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 결근하던 공익, 알고 보니 이런 사연이 있었다

김성호 2024. 6. 2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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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758] 제12회 무주산골영화제 '창' <부모 바보>

[김성호 기자]

 영화 <부모 바보> 포스터
ⓒ 무주산골영화제
 
다 똑같은 것 같을 때가 있다. 요즈음 만나는 이야기, 그중에서도 독립영화가 다루는 얘기들 말이다. 청춘의 방황, 버거운 삶의 무게, 사람에게 받는 위로, 아주 희미한 빛조차도 간절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흘러서 넘칠 만큼 많기 때문일까.

기술의 진보가 인류를 풍요로 이끌었다지만 오늘은 오늘대로 오늘의 과업이 남아있다. 관혼상제, 인간이 치를 네 가지 대례가 대입과 취업, 결혼과 육아로 얼굴을 바꾼 지 오래다. 그 과업들이 어찌나 만만찮은지, 하나를 넘은 이도 다른 하나를 넘지 못해 숨만 고르다 주저앉는 경우를 부지기수로 마주한다. 제게 주어진 과제를 해내지 못할 때, 인간다움을 달성하지 못할 때, 인간은 낙오하는 것이다.

낙오한 이들, 낙오하지 않으려 버티다가 소진된 이들, 아직은 어찌어찌 잘 따라가는 이들, 이 시대 청춘의 초상이란 대체로 그러하다. 대중이 원하는 영화가 아닌, 작가가 원하는 영화이게 마련인 독립영화가 대개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배경이 이렇다.

얼음으로 짧은 다리 하나를 괴어 받친 의자를 떠올린다. 어느 한 다리가 녹아가는 줄도 모른 채 우리는 의자가 멀쩡하다고 자신하는 게 아닐까. 마침내는 다 녹아 무너질 균형 위에 앉아서.
 
 영화 <부모 바보> 스틸컷
ⓒ 무주산골영화제
 
서울 어느 복지관,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

제12회 무주산골영화제 <부모 바보>도 그렇고 그런 한국 독립영화다. 사회복무요원과 그를 관리하는 사회복지사, 그들이 일하는 서울 어느 복지관의 이야기가 꼭 100분짜리 영화 안에 알차게 들어찼다.

영진(안은수 분)은 사회복무요원이다. 전방 어느 부대에 배치됐다면 곧장 '관심병사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법한 눈에 띄는 젊은이다. 말수가 없고 행동이 굼뜬 데다 어딘지 반항하는 인상까지 있는 그가 남들 눈에 좋아 보일 리 만무하다. 입대하지 못한 이유가 전과 때문이라는데, 지각이 잦고 무단결근까지 하니 복지관 직원들의 시선이 따갑기만 하다.

사회복무요원이 무단으로 결근하면 병역법 위반이 된다. 군법으로 처분받지는 않는대도 병무청이 직접 고발해 형사처벌을 받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복지관 입장에선 구청에 보고까지 해야 해서 난감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담당인 진현(문혁진 분)에게 사회복무요원 하나 제대로 관리 못하냐는 불호령이 떨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진현이 영진을 다시 보게 된 건 우연한 계기였다. 평소와 다름없던 출근길, 웬 교각을 거쳐 화단을 넘어 내려오는 영진을 마주친 것이다. 듣자하니 영진은 복지관 인근 교각에서 노숙을 하며 지낸다고. 아버지와 함께 사는 집에 제 방이 없어 노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영진이 불결하고 무기력한 애에서 상황이 좋지 못한 애로 뒤바뀌는 순간이다.
 
 영화 <부모 바보> 스틸컷
ⓒ 무주산골영화제
 
노숙하는 사회복무요원, 그를 본 사회복지사

노숙은 불편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매일 같은 옷을 입는 것도,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나오는 것도 노숙의 결과였음을 안 진현은 영진을 전보다 조금은 이해하는 듯도 하다. 어찌 됐든 담당자가 아닌가. 진현은 영진을 제 집에 들여 함께 지내기로 한다. 당장 월세도 내지 못하는 영진이지만 노숙하는 것보다는 데리고 있으며 관리하는 편이 본인에게 편하기도 하다. 기본적인 위생관리부터 근태까지 문제 많던 영진이 눈에 띄게 나아진 덕분이다.

영화는 진현과 영진, 또 복지관에 자주 드나드는 순례(나호숙 분)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어 차례로 보여준다. 사회복무요원과 그를 관리하는 사회복지사, 또 복지관을 자주 찾는 시민으로 서로가 다른 상황에 놓여 있지만,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면 서로가 얼마 다르지 않단 점이 새삼스럽다.

영진은 집에서 내쫓기듯 버려진 자식이다. 별것도 아닌 범죄에 엮일 만큼 멍청한 탓일까도 싶지만, 영화는 그에게 책임을 돌리는 쉬운 시각을 채택하지 않는다. 서울에 자가도 있고 차량도 있는 살 만큼 사는 집 자식이라는데, 막상 영진은 바람 막을 집에 침대 하나 갖지 못한 노숙자 신세다. 대체 어떤 잘못이기에 부모는 갓 성인이 된 자식을 집에 들이지 않는 걸까.

