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같은 주북러군?…동맹 세번 외친 김정은, 난관 가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9일 북·러 정상회담 뒤 언론 발표에서 북·러 관계를 세 차례나‘동맹’으로 강조, ‘파트너십’이라고만 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는 표현 차이를 보였다. 김정은이 이번 관계 격상에 부여하는 의미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인데, 미국의 다양한 안전보장 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한·미 동맹에 버금가는 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의지의 표명일 수 있다. 자신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한·미 동맹의 억제력을 새로운 ‘조·로 동맹’으로 상쇄하려 할 가능성이다.
김정은은 “조로(북·러) 관계 발전의 분수령으로 될 위대한 조로 동맹 관계는 오늘 이 자리에서 비로소 역사의 닻을 올리고 자기 출항을 알렸다”고 선언했다. 그리고는 양측 관계를 ‘불패의 동맹 관계’라고도 규정했다.
20일 공개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 원문은 군사 동맹으로 볼 여지도 있는 게 사실이다.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4조)고 명시한 대목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유럽에서 시작된 동맹의 역사를 보면 가장 핵심적인 사안은 개입 조항”이라고 말했다.
‘유사시 자동 군사 개입’처럼 해석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된 만큼 군사동맹의 기본 틀을 지닌다는 해석도 가능한 셈이다. 1961년 ‘조·소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조·소 동맹조약)’의 “무력 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체약 상대방은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온갖 수단으로써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과도 유사하다. 1996년 폐기된 해당 조약이 군사 동맹과 함께 부활했다는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따라 향후 북한은 유사시 자동 군사 개입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해 북·러 사이 군사 공조 체계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맥락에서 한·미 동맹은 김정은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다.
우선 무기 공동개발, 군 인사교류 등 낮은 단계의 군사 협력이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석대로라면 이후 한·미 연합사와 유사한 북·러 연합사 체계를 꾸려 양측이 함께 작전계획을 세우고, 한·미 연합훈련과 같은 정례 실기동훈련을 실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 이런 조치들이 순조롭게 진행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북·러가 제대로 된 군사동맹으로 나아가기엔 난관이 상당하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빈약한 재래식 전력을 감안하면 러시아가 북한과 군사훈련을 벌인다고 해도 실효성 있는 훈련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방부의 ‘국방백서 2022’를 보면 북한의 보유 함정은 잠수함 70여척을 포함해 총 800여척으로 한국 해군(140여척)의 약 5.7배에 이르지만, 상당수 노후화가 심각한 것으로 파악된다.
러시아가 현재 자국 군사력을 동북아에 투입할 만큼 여력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동맹관계 유지를 위해 투입 대비 결과가 나오지 않는 훈련을 러시아가 기꺼이 감수할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한·미 동맹의 상징은 한국 본토를 함께 방어하는 주한미군인데, ‘주북러군’이라는 상황은 가정 자체를 하기 힘들 정도다.
외부의 침략 가능성이 작다는 점도 러시아가 발을 빼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최근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통해 한국이 미국의 핵운용에 참여할 수 있는 단계까지 한·미동맹이 발전할 수 있었던 건 북한의 끊임없는 핵·미사일 위협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한·미와 북·러를 둘러싼 국제 환경에 본질적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도 김정은의 조·로 동맹은 이상향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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