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서린상사 경영 정상화 집중"…영풍 결별 가속(종합)
시너지 높여 '비철금속 무역상사' 경쟁력 강화
갈수록 동업정신과 멀어지는 고려아연·영풍
고려아연이 수출을 맡고 있는 그룹 계열사인 서린상사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서린상사는 그동안 장씨 집안인 영풍이 경영해왔는데, 고려아연은 수출에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았다는 불만이 많았다. ‘75년 동업’ 위기를 맞은 고려아연과 영풍이 결별로 한발짝 더 다가가는 모양새다.
서린상사는 20일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고려아연 측 사내이사 4명을 추가 선임하고 최창근 명예회장의 이사회 의장을 재선임하는 안건 등을 의결했다. 장세환 서린상사 대표이사는 임시 주총 전날 사임했다. 장 대표는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차남이다. 서린상사 지분은 고려아연 측이 66.7%, 영풍 측이 33.3%를 보유하고 있다. 고려아연 지분율은 주총 특별결의 안건까지 의결할 수 있는 규모다.
고려아연 측 이사회 구성원은 기존 4명에서 8명으로 늘어나면서 이사회는 8대 1구도로 재편됐다. 장세환 대표 사임에 앞서 류해평 대표도 사내이사직을 스스로 내려놨다. 총 9인 중 90%를 고려아연 측 인사로 채우면서 고려아연은 서린상사 경영권을 장악했다.
'재무' 이승호 대표 ·'조직' 백순흠 대표·'해외영업' 김재선 사장
고려아연 측이 추천한 신임 사내이사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촌인 최민석 스틸싸이클 사장, 백순흠 고려아연 부사장, 김영규 고려아연 상무이사, 이수환 고려아연 임원이다. 서린상사 대표이사를 지낸 김재선 고문은 임원으로 복귀한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김 고문을 등기이사로 선임하는 안을 주총 직전에 추가로 상정할 수 없어서 해당 안건을 주총에서 다루지는 못했지만, 미등기로 김 고문에게 경영 역할을 맡길 예정"이라며 "주총 후 이사회에서 확정한다"고 했다.
고려아연은 이번 주총을 계기로 조직개편과 해외 영업망 강화를 통한 경영 정상화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인사통 백순흠 부사장과 영업통 김재선 고문은 서린상사 현업에 투입된다. 백 부사장은 서린상사 조직개편을 맡는다. 백 부사장은 영남대 법학과 졸업 후 고려대노동대학원에서 노사관계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아연에서 오랜 기간 인사와 조직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고려아연에서 인사담당 임원을 거쳐 지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장을 역임했다. 현재 고려아연 인재경영본부, 준법경영팀, 내부회계관리팀을 관할하고 있다.
영업 정상화를 책임질 김재선 고문은 부문 사장을 맡아 해외 영업망 강화를 담당한다. 김 고문은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최측근이다. 고려아연 내 비철금속 해외영업 전문가로, 초창기 시절부터 최 명예회장과 함께 서린상사를 일궈왔다. 2012년 2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서린상사 대표를 맡았다. 고려아연은 김 신임 사장에 대해 "'고려아연 DNA'와 함께 서린상사 창립 정신을 되살릴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현재 서린상사 대표를 맡고 있는 재무 전문가 이승호 고려아연 부사장은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선임됐다. 이 대표는 고려아연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고 있다.
고려아연은 "이번 정비를 통해 서린상사는 재무와 조직, 해외영업 등 전문성에 기반한 경영 체제를 구축하게 됐다"며 "서린상사 경영 안정화와 함께 사업 실적을 조속히 회복하고, 비철금속 수출 기업으로서 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내겠다"고 했다.
서린상사는 이날 이사회에서 본점 이전 승인의 건도 의결했다. 고려아연과 함께 본사를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빌딩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서린상사가 앞으로 수출 등 핵심 역량을 더욱 강화할 수 있도록 협업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려아연 "공동판매 불이익"…영풍, 별도 상사 법인 설립하나
고려아연이 서린상사 경영권을 확보한 건 영풍과의 공동판매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비철금속의 수출을 전문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1984년 설립한 서린상사는 영풍과 고려아연의 비철금속을 해외로 유통 판매하는 핵심 계열사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와 호주 자회사 썬메탈, 영풍 석포제련소가 생산하는 각종 비철금속의 수출·판매 물류 업무를 전담해 왔다.
하지만 고려아연은 올해 들어 "감산과 조업정지 등 영풍 측의 사업 차질로 공동 판매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영풍 측이 서린상사 경영을 맡는 동안 고려아연 측과 협업이나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았고 영업적인 지원도 원활하게 되지 않았다"며 "수출을 포함한 해외 영업을 강화하고 경영 정상화를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관심은 영풍이 고려아연이 장악한 서린상사를 통해 지속해서 거래할지 여부다. 영풍이 별도 루트를 마련할 경우 ‘75년 동업자 관계’는 더욱 멀어지게 된다.
그룹 안팎에선 영풍이 서린상사 같은 별도 상사 법인을 설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장 대표가 사임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서린상사 인력 6명도 최근 퇴사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들이 영풍 상사 법인으로 가려는 수순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영풍 측은 "상사 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서린상사는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1조5290억원, 영업이익 17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37%, 영업이익은 69% 줄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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