진현이라고 사정이 크게 나은 건 아니다. 복지관 대리로, 공무원 신분이지만 여기저기서 깨지는 스트레스 많은 직업이다. 제 말을 빌리자면 여자 하나 사귈 수 없는 연봉 4000만 원짜리 말단 공무원 신세다. 그보다 못한 사정에 놓인 청춘이 한둘이 아니겠으나 그가 느끼는 막막함과 좌절감이 무엇일지 알 것도 같다.
 
 영화 <부모 바보> 스틸컷
ⓒ 무주산골영화제
 
이 시대 평범한 이들의 초상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다 말하면서도 평생을 저를 위해 공을 들인 부모에게 미안해 관둘 수가 없다는 그다. 하나뿐인 동생을 원치 않게 떠나보낸 사연을 듣고 나면 그가 양 어깨에 진 짐이 어떤 모양인지가 잡히는 듯도 하다. 어디에도 잘 적응하지 못하는 영진에게 은근히 마음을 쓰는 것도.

순례에게 한 장을 따로 할애한 점도 특기할 만하다. 그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복지관 진상 할머니라 해도 틀리지는 않겠다. 진현에게 유독 관심을 보이는 순례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로 귀찮게 굴면서도 틈틈이 하나 뿐인 아들 자랑을 멈추지 않는다. 그 자식과 진현이 꼭 같은 나이인데, 제 아들은 큰 자동차회사의 큰 건물에서 일해 중요한 일들로 바쁘기가 짝이 없다는 식이다. 반면 진현은 작은 건물 말단 사회복지사이니 여유가 있지 않느냐는 말로 어처구니없이 콕콕 찔러대기 일쑤다.

한국 노인들과 마주하는 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금세 떠올릴 법한 에피소드가 순례와 진현 사이에 훅훅 흘러간다. 시민 대 사회복지 공무원, 그것도 잃을 것 없는 이와 잃을 것들로 가득한 이의 대결이다. 누가 승자일지는 빤하지 않은가.

요컨대 <부모 바보>는 가족들에 매여 상처 입고 상처 주는 이 시대 평범한 개인의 초상을 그린다. 사랑받지 못하는 자식과 기대를 충족시키기 버거워하는 자식, 기대를 품었다가 실망을 넘어 절망하는 어머니가 각자의 삶의 무게를 간신히 지탱하고 섰다. 감독은 '부모 바보'라는 제목이 부모에 대한 욕이라는데, 한국 정서상 '바보' 이상의 표현은 쓰기 어려웠을 테다.
 
 무주산골영화제 포스터
ⓒ 무주산골영화제
 
욕이라도 진탕 해주고 싶은 부모들에게

욕이라도 진탕 해주고 싶은 부모들이 그의 눈엔 많이도 띄었던 걸까. 막상 부모의 이야기는 얼마 나오지 않는 듯도 하지만, 부모를 넘어 그야말로 엉망진창인 어른의 모습은 많이 등장하니 영화며 제목에 대한 해석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듯하다.

작품의 영제인 'heritage'는 이 같은 생각에 무게를 더한다. '유산' 쯤으로 풀이되는 이 단어를 쓴 건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자산, 또 가족 전수되는 역할이며 가치체계를 돌아보도록 이끈다. 감독은 영화가 끝난 뒤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진영이 영진에게 연설하는 거나 그런 장면에서 자기 생각이지만 실은 (윗세대에게) 전수받은 게 많고 영진에게도 그런 문화적 유산이 있다"면서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체취 같은 걸 담으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엔딩은 자못 인상적이다. 진현의 삶 가운데 놓인 벽이 한둘이 아니다. 순례와의 충돌 뒤 잔뜩 오른 짜증이 영진에게 튄 것일까. 가뜩이나 동거 중에 쌓인 화를 그에게 풀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로부터 영진은 무단결근을 시작하고 더는 진현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웬 의자 하나가 거실에 달랑 놓인 모습을 카메라가 가만히 지켜보고 섰다.

앞서 적은 장면이다. 의자의 한 다리가 다른 것보다 조금 짧다. 그 뜬 다리를 얼음으로 괴어 놨다. 얼음이 녹아 흐른다. 다리는 다시 짧아진다. 마침내 의자는 균형을 잃고 내려앉을 테다. 소진되는 얼음, 무너지는 의자가 나와 너와 우리를 생각하게 한다.

어딘지 투박하고 어색한 곳도 적잖은 영화다. 영화 속 대사처럼 한국 독립영화 가운데 수도 없이 보았던 그렇고 그런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영화가 제가 그린 이야기 너머를, 그러니까 문제의 원인과 해법에 대해 구체적 고민을 한 지점을 거의 찾을 수 없단 점은 실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부모 바보>가 그린 이야기는 엄연히 현실 가운데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저 바보라는 말보다 조금쯤 더 센 말을 던져주고 싶은 어른이 이 세상엔 얼마든지 있으니까 말이다. 순례와 관장과 과장이 진현과 영진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균형을 맞추고 흔들리는 의자를 바로 세우는 일을 더는 미뤄둬선 안 된다고, 어른이라면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이 영화가 하고팠던 말이 아마도 그것이 아니었을까.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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