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뉴진스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별로일까

이진민 2024. 6. 20.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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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뉴진스 뮤직비디오 속 무심한 남자들, 훨씬 복잡한 케이팝 소녀들의 욕망

[이진민 기자]

뉴진스는 정체가 뭘까. 환상 속의 소녀일까, 현존하는 실체일까. 뉴진스를 해석하는 방식 중 하나는 '존재하지 않은 것에 대한 향수'이다. 현실에 없는 아련한 과거를, 그조차도 경험한 적 없는 어린 멤버들을 통해 재현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버블 검(bubble gum)' 뮤직비디오가 그렇다. 1980, 1990년대 학생들이 마치 시골집을 찾아간 것처럼 연출한 영상을 보고 시청자들은 "가본 적 없는 할머니 별장이 생각난다", "살아본 적 없는 과거로 초대받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비평가들은 뮤직비디오가 정교한 연출을 통해 노스탤지어를 구축했다고 평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영음 뮤직비디오 감독은 "콘티도, 정리된 스토리보드도 없이 촬영한 영상"이라며 "실제로 놀고 있는 멤버들을 담았고 그들에게 캠코더를 쥐어주었다. 어떤 진심은 가공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연출인 줄 알았던 장면들이 사실 뉴진스의 날 것 그대로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그들은 환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쩌면 뉴진스야말로 진짜 소녀, 요즘 소녀의 세계를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 사춘기 소녀의 미묘한 감정과 성장, 이를 재현하고자 그들의 뮤직비디오에는 이상한 저주가 걸려있다. 그건 뉴진스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이 별로란 점이다.

뉴진스의 세계에 '연애'란 없다
 
 <라잇나우> 뮤직비디오 엔딩
ⓒ HYBE LABELS
 
뉴진스의 세계관은 뮤직비디오를 통해 구축된다. 그 속에서 멤버들은 으레 10대 소녀가 그렇듯 시시콜콜한 연애사에 얽힌다. 누군가를 짝사랑하거나 낯선 이에게 고백을 받으며 멤버들은 연애의 세계에 눈을 뜨지만, 빈번이 사랑은 좌절된다.

총 4편으로 제작된 '하입 보이(Hype boy)' 뮤직비디오에서 연애와 얽힌 에피소드는 모두 실패로 끝난다. 짝사랑에 빠진 멤버 혜인은 자신의 공연에 한 남자 아이를 초대하지만, 정작 그는 친구들과 뉴진스의 춤을 우스꽝스럽게 따라하기 바쁘다. 멤버 민지의 짝사랑 상대 또한 연락을 무시한 채 잠에 들며, 멤버 다니엘과 해린은 똑같은 남자에게 '어장 관리'까지 당한다.

17일 공개한 '라잇 나우(Right Now)' 뮤직비디오에서 멤버 하니는 "주말에 뭐해"라는 상대방의 연락에 들뜨지만, 결국 "(너한테) 문자를 잘못 보냈다"는 허무한 사실을 알게 된다. 이처럼 뉴진스의 뮤직비디오 속 남성 캐릭터들은 무심하고, 한없이 가볍다. 결과적으로 사랑을 바라던 뉴진스의 꿈은 실패하지만, 그 대신 그들은 다른 것을 갖게 된다.

'하입 보이(Hype boy)' 뮤직비디오 속 혜인과 민지는 멤버들의 위로를 통해 더 이상 상대에게 매달리지 않고 뉴진스에게 돌아간다. 다니엘과 혜린은 바람둥이 남성 캐릭터에게 함께 복수하며 서로의 우정을 다진다. '라잇 나우(Right Now)' 뮤직비디오 역시 멤버들이 함께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고민하며 돈독함을 쌓는다. 뉴진스 멤버들은 연애에는 실패하지만 그들만의 견고한 관계성을 확인받게 된다.

소녀는 또 다른 소녀를 욕망한다

어쩌면 사춘기 소녀에게 진짜 필요한 건 남자 친구가 아니다. 무겁고 복잡한 소녀의 마음을 덜어주는 건 친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재밌게 노는 것, 그들과 고민을 공유하며 무거운 마음을 덜어내는 것. 뉴진스는 세상에 어디에도 없는 '견고한 또래집단'을 보여주기 위해 타자를 철저히 배제한다.
 
 히치 하이킹에 실패해도 괜찮은 멤버들, 타자가 배제된 뉴진스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 HYBE LABELS
 
'하우 스윗(How sweet)' 뮤직비디오는 뉴진스 멤버들이 재밌게 놀고 있는 모습을 제3자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멤버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타자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거나, 우리들이 얼마나 재밌게 노는지 과시하지 않는다. 그저 재밌게 노는 뉴진스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 사이에 끼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한다.

중간에 히치 하이킹을 시도하며 뉴진스가 아닌 '낯선 이'의 존재를 원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매몰차게 지나가는 자동차를 향해 각자 재밌는 포즈를 취하며 누군가 도와주지 않아도 즐거운 뉴진스의 우정을 재확인시킨다. 이처럼 소녀를 욕망하는 소녀의 마음은 뉴진스는 물론, 다른 걸그룹을 통해서도 구현되고 있다.

트리플에스의 '걸스 네버 다이(Girls Never Die)'는 "다시 해보자"는 내레이션과 함께 초라한 현실을 마주하고 포기하지 않는 소녀의 투쟁기를 담았다. 이 속에서 멤버들은 좌절하고 실패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에는 서로 손을 맞잡음으로써 사춘기의 울적함을 극복하게 된다. 즉, 뉴진스가 '함께하면 즐거운 친구'라면 트리플에스는 '함께 힘듦을 헤쳐가는 친구'의 환상을 보여준다.

케이팝은 소비자의 욕망을 반영하며 동시에 만들어낸다. 그리고 주 소비자는 1020 여성이다. 이제 걸그룹은 더 이상 사랑에 매달리지 않고 자신과 소녀들만 사는 에덴 동산을 구축하고 있다. 왜 현실 소녀들은 우정 만능주의에 빠진 케이팝 속 소녀들에 열광하는 걸까. 아담이 쫓겨나자, 그제서야 이브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이제 이브의 욕망에 아담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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