술 협조 확대발전"


이번 조약에 따르면 양국은 군사 안보 외에도 경제나 기술에서도 교류·협력을 광범위하게 규정했다. 10조는 무역경제, 투자, 과학기술, 우주, 생물, 평화적 원자력, 인공지능, 정보기술 등 세부적인 분야를 언급하고 있다.

이는 북한에 필요하지만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분야를 두루 포함한다. 대부분은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 제재를 제대로 준수한다면 사실상 협력이 불가능한 항목이다. '우주 협력'은 곧 위성기술 이전과 직결될 수 있고, '정보 기술(IT)'은 북한의 주된 돈벌이 수단인 사이버 해킹 기술 진전과도 무관치 않다. 그럼에도 조약에 포함한 건 향후 제재에 구애받지 않고 해당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걸로 볼 수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일 양국 간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에 서명했다.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제재로 고통받는 동병상련의 처지에 놓인 양국이 회피의 영역을 확대해 제재 무력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약은 '평화적 원자력' 협력이라고 했지만, 사실 우라늄의 농축 정도에 따라 무기급 여부가 달라지는 것과 같이 마음먹기에 따라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무역경제, 과학기술과 같은 광범위한 분야로 협력 범위를 포괄한 것은 상대적으로 합의가 쉽고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북한 입장에선 양국 간 협력이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전략·전술 무기체계 고도화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동자 파견 뒷길도 열어


북한이 경제와 민생 개선에 필요한 식량, 에너지,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러시아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틀도 마련했다. "식량 및 에너지 안전, 정보통신 기술ㅍ분야에서의 안전, 기후변화, 보건, 공급망 등 전략적 의의를 가지는 분야"(9조) 협력과 "농업, 교육, 보건, 체육, 문화, 관광 등 분야"(12조)의 교류 및 협조 강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평양 금수산 영빈관에서 확대 정상회담을 진행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특히 이 중 교육·문화·관광은 러시아 측이 '비자 세탁'을 통해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 중 하나인 해외 노동자 송출의 뒷문을 열어주는 데 활용할 수 있는 분야다. 노동자 파견은 국제사회의 촘촘한 제재망이 작동되는 가운데 안정적인 외화벌인 수단이 필요한 북한과 극동 지역 개발을 위한 양질의 노동력이 필요한 러시아 측 이해관계가 부합한다.

북한 입장에선 농업도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식량 문제는 북한 스스로도 '절박한 과업'이라고 밝힐 정도로 정책적 우선순위에 올라있기 때문이다. 농업 협력은 러시아 입장에서도 국제사회의 제재로 수출길이 막힌 곡물과 비료를 처리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이에 더해 극동지역 개발의 일환으로 연해주 등지에서 농업 특구를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안까지 검토할 수 있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체제이완 방지 안전판도


양국이 '자유박탈형을 언도받은 자들을 인도 및 이관하는 문제'에서 협조한다는 내용을 조약 14조에 명문화한 것도 눈길을 끈다. 이는 북한이 우려하는 해외 노동자 집단 탈북이나 폭동 등 체제 이완 현상과 연결되는 문제일 수 있어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차담 형식의 단독회담을 진행하는 모습.노동신문, 뉴스1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의 경우 현지에서 장기 체류하며 외부 문물을 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제의 모순을 깨닫고 탈북을 감행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게 나타났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선 큰 부담으로 작용해 왔다. 통치자금을 조달하는 핵심 '돈줄'이지만, 외부 사조 유입으로 체제 이완을 촉진시키는 이른바 '반동 날라리'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14조가 해외 파견 노동자 탈북 방지를 위한 안전장치를 합의해 놓은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양국의 이런 움직임은 북한 노동자는 물론 러시아 내에서 북한 노동자를 접촉하거나 탈북을 돕는 개인·단체의 활동에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러시아 당국은 탈북을 시도했던 블라디보스토크 현지 북한식당 '고려관' 지배인 모자를 지난해 말 강제북송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양국은 주민들에 대한 외부 정보 유입에도 공동으로 대응하기로 이번 조약에 명시했다. "정보통신기술을 주권 국가들의 존엄과 영상에 먹칠하고 주권적 권리를 침해하는 데 악용하는 것에 반대한다"(18조)면서다. 이는 독재자인 양국 정상에 대한 비방은 물론 일반 주민들의 사상 통제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정영교·이유정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